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콩나물에 물 붓기

매일글쓰기 2.

by 다정한 여유


오늘의 글감 : 내가 잘하는 것



장점을 쓰라고 했을 때보다 단점을 쓰라고 할 때가 할 말이 더 많다. 잘하는 것을 쓰라고 하면 오래 고민해야 한다. 늘 단점을 보완하며 살려고 노력했기 때문에 단점에 대해서는 할 말이 산더미다. 최근 들어서야 내가 잘하는 것에 대해 생각하기 시작했다. 내가 잘하는 것은 '시작하는 것'이다. 이건 얼마 전까지만 해도 나에게 부족한 면이었다. 시작하는 것이 부족한 점이었다는 것은 아니다. 대체 무슨 말인가.


두드러지는 나의 단점 중 하나는 끈기 부족이다. 장점을 찾으려 고심했지만 잘 보이지 않았다. 눈앞에 보이지 않는 장점을 보이려고 하다 보니 단점을 뒤집어 어거지로 장점으로 둔갑시켰다. 그런데 그것은 억지가 아니었다! 왜 끈기가 부족한지를 생각하고 생각했더니 시작을 잘하고 시작을 많이 하기 때문이라는 것을 발견했다. 많은 일을 도전하고 시도하니 그중에 대부분은 중도에 그만두게 된다. 시작하는 것이 나의 장점이라고 생각하고 관찰하니 놀랍게도 사실 나는 끈기가 있는 사람이었다. 이게 또 무슨 말인지.


끈기가 부족한 것도 맞고 끈기가 있는 것도 맞다. 시작하는 많은 일 중 대부분은 그만두니 끈기가 부족한 것이 맞다. 그런데 그중 아주 일부는 계속하게 되니 끈기가 있는 사람도 맞는 것이다. 나중에 내 삶을 돌아보았을 때 이 전환은 대단한 시점일 것이다. 물론 한순간에 일어나진 않았다. 많은 자기 계발서를 읽었고, 코치님이 리더로 있는 모임에서 이에 관한 많은 활동을 했다. 콩나물에 물을 붓고 또 부은 것이다. 물은 붓자마자 다 빠져나가지만, 콩나물은 어느 순간 쑥 컸다.




사람은 쉽게 변하지 않는다. 아니, 거의 변하지 않는다. 그러니 단점을 보완하는 것보다 장점을 강화하는 것이 더 나은 전략이다. 사람의 자제력에는 한계가 있어서 눈앞에 있는 초콜릿을 먹지 않도록 설계된 시험에서 그 사람들은 후에 다른 일에 쏟을 자제력이 없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내가 쓸 수 있는 여력에 한계가 있으니 그 여력을 효과적으로 써야 한다. 단점을 보완하려 노력하고 그것을 드러나지 않게 자제하기보다는 내가 가진 점을 부각하는 것이 힘이 덜 든다. 가만히 있어도 그렇게 되니 말이다. 내가 가진 점 중에 괜찮은 점을 더 발휘하도록 하는 것이 더 쉽고 더 재밌는 방식이다. 그게 내 여력을 잘 쓰는 법이다.


최근에 달리기를 시작했다. 정말 재밌다고 신나게 시작했다. 일주일에 4-5번씩 뛰면서 평생 달리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말도 쉽게 했다. 석 달쯤 되니 위기가 왔다, 늘 그랬던 것처럼. 예전이라면 역시 그럴 줄 알았다며, 끈기가 부족한 것이 이번에도 어김없이 드러났다며 스스로에게 실망했을 것이다. 부푼 마음에 경거망동했던 몇 달 전의 나를 자책하고 힐난했을 것이다. 이제는 그 에너지의 방향을 바꾸고 있다. 어떻게 하면 지속할 수 있을까, 부족한 끈기를 잇는 방법을 뭘까를 생각한다. 그건 바로 내가 잘하는 것을 하는 것이다. 도전하고 시작하는 것. 마라톤대회에 도전하고 러닝 모임을 시작한다. 이편이 확실히 쉽다. 이 시작도 금세 힘이 빠질 것을 안다. 뭐, 그러면 어떤가. 나에게는 '시작'이라는 무기가 있다.

시작했던 6월의 페이스와 최근의 페이스.

매번 일을 저지르고 마무리는 흐지부지해서 시작은 거창하고 끝은 미미한 사람. 끈기가 부족해서 뭐 하나 진득하게 늘어지지 못하는 사람. 이것은 과거의 나다. 겁 없이 새로운 일을 시작하는 사람. 하나의 일로 눈에 띄는 성과를 내진 못하지만, 많은 시도를 통해 조금씩 성장하는 사람. 이게 지금의 나다. 과거의 내가 달라지거나 사라진 것이 아니다. 과거의 나는 아직도 지금의 나 뒤편에 찰싹 붙어 있다. 반대편으로 내 시선과 생각을 옮겼을 뿐이다. 과거의 내가 없으면 지금의 나는 없다.

내 장점이 콩나물이라고 한다면 단점은 아보카도다. 아보카도를 키우려면 물 320리터가 필요하다고 한다. 그 많은 물을 붓는 것은 얼마나 어려운가. 그런데도 아보카도가 갖고 싶은 것을 어쩌면 좋은가. 방법이 있다. 그 많은 물을 아보카도가 아니라 콩나물에 붓는 것이다. 콩나물에 물을 많이 부으면 아보카도가 될 수 있을까? 그렇진 않다. 콩나물은 콩나물이다. 대신 그 많은 물로 키운 콩나물을 팔아 아보카도를 사면 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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