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자신 있게 자세히 설명할 수 있는 분야가 있다면 단연 빵이다. 자타공인 빵순이로서 빵력 2n년차에 이르렀다. 좋아하는 빵과 유명 빵집에서 맛본 빵에 대해 누구와도 대화할 수 있다. 내가 자신 있게 자세히 설명할 수 있는 분야가 있다면 은행판매상품이다. 은행 다닐 적에 열심히 판매하면서 연구한 것을 토대로 퇴직 이후에도 심심하면 이 상품 저상품 기웃거리며 살펴본다. 내가 자신 있게 자세히 설명할 수 있는 분야가 있다면 건망증이다. 건망증에 관한 에피소드가 한둘이 아니고 까먹었던 사실마저도 까먹는 엄청난 건망증의 소유자다. 이 중 가장 자신 있게 설명할 수 있는 분야를 꼽으라면, 그건 못하겠다. 이건 마치 이런 것과 같다. 좋아하는 음식은 김밥, 돈가스, 순댓국, 탕수육, 짬뽕 등이 있지만 일주일 내내 하나만 먹어야 한다면 무엇을 고르라면 쉽게 답하지 못하는 것. 대중 앞에서 10분간 프레젠테이션을 하고 질의응답을 받으세요, 하고 물으면 어떤 주제로도 할 자신이 없는 것.
요즘은 책뿐만 아니라 인터넷을 통해서도 워낙 많은 양질의 정보를 접할 수 있는 시대다. 누구든 전문가 못지않게 발전할 수 있다. 좋아하고 관심 있는 분야가 많아서 하루종일 인터넷을 찾아보고 뒤져보라고 해도 난 시간이 부족할 것이다. 매일 그렇게 정보를 찾아 캡처하는 게 일상인데 전문가까지는 못되어도 준전문가라고 할 수 있는 분야가 왜 없는 걸까. '끈기, 끈기의 문제다.' 뭐든 하나 진득하게 파고들어야 깊이라는 것이 생길 텐데 꾸준히 무언가에 매달려본 경험이 없다. 아! 내가 가장 자신 있게 자세히 설명할 수 있는 분야가 있었구나, 끈기의 부재. 관심 있는 것에 달려드는 것은 참 잘한다. 금방 내팽개쳐 버리거나 빠져나가는 것은 더 잘한다. 이 우물, 저 우물 파기 시작해서는 몇 삽 뜨지 못해서 구덩이는커녕 비가 와도 물이 고일는지 의심스럽다. 정말 관심 있는 것을 아직 못 만나서 그럴 거야, 누군가 위로한다. 앞으로 인생에서 만나게나 될는지. 위안받기 전에 걱정부터 된다.
레고를 가지고 놀다가 인형을 가지고 논다. 얼마 안 된 것 같은데 슬라임을 꺼내기 시작한다. 방은 레고와 인형과 슬라임이 한데 섞여 혼돈의 카오스가 되어 간다. 끈기 하나만 문제인가 싶지만 엄마는 끈기 없는 유전자의 탓인지 그 문제만 도드라져 보인다. 친구네 아이는 몇 시간씩 그림을 그리며 논다는데. 비교는 금물인 걸 알면서도 그 늪에서 헤어 나오기가 쉽지 않다. 나이에 비해 집중을 못하고 끈기가 없는걸까. 결국 아이가 다니는 기관 선생님께 상담을 요청한다. 심리미술을 하는 기관이고 오랜 시간 아이를 지켜본 선생님이 계셔 적합한 솔루션을 받을 수 있었다.
'작은 목표를 제시하라.' 작은 목표를 달성한 아이는 자기 효능감을 느낄 수 있으며 그 힘으로 다음 단계로 나아가게 된다는 것이다. 그런 과정을 거치며 즐거움을 경험한 아이는 어려움이 닥쳐도 극복하려고 노력한다고 한다. 끈기도 경험이 필요하고 훈련이 필요한 것이구나! 아이 일로 상담을 받거나 육아서를 읽다 보면 나에 대해서도 돌아보고 적용할 수 있는 게 많아서 좋다. 아이가 문제가 아니라 나부터 제대로 살아보자 싶은 순간과 마주하게 된다. 어른이 되어서는 스스로를 육아(育我) 하고 있나 보다.
아이들이 스스로 정한 작은 목표는 반드시 해낼 수 있도록 하여 작은 성공 경험을 모아보시길 바랍니다.
부모님 입장에서 하루에 수학 다섯 문제는 성에 차지 않을지도 모릅니다. 너무나 쉽게 다섯 문제를 풀고 놀고 있는 아이를 보면서 속은 타들어가고 '그냥 열 개를 하라고 할 걸 그랬나?'라며 후회감이 밀려올 수도 있어요. 하지만 '쉽게 다섯 문제를 푸는 것'이 아이들에게는 매우 귀중한 경험입니다.(중략) '뭐야, 다섯 문제, 별거 아니잖아.'라는 것을 경험한 아이들은 이후에 열개, 스무 개도 쉽게 풀게 됩니다. 여기서 가장 중요한 것은 작은 목표라도 아이들이 스스로 정해야 한다는 것!
『그렇게 말해주니 공부하고 싶어 졌어요』한혜원
돌아보니 시작하기 바빴지 목표를 세운 적은 없었다. '시작이 반이라니까 일단 시작해.' 무식하게 덤벼들기만 했으니 흥미도 지속이 안되고 다른데 눈 돌리기 십상이었던 것이다. 끈기가 생길 틈이 없었다. 이제는 시작하기 전에 먼저 작은 목표를 1-2개 정해야겠다. 그렇게 첫 삽을 떠야겠다.
*'오후의 글쓰기'(저자 이은경)에 나오는 글쓰기 과제를 토대로 작성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