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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정한 여유 Dec 18. 2023

팔운동엔 삼불점을 추천합니다

아이가 가장 좋아하는 책을 꼽으라면 단연코 '오므라이스 잼잼(작가 조경규)'이다. 양장본으로 사길 참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아니었다면 아마 책이 벌써 너덜너덜 해졌을 것이다. 사실 웹툰이었던 것을 책으로 묶어 나온 것이라 만화책이라 할 수 있는데 그 안에는 음식에 관한 정보와 유래가 가득하다.

"책 좀 읽고 원하는 거 해." 하면 무조건 오므라이스잼잼이다. 심심할 때 읽는 책도 그렇다. 양장본이기도 하고 책 1권이 꽤 두꺼워 무거운데도 여행 가방에 굳이 넣고 싶어 한다. 책에 관심 없는데 먹는 것은 좋아하는 아이가 있다 하면! 혹은 책을 좋아하는데 편식을 한다 하면! 무조건 '오므라이스 잼잼'을 권한다.  


음식을 정말 맛깔나게 그리시는 작가님! 삼불점이 나오는 3권.


음식에 진심인 작가님과 가족들이 다양한 음식을 먹으며 벌어지는 에피소드가 나온다. 책을 읽고 나면 먹어보고 싶은 음식이 수두룩하고 배가 고파온다. 거기에 나온 음식을 보고 있으면 뭐든 먹어보고 싶은 기분이 드는데 실제로 우리 집 어린이는 그 책을 보고 궁금증에 순대와 선지해장국, 산낙지를 처음 먹어보았다. 음식에 대한 묘사가 기가 막히고 재미가 있는 데다 음식에 관한 여러 유래와 이야기도 있어서 어른아이 할 것 없이 누가 봐도 재밌고 유익하기까지 한 만화책이다. 아이는 오므라이스잼잼을 보며 종종 먹고 싶은 메뉴를 말하는데, 이번엔 '삼불점'이었던 것이다.


"엄마, 우리 오늘 삼불점 만들어 먹어볼까?"

"그게 뭔데?"

"그게 뭐냐면, 이거 봐봐. 엄청 신기한 디저트인데, 유튜브에도 찾으면 많이 나와. 우리 저번에 타피오카전분도 사놨잖아. 그게 재료야."

 

그렇다. 아이가 버블티를 만들어 먹을 수 있다고 해서 사놓은 타피오카 전분이 있었다.(사놓았지만 아직 안 해봤다.) 하라고 하는 건 잘 까먹던데 필요할 땐 기억력이 참 좋다. 선택적으로 발휘되는 능력인지 연구가 필요하다. 재료도 있겠다, 바로 해보기로 했다. 레시피도 아주 간단했다. 다만 오므라이즈 잼잼에 나온 것은 계란이 12개가 필요한 레시피라 못하겠다, 싶었는데 찾아보니 1-2인분 레시피도 있어 바로 도전해 보았다. 많이 먹을 수 있는 디저트는 아닌 것 같아 적은 양으로 시도해 보는 것을 추천한다. 재료는 다음과 같다.


'계란 노른자 2개

설탕 35g

타피오카전분(없으면 감자, 옥수수전분 다 가능) 25g

식용유나 버터 (원래는 돼지기름인 라드 사용) 15g

물 100ml'


모두 잘 섞어서 체에 걸러 곱게 만든 다음 중약불에 올려 그저 계속 저으면 된다. 계속 계속 계속. 중간에 조금씩 식용유나 버터를 추가해서 저어준다. 오므라이스 잼잼에는 한 방향으로 저어야 한다고 나오는데 양방향으로 저어도 만들 수 있었다. 레시피를 검색하다 보니 실패담도 많이 보여서 중불에 하면 상태가 급하게 변할까 겁이 나 약불로 했는데 괜찮았다. 계속 저으면 스크램블에그처럼 조금씩 응어리가 지고 또 계속 저어 보면 클레이나 슬라임 같은 느낌으로 바뀐다. 언제까지 해야 하는지를 잘 몰라서 조금 더 해볼까, 조금 더 해볼까 했더니 약간 오버쿡이 된 것 같지만 비슷하게 완성되었다. 마지막에 손을 대지 않고 프라이팬에서 둥글둥글 굴리면 더 매끈하고 예쁜 모양을 만들 수 있는데 급하게 끝냈더니 모양새가 아쉽다. 황제도 반했다고 해서 적잖이 기대를 했는데 계속 먹고 싶을 정도로 별미는 아니었다. 흔하지는 않지만 중국에는 파는 식당도 있다고 하는데 현지에서 제대로 만들면 어떤 맛일지 궁금하다. 다음 날이 되니 팔이 아파 파스를 붙였다. 안 쓰던 근육을 쓰게 해 주는 요리였네, 삼불점.


삼불점의 유래. 중국 청나라 때 안양 지방 현령이 요리사를 시켜 병든 부친께 만들어드린 음식에서 유래. 노인이 하루가 다르게 식욕을 잃어가자 고민하던 요리사가 노인이 좋아하는 계란노른자에 백설탕을 넣고 볶아 색과 향, 아름다움을 고루 갖춘 요리를 만들어냈는데, 노인이 요리를 아주 좋아했다고 합니다. 그때부터 이 요리는 그 집안의 대표 요리가 되어 '계수나무 꽃 계란'이라는 뜻의 꾸이화딴이라는 이름을 얻었습니다.

하루는 현령의 부친이 고희를 맞아 큰 잔치가 열렸습니다. 요리사는 당연히 꾸이화딴을 준비했겠지요. 하지만 평소보다 많은 양을 만들어내느라 중간에 녹말이나 기름을 자꾸 추가해야 했습니다. 이렇게 해서 노란 빛깔이 윤이 나듯 반지르르하고, 투명하고 반짝이는 방울 같기도 하고 맛있는 향이 사방으로 퍼져나가는 완벽한 새 요리가 탄생하게 된 것입니다! 지역명물이 된 이 요리는 민정시찰을 나온 건륭황제의 밥상에까지 올라 황제로부터 '접시에도, 젓가락에도, 이에도 들러붙지 않는다'는 뜻의 '삼불점'이라는 이름을 하사 받게 되었습니다.

요리가 끝나면 잔뜩 화난 전완근을 마주할 수 있다.


완성된 삼불점은 진짜 세 가지 모두에 들러붙지 않는데 정작 만드는 동안 아이에게는 세 가지가 들러붙었다. 자기도 해보겠다며 나서니 쉬지 않고 계속 저어야 한다고 '잔소리'가 나오고, 건네받아 계속 저으면 힘들어서 '짜증'이 나고, 힘들게 다 만들고 났는데 맛없다고 한 입 먹고 마니 '화'가 난다. 이런. 추운 겨울, 집안에서 아이와 따뜻하고 다정한 쿠킹타임을 가지려고 만들기 시작했는데 끝은 엉망진창이다.


아이가 커가니 기대도 커진다. 내 마음대로 커진 기대에 아이가 부응하지 못한다고 자꾸 화를 낸다. 할 수 있지 않냐고 짜증을 낸다. 아니, 너 정도 나이면 해야 한다고 잔소리를 한다. 사춘기를 바라보는 다 큰 아이지만엄마랑 함께하고 싶다고 손을 내미는데, 이제 혼자 할 때라고 내민 손을 쓱 밀어낸다. 언젠가 김종원작가님의 글에서 '아이는 매일 부모를 용서하고 있다'는 것을 보고 눈시울이 붉어진 적이 있다. 스스로 아이에게 용서받아야 하는 일을 많이 해서 찔려서 그랬던 것 같다. 엄마랑 지내는 시간이 오랠 수록 엄마에 대한 기대가 점점 작아질까 봐 겁이 날 때가 문득 있다. 어른인 나도 못하는 것을 아이에게 요구하고 있는 것은 아닐지 민망해진다. 이제 곧 올 겨울방학에 잔소리도, 짜증도, 화도 내지 않는 삼불(三不) 방학을 만들고 싶다면 너무 거창한 꿈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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