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게 얼마짜리 갈비야

by 다정한 여유

경기도 외곽에 사는 다정 씨(40세)는 오늘 매우 황당한 일을 마주했다. 그 일은 저녁마다 보던 홈쇼핑에서 발생했는데 경위는 이러하다.


다정 씨는 어제 홈쇼핑에서 본 LA갈비를 구매했다. 내일모레 예정된 집들이에서 가족들과 LA갈비를 구워 먹으려는 야무진 계획 하에 홈쇼핑을 뒤지고 있었다. 홈쇼핑은 보통 익일 배송이라는 엄청난 배송시스템을 갖추고 있기 때문이다. 오, 적절한 아이템을 찾아냈다. 짭조름하고 달달한, 아무리 먹어도 양념이 질리지 않아 매일 먹게 될 것이라는 마성의 LA갈비란다. 쇼호스트가 한쪽을 물어뜯는데 "어머~~~"하는 긴 탄성과 함께 극찬이 쏟아진다.


"제가 방송하면서 LA갈비를 참 많이 먹어 봤거든요? 이건 정말 다르네요. 일단 정말 부드럽고요. 양념이 아주 적당히 배어 있어요. 밥반찬에 딱이에요. 흰쌀밥 어딨죠? 바로 하나 더 먹어야겠어요. 한 술 가득 떠서 위에 하나 올려서 먹어볼게요. 여러분, 이거예요, 이거예요. 궁합이 딱입니다. 이거 자연해동 시켜서 바로 뜯어서 구우시면 됩니다. 양념은 다 붓지 마시고 반만 부어 구워보시고 간을 보시고 또 추가하시는 걸 추천할게요. 팩 안에 들어있는 고기양도 딱 적당해요. 너무 많이 들어있으면 얘네들끼리 안에서 붙어서 자연해동해도 잘 안 뜯기고 안 쪽은 양념이 잘 안 묻어 있고 하잖아요. “

숨은 쉬고 있는 걸까 싶게 속사포랩처럼 LA갈비 예찬을 쏟아낸다.


“역시 많이 먹어보시고 연구해 보신 분이 만드셔서 다르네요. 이게요 여러분, 안에 들어간 양념을 하나하나 다 체크해 가며 만드셨대요. 성분에 굉장히 까다로우신 거 잘 아시죠. 성분은 00님을 믿고 맛은 저를 믿고 구매하세요. 이게 음식은 구매하시는 분들도 굉장히 깐깐하게 보시는 분들이 정말 많거든요. 그런데 이거, 저희가 9월에 한 론칭 방송에서 완판! 지금 방송이 4차인데요 내내 완판신화예요. 그게 뭘 뜻하겠어요. 저희 홈페이지 들어오셔서 리뷰를 확인해 보시면 아실 거예요. 리뷰는 거짓말 안 합니다 여러분. 저희가 지금 지난 방송보다 두 배 많은 수량을 준비했는데도요 10분 안에 매진 예상합니다. 00님이 워낙 꼼꼼하게 생산하시기 때문에 저희가 이 방송을 자주 준비할 수가 없습니다, 여러분. 하고 싶어도 할 수가 없어요. 방송 언제 다시 하냐, 물으시는 분들이 정말 많은데 한 달에 한 번 겨우겨우 방송하고 있거든요. 지금 몇 팩 하실지 선택하시고 바로 주문하셔야 돼요. 길게 고민하시면 없어요. 오늘 주문하시면 내일 저녁 반찬으로 드실 수 있습니다. 입맛 까다로운 저희 아이가 밥을 더 달라고 하더라고요. 여러분, 초딩입맛은 진리입니다. 주문하시고 남편분들께도 연락하세요. 내일 약속하지 말고 집에서 저녁 드시라고요. 자신 있게 말씀하셔도 됩니다."


보는 내내 다정 씨 입에 침이 고이고 멘트에 숨 쉴 틈이 없다. 늦을 새라 서둘러 홈쇼핑앱을 켠다. A홈쇼핑에서는 오랜만에 주문하는지 아이디와 비밀번호가 맞지 않는다고 해서 조금 초조해진 다정 씨는 비밀번호를 바꾸기로 한다. 휴대폰인증을 거쳐 비밀번호를 변경하고 드디어 로그인에 성공한다. 다정 씨는 통 크게 8팩을 주문한다. 웰컴백 쿠폰도 쓰고 카드사 할인까지 적용했더니 가격이 아주 훌륭하다. '알뜰하게 잘 샀어!' 주문을 끝내자마자 주문완료 알람이 온다.


'다정회원님, 주문이 완료되었습니다.

빨리 만나보실 수 있게 배송해 드릴게요.

상품명: 맛있는 LA갈비 * 8팩 총 3.2kg

결제금액: 74,960

배송예정일: 12월 15일 이내

배송지: 서울 00구 00로 00길

주문일자: 2023/12/14'

흡족한 미소를 지으며 화면을 보니 '매진임박'글씨가 떠있다. '비밀번호 변경한 게 신의 한 수였네.' 다정 씨 얼굴에 흐뭇한 미소가 한가득이다.

작가 Drazen Zigic 출처 Freepik


아침에 일어나 아이를 학교에 보내고 다정 씨는 운동을 간다. 끝나고 보니 A홈쇼핑에서 알림이 와있다. '저녁때 사랑이와 한 팩 먹고 나머지는 김치냉장고에 넣어놓아야지. 오예, 저녁 메뉴 해결! 엄마아빠 입맛에도 잘 맞겠지?' 배송완료 문자에 들떠 문을 열어 얼굴을 빼꼼 내밀어 보았지만 아직 안 왔다. '아저씨가 배송완료 버튼을 미리 누르셨나?' 다정 씨는 좀 기다려 보기로 한다. 아이학원 라이드 다녀오며 도서관까지 들렀다 왔는데도 아직 안 왔다. 다정 씨는 배송기사님께 전화를 걸어본다. "여보세요, 네 여기 00 아파트 00동 00호인데요. A홈쇼핑 물건이 배송완료 되었다고 문자는 왔는데 아직도 물건이 안 와서요. 네에??? 세상에. 아, 네. 알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연락해 볼게요. 감사합니다." 이럴 수가. 이사오기 전 주소로 배송이 간 것이다. 다행히 배송기사님이 평소 수령인과 이름이 달라 전화를 했지만 내가 받지 않았고, 음식인 것 같아 그분께 양해를 구해 보관을 부탁했다고 하신다. 배송기사님의 센스가 보통이 아니다. 다정 씨는 기사님이 전해주신 전화번호로 연락을 해 지금 찾으러 가겠다고 한다. 왕복 2시간 거리인데 못 살겠다고 생각했지만 부피 큰 물건을 보관해 주시니 감사할 따름이라 여긴다. 그토록 맛있다는 LA갈비를 버리지 않고 찾아올 수 있어 얼마나 다행인가. 학원이 끝난 사랑이와 출발한 다정 씨는 감사한 마음에 커피상품권을 드리고 소중한 LA갈비를 찾아온다. 센스만점 기사님께도 편의점 상품권을 보내드려야겠다고 생각한다. 주유비까지 더하니 LA갈비 단가가 한참 올라간다.


다정 씨는 홈쇼핑에서 음식 같은 신선 식품은 특성상 반품 처리가 어렵다는 사실을 하나 배운다. 사실 이런 실수가 다정 씨는 처음이 아니다. 지난번에 급하게 필요해서 주문한 아이 실내화도 예전 주소로 배송이 되었다. 그때는 심지어 10년 전에 신혼 때 살던 곳이라 찾기가 매우 어려웠다. 똑같은 실수를 반복한 거다. 아이에게 뭐라고 할 일이 아니다. 바빠서인가? 눈코 뜰 새 없이 바쁘기는 하다. 드라마를 보며 청소를 하고 홈쇼핑을 하면서 빨래를 개고 SNS를 하면서 밥을 안친다. 시간 안에 할 일을 테트리스 하듯 끼워 넣는데 진심이다. 빡빡하고 빈틈없이 넣는 것이 다정 씨의 목표다. 아이 학원 라이드를 나가는 길에 분리수거를 하고 돌아오는 길에 세탁소를 들러 옷을 찾고 도서관에 가서 예약도서를 찾는다. 집에 돌아와서는 배송완료된 재료들로 저녁준비를 하고 빨래를 돌린다, 책을 읽고 인증을 하고 다시 아이를 데리러 출발한다. 완벽한 동선이라고 생각하지만 다정 씨는 집에 오는 길에 다리가 풀려 넘어질 뻔했다. 저녁을 하는데 머리가 복잡하다. 세탁소에서 재킷 주머니를 확인하지 못했고, 도서관에는 오늘 반납해야 할 책을 깜빡 잊었다. 다정 씨는 결국 김치볶음밥 위에 올릴 계란프라이를 태우고 말았다. 얼마 전 읽은 '힘과 쉼'(백영옥에세이)에서 본 구절이 떠오른다.

'시간 관리의 요체는 무엇을 할 것인가가 아니라 무엇을 하지 않을 것인가를 먼저 결정하는 것이다. 모든 것을 하겠다는 계획이야말로 가장 최악의 계획이다.' 다정 씨에게는 분명 정돈된 일상이 필요하다.


아이 학원 라이드에 최적화된 다정 씨에게 왕복 2시간의 저녁 장거리 운전은 아무래도 무리였나 보다. 미열에 몸이 노곤해져 설거지거리가 아직 쌓여있는데 그저 눕고만 싶어 진다. 다정 씨는 쌍화탕을 하나 레인지에 돌리며 생각한다. '여기에 병원비까지 더하면 LA갈비가 아니라 한우갈비 되겠네.'

작가 topntp26 출처 Freepik

*'오후의 글쓰기'(저자 이은경)에 나오는 글쓰기 과제를 토대로 작성하였습니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얼마면 되겠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