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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정한 여유 Jan 19. 2024

너 이리 안 올래?

도망간 생각을 수배 중입니다.

일단 누웠는데 잠이 오지 않는다. 아까 오후에 커피를 또 한 잔 했구나. 그놈이 범인이구나. 오은영 박사님이 누워서 눈을 감고 있으면 자는 것과 거의 같다고 하셨지, 그래 눈은 감고 있자. 잠은 안 오는데 눈만 감고 있자니 상당히 지루하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기로 한다. 예전에 아이한테 읽어주던 존 버닝햄의 '마법 침대'라는 그림책이 있었다. 아이는 마법 침대를 타고 매일 밤 신나는 여행과 엄청난 모험을 한다. 지금 나도 거의 마법침대행이다. 몸은 일자로 누워있고 눈은 감고 있으며 약간 자는 척하기 위해 노력 중이지만 머릿속에서는 우주 끝까지도 여행할 수 있을 것 같은 생각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있다.


그러다 불현듯 번개 같은 생각들이 머리에 꽂힌다.

'그래 맞아! 그거야!! 세상에나, 어떻게 이런 생각을 했을까!!!!!'

유레카를 외치며 뛰쳐나가고 싶지만 이제는 따뜻한 이불속이 좋다. 나갈 수 없다. 메모지와 펜은 저 멀리 식탁 옆에 있고 핸드폰은 충전기에 안착해 있다. 어쩌지. 이 생각이 이거 분명 대박인데, 글감인데. 에디터픽인데!! 그래 반복해서 생각하자. 반복하자 반복하자. 잊지 말자. 그래 자기 직전에 들어온 정보를 뇌는 자는 동안 되새긴다고 헸지!! 반복하면 꿈에 나올지도 모르지. 낼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옮겨 적으면 돼!!!

자기 직전 나는 천재 작가가 되고 뛰어난 해결사가 된다. 훌륭한 상담가가 되고 최고의 발명가가 된다.


둥근 해가 떴다. 기상 알람이 울리면 눈을 뜬다. 새벽 줌모임에 가야 한다. 알람 10개에도 깨지 않던 과거의 나는 내다 버렸다. 상쾌한 아침을 맞이하며 기지개를 켠다. 불을 켜고 노트북을 켠다. 부신 눈을 반쯤 감은 채로 양치를 하고 전기포트에 물을 올린다. 아, 상쾌하긴 한데 뭔가 까먹은 이 느낌은 뭘까. 따뜻한 물을 한 모금 마시고 깨닫는다. 아뿔싸, 누워서 떠올린 그 멋진 아이디어를 어젯밤에 두고 왔다. 찾으러 갈 수가 없다. 아무리 떠올리려 생각해 봐도 반복하자는 굳은 결심만 기억날 뿐이다. 열심히 헤엄쳐봐도 같은 자리를 맴도는 느낌이다. 끄트머리만 생각나고 중심에 가닿지 않는다. 아르키메데스가 욕탕에서 뛰쳐나온 이유가 있었다. 이전에 몇 번 나 같은 경험이 있었을는지도 모르는 일이다. 나도 다음번엔 침대에서 벌떡 일어나야 할 텐데. 머리맡에 메모지를 두라고도하고 핸드폰에 메모를 하라고도 하던데 매일 밤 번뜩이는 생각이 나는 게 아니라 그런지 그런 환경을 만들어 두는 걸 자꾸 미루게 된다. 자면서 드는 생각이 자동으로 핸드폰으로 전송되었으면 좋겠다, 이런 과한 욕심만 부리게 된다.

누우면 떠오르는 야행성의 내 생각들은 지금 어디에 있을까? 머릿속에 한 번 들어온 정보는 우리가 모르는 어딘가에 다 저장이 되어 있다는데 멋진 생각들만 끼리끼리 모여서 위장술이라도 쓰고 있는 걸까. 놓친 생각들을 잡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나친 생각 중에 삶의 정수가 담겨있을까 초조한 마음이 들었다. 밤에는 메모를 하고, 낮에는 글을 쓰기 시작했다. 함께 생각 잡으러 가보실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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