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면 되겠니?

by 다정한 여유

드디어 입금을 확인했다. 그토록 기다리던 바로 그 돈이 내 통장에 있다. 무려___원. 이제 이 돈으로 무얼 해볼까?

남편이 구해준 새 지폐. 비상금을 새 돈으로 바꾸니 아까워서 안 쓰게 되는 마법이!

오후의 글쓰기, 두 번째 과제다. 글을 쓰려면 __에 들어갈 만한 돈을 먼저 정해야 하는데! 그게 너무 어려워 진도가 나가질 않는다. 백만 원으로 했다가, 좀 더 올려볼까 천만 원으로 했다가, 이왕이면 일억으로? 상상 속에 있는 그 돈주머니가 요술주머니처럼 불어났다 줄어들었다 난리도 아니다. 사실 속으로는 이미 계산은 끝나있다. 백만 원이면, 몇 달째 노려보기만 하는 쇼핑리스트에 있는 그걸 사고. 천만 원이면, 쇼핑 좀 하고 남은 돈으로 카드값을 다 갚고 체크카드를 쓰고 싶은 숙원사업을 하고. 일억이면 쇼핑리스트도 실컷 채우고 예금도 좀 하고. 좀 더 늘어나면 부동산 투자까지 할 수 있을까 생각 중이다. 어쩌나 큰일 났다 돈이 늘어나면 늘어나는 대로 욕심도 끝이 없다. 욕심은 어디쯤에서 멈출 수 있을까. 아니, 멈출 수 있을까.






로또를 자주 사는 남편이 일요일에 로또를 내민다. 당첨되는 즐거움을 하사하겠으며 당첨금을 공평하게 나누겠다는 사랑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열심히 생색을 내며. 로또용지를 펼쳐두고 큐알코드를 찍는다. 웹페이지가 뜨기까지 몇 초 동안 공상에 빠진다. 1등이 되면 그 돈으로 무얼 할 수 있을까. 사고 싶은 것을 원 없이 살 수 있을까. 기부아동을 몇 명까지 늘릴 수 있을까. 백화점 VIP 되어서 발렛 한 번 맡기고 싶은데, 매년 VIP실적은 못 채울 것 같네. 은행 PB센터에서 거래 한 번 해보고 싶은데, 그러려면 당첨금을 몽땅 맡겨야 할 것 같군. 번개를 몇 번을 연속으로 맞을 확률이어야 로또가 당첨이 된다는데 하고 싶은 거 다하려면 매일 번개를 맞아도 부족할 것 같다. 그 사실은 모르는지 신나서 이미 저 우주까지 날아간다. 그 사이 당첨이 확인된다. 앗, 당첨 안 됐네. 어쩜 이 많은 숫자 중에 겨우 하나 맞은 거니. 오천원도 당첨 안되면서 거한 상상한 내가 머쓱해진다.



얼마 전에 적금 만기가 되어 오랜만에 목돈이 통장에 들어왔다. 이렇게 마음이 든든할 수가 없다. 나 돈 많이 좋아했구나. 오랜만에 만져보는 목돈이었지만 사고 싶었던 물건 하나 사고, 카드 할부 정리하고, 다시 적금 하나를 들고 나니 흔적 없이 사라졌다. 엊그제 통장에 왔던 너, 그새 방뺐니? 그 돈을 묶어두고 돈 모으는 재미를 느껴보라던 남편의 조언도 며칠 만에 방 뺀 그 녀석이 들고 나른 듯 싶다. 돈에 관한 많은 책에서도 '종잣돈을 모으려면 아끼고 아껴라'가 지론이던데 그게 참 어렵다. 저축이란 게 본래 돈을 모으는 목적도 있지만 모으고 나면 쓰는 재미가 있어야 또 모으게 된다는 게 나만의 엉터리 지론이라 1차 아끼고까지는 가능했는데 2차 아끼고 가 어렵다. 힘들게 모은 돈이 쉽게 흩어지는 모습을 보니 큰돈 모으기가 쉽지 않은 거구나 깨닫는다.


시간관리에서 많이 나오는 이론 중에 하나는 아이젠하워 매트릭스다. 중요한 일과 급한 일을 나누어 일을 4가지로 분류한 것인데, 중요하고 긴급한 일, 중요하지만 긴급하지 않은 일, 중요하지 않지만 긴급한 일, 중요하지 않고 긴급하지 않은 일로 나눈다. 우리는 주로 중요하지 않지만 긴급한 일에 매여 있지만 장기적인 성과를 위해서는 중요하지만 긴급하지 않은 일에 시간을 따로 할애해야 한다고 한다. 이걸 문득 지출에 적용을 해 봐야겠다 싶다. 미래의 성과를 위해 집중해야 하는 중요하지만 긴급하지 않은 그것이 바로, 저축이겠구나. 은행에 적금을 하든, 투자상품을 가입하든 심지어는 계를 하든, 벽장에 현금을 모으든. 무엇이든 돈을 모으는 것 말이다. 정해져 있는 생활비에서 정해져 있는 비용들을 겨우 빼는 것이 생활비를 타서 쓰는 내가 하는 경제생활의 전부인데 그중 일정금액을 따로 제하여 저축을 하려니 선뜻 내키지가 않았다. 그래도 변화가 필요하다 싶어 용기를 냈다. 될 대로 되라지, 중간에 관두더라도 일단 해보자 하는 마음으로 재테크 책에서 늘 봤던 조언을 따랐다. '먼저 저축 금액을 떼어라.'

그렇게 시작을 했지만 새로운 달이 돌아올 때마다 크지 않은 금액이었음에도 생활비가 부족한 것은 아닌지, 이번에 적금 해지해야 하는 것은 아닌지 걱정이 됐다. 만기가 되었을 때 저축 금액 때문에 이전보다 생활이 궁핍 해졌나를 따져보면 또 그렇지가 않았다는 것이 아이러니했다. 아마 남는 돈으로 저축하려고 했으면 화성에 우리가 살게 되었을 때쯤 저축을 할 수 있었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현재의 욕구를 줄여 그 대가로 미래의 나는 좀 더 큰 욕구를 채울 수 있으리!라는 마음으로 어르고 달래 중간에 해지하지 않고 만기까지 버텼다. 티끌을 모아도, 모아서 먼지라도 된다면 티끌보다는 쓰임이 있지 않겠는가.

함께 쇼핑욕을 마트쇼핑으로 채워봤던 어린시절의 딸.


*'오후의 글쓰기'(저자 이은경)에 나오는 글쓰기 과제를 토대로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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