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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정한 여유 Nov 29. 2023

남편이 새 텀블러를 환불했다

"고객님, 텀블러 포장해 드릴까요?"

"아니요, 포장은 괜찮아요. 그냥 주세요."

"교환은 전 지점 가능하시고 환불은 저희 지점에서만 가능합니다. 음료쿠폰 사용하신 경우에는 환불이 어렵습니다. 참고해 주세요."

크기도 적당하고 심플한 디자인에 밝은 컬러. 원하던 조건을 고루 갖춘 텀블러를 골랐다. 남편에게 줄 텀블러다. 남편은 매일 아침 카누를 타서 텀블러에 담아 간다. 여름에는 시원하게, 겨울에는 따듯하게. 지금 쓰고 있는 텀블러가 산지 1년 가까이 된 것 같기도 하고 기념일이 다가와 겸사겸사 새로 샀다. 지금 텀블러는 어두운 색이라 바꾼 느낌 내보라고 밝은 색으로 골랐다. 퇴근하고 온 남편은 지금 텀블러 잘 쓰고 있는데 왜 샀냐고 묻는다.

"왜긴, 사용한 지 오래됐잖아. 텀블러도 주기적으로 교체해 줘야 한다고 했어."

전체가 다 스테인리스 제품인데 그걸 교체할 필요가 뭐 있냐고 되묻는 남편. 하긴 남편의 텀블러는 음용구가 없는 스타일이라 그렇긴 한데. 그런가?

"아니야. 내가 분명 어디서 봤었는데. 텀블러 바꿔줘야 한다고 했어." 하고는 급히 검색을 해본다. 분명 텀블러를 주기적으로 교체해줘야 해서 오히려 환경피해를 일으킬 수 있고 1000번이던가 엄청 많이 사용해야 그나마 환경에 덜 피해를 준다고 기억하고 있었는데 남편이 따져 물으니 내 정보에 빠직, 금이 간다. 어서 검색해서 증거를 들이밀어야겠다.


검색을 하고 보니, 딱 남편과 하고 있는 논쟁을 정리해 놓은 기사들이 눈에 띈다. 정리해 보자면 다음과 같다.


스테인리스 텀블러 제품은 납중독 우려가 있다(X) 스테인리스에는 납이 포함되지 않아 걱정할 필요 없다.

스테인리스에 산성, 염기성 제품을 담으면 부식 우려가 있다(X) 사람이 먹는 음식의 산, 염기 정도로는 부식시키지 않는다.

스테인리스 제품의 경우 처음 사용 시 연마제를 잘 제거하고 사용하는 것이 좋으며 플라스틱이나 고무패킹이 사용된 텀블러 제품은 그 부분에 따라 교체를 해주는 것이 맞다.


오 마이갓, 남편이 말한 게 맞았다. 내 머릿속 정보는 어디에서 온 거니? 다음날 조용히 텀블러를 환불하러 갔다. 그냥 텀블러가 이뻐서 샀다고 했으면 알았다고 했을 텐데 괜히 텀블러 교체 주기를 들먹였다. 아, 아쉽네.

짧지만 반가웠어, 다음에 꼭 다시 만나!


궁금한 게 있으면 바로 포털을 켠다. 포털에서 제공하는 각종 사전부터 집단지성으로 만들어 놓은 사전, 엄청난 양의 기사와 게시물들. 이 중 눈에 띄는 검색 결과를 몇 개를 읽어보고는 닫는다. 오케이, 알았어. 이 과정이 몇 분이나 걸릴까. 1분도 안 걸리는 듯하다. 과연 이 짧은 시간에 나의 눈과 뇌는 올바른 정보를 찾아 저장할 수 있는 능력이 있는가. 인터넷서핑 2n연차에 초능력에 가까운 디지털 리터러시를 갖게 되었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빛의 속도로 속독을 하고 필요한 정보를 쏙쏙 얻는다. 하지만 실상은 대충 읽고 내 눈에 들어오는 일부 정보만 겨우 기억하는 것 같다. 팩트체크 해야 하는데 그런 과정은 없고 심지어 검색하고 제목만 읽을 때도 있다. 이런 부실한 정보를 난 어디에 써먹고 있을까. 카더라에 가까운 사실을 기반으로 의사결정을 하고 있어서 스스로가 내린 결정에 확신이 없는 것은 아닐까. 선택지가 많아져서 결정이 과거보다 어려워졌다는 의견도 있지만 실은 내가 가진 지식이 굉장히 불완전한 정보라는 것을 마음 한구석이 인지하고 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책이나 신문기사 등은 여러 과정을 통해 시간이 걸려 만들어진 정보다. 심지어 전단지 한 장을 만들어도 인쇄를 하고 배포하는 과정이 필요했다. 하지만 지금은 글을 쓰고는 클릭. 아주 심하게 간단하고 빠르다. 예전에는 오프라인을 통해 더 많은 정보를 습득했지만 요즘은 초고속으로 제공된 온라인상의 정보를 얻는 것이 압도적으로 많다. 그중에 정제된 정보는 얼마나 될지. 혹시 잘못된 내용이 올바른 것보다 많은 것은 아닐지. 보는 사람이 확인하는 과정을 거쳐야 하는데 그게 쉽지 않고 귀찮다는 것을 알기에 잘못되었든 아니든 일단 인터넷에 글을 띄우고 보는 것 같다. 클릭하는 게 돈이 되니 제목이 자극적인 것은 당연지사. 제목을 보고 놀라 클릭해 보면 제목과 반대되는 내용이 들어있거나 아예 다른 엉뚱한 내용이 들어있는 경우를 많이 겪었다. 하지만 클릭을 안 하고 제목만 봤다면? 시선을 끌기 위해 최대한 자극적으로 뽑았을 제목 그대로를 사실로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 정보가 제공되는 과정에서 걸러지지 않는다면 습득하는 우리가 걸러야 할 것이다. 온라인에서 접하는 내용들을 한 번쯤 의심하고 확인해 봐야 하는 이유다. 안 그랬다가는 꼬르륵, 꼬르륵 조금씩 정보의 바다에서 잠기게 될지도 모르는 일이다. 그것이 요즘 사람의 숙명인가, 비장하게 발을 차고 한 팔씩 휘둘러야겠다, 음파음파. 그래, 나 접영까지 배운 사람이니까.

 

어릴 적 힘들게 배운 수영인데 이렇게 써먹게 되는 건가. 출처: 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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