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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정한 여유 Jan 26. 2024

너는 나의 비타민

이제 비타민 챙겨 먹을 나이라고, 꾸준히 먹어야 효과가 있다고 한다. 체력이 후두두둑 떨어지는 느낌에 비타민을 챙기기 시작했다. 육체적인 변화가 있는지는 아직 모르겠다. 하지만 심리적인 효과는 확실히 있다. 먹고 나면 ‘음, 그래 이 맛이야. 왠지 좀 쌩쌩해지는 것 같아.’ 플라시보인지 아닌지 모를 느낌이 빵빵하게 차오른다. 그 느낌 덕분에 잊지 않고 챙겨 먹고 있다. 하지만 요즘 내가 하루종일 주야장천 찾는 진짜 비타민은 따로 있다. 브런치가 나의 비타민이다.


도세권으로 이사 온 덕에 아이책 빌려주러 갔다가 내 책도 꼬박꼬박 빌려와 읽었다. 독서모임도 열심히 참여하면서 다양한 분야의 책들을 읽었다. 그런데도 내가 원하는 책 많이 읽는 깊이 있는 사람 대열에는 들어서지 못하는 걸까. 왜일까. 많은 책에서 독서의 완성은 '쓰기'라고 한다. 그래, 내가 쓰기를 안 해서 그렇구나. 쓸 때 비로소 제대로 된 독서를 하는 거라니, 헛독서를 해왔던 것인가. 글쓰기에 대한 필요를 인식하고 나니 욕망이 점점 커졌다. 하지만 일기 한 줄 안 쓴 지 오래인데 갑자기 글쓰기가 될 리가 있나. 오프라인은 차치하고 온라인 글쓰기도 거의 안 하고 살았다. 블*그에는 아이 크는 게 아까우니 쓰자 해놓고는 한 달에 한 번 사진만 올리기 마저 몇 달째 밀려있고, 인스*그램은 사진 한 장에 한두 줄 쓰는 것이 끝인데도 하지 않고 있다. 그렇게 글쓰기에 대한 욕망은 바람 빠진 풍선이 되어 마음 한구석만 차지하고 있었다.


쓰지는 않고 늘 구경만 하던 SNS에서 누군가 작가를 하고 있다는 게시물을 보았다. 브런치작가. 그게 뭔지도 모르면서 그냥 근사해 보였다. 작가 호칭을 어디서 들어볼 수 있을까 싶어 호기롭게 작가신청을 했다. 브런치를 제대로 돌아보지도 않고 작가 될 생각에 마음만 앞서 급하게 써냈다. 작가 되면 어떨까, 한참 동안 한 상상이 무색하게 똑! 하고 떨어졌다. 오뚝이 같은 심정으로 또 해야지, 하고는 용두사미를 실천하며 브런치를 잊고 있었다. 슬기로운 초등생활로 유명한 이은경선생님은 나의 온라인 교육주치의. 늘 지켜보던 선생님의 SNS에서 브런치 수업을 보았다. 나한테 하는 투자는 늘 미적이게 되어 1기는 신청하지 못했다. 결국 수업이 진행되는 내내 후회하다가 2기 수업을 신청했다. 수업을 들어보니 브런치 합격에도 나름의 공식이 있음을 알게 되었다. 그렇게 다 차려진 밥상에 숟가락 얹어 작가가 되었다. 가족들에게 작가가 되었다며 선언하고 틈나면 식탁에 앉아 글을 쓰고 있다. 가끔 내가 쓴 글이 에디터픽이 되어 더 많은 사람들에게 노출되어 조회수가 오르고 얼마 안 가 크리에이터 배지를 달면서 마음에 무언가가 가득 차올랐다. 로또 1등에 당첨되면 이런 기분이겠구나 싶게 땅에서 10센티쯤 붕 떠있는 기분이었다. 지나가는 사람이 어깨를 부딪혀도 "괜찮아요(저 작가예요)" 천 원짜리 펜을 골라 계산하면서도 "고맙습니다.(저 작가인데 메모할 때 쓰려고요.)" 큰일이다, 아무래도 작가병에 제대로 걸린 것 같다.




글을 쓰고 나면 조회수는 얼마나 나왔는지 물론 궁금하긴 하지만 연연하지 않기로 했다.(그래도 연연하고 있다) 그토록 하고 싶었던 글쓰기를 지금 하고 있다는 사실을 떠올리면 정말 신이 난다. 브런치라는 공간이 주어진 것이 감사하다. 오늘은 무슨 글을 쓰지, 다음에는 무슨 글을 쓸까. 이 표현은 괜찮을 걸까. 이렇게 한 가지

대상에 열정적인 적이 언제였던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브런치에 글을 쓰고, 브런치 글을 읽고, 같이 브런치 수업 들었던 동기들과 수다를 떤다. 브런치가 요즘 나의 하루를 꽉꽉 채우며 삶의 활력소가 톡톡히 되어주고 있다.

글을 쓰며 가장 크게 느끼는 글쓰기의 순기능은 소통이다. 가족들에게만 작가임을 밝혀둔 상태인데 가족들과 다양한 주제에 대한 나의 속내를 드러내 보일 수 있어 굉장히 밀도 있는 소통을 하고 있는 느낌이 든다. 아이는 글 올렸냐고 물으며 글쓰기 현황을 매일 체크한다. 글 쓰기 시작한 엄마의 변화에 관심이 매우 많다. 쓰기를 즐겨하지 않는 아이도 글쓰기에 조금씩 관심을 갖고 있다. 늘 아이에게 질문하고 아이의 생각과 의견을 많이 들으려고 애쓴다. 그 반면 나의 생각을 많이 말하지는 않는 것 같다. 그런 면에서 한 번 정리되고 다듬어진 글로 나의 생각을 전달할 수 있음에 만족하고 있다. 친분이 없어도 구독과 라이킷과 댓글로 나의 생각에 공감받고 위로받는 경험도 아주 신선하다. 브런치를 통해 나누는 마음이 참 소중하다. 남과의 소통뿐만 아니라 나와의 소통도 하고 있다. 글을 쓰다 보면 이런 생각을 했구나, 그런 감정을 느꼈었구나 내 마음과 분주하게 소통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글을 쓰기 시작한 이후, 이제야 나는 나를 알아가고 있다.


글로 쓰지 않는다면 우리는 자신의 변덕스러움, 나약함, 얄팍함, 불확실성을 어디서 확인할까. 이토록 오락가락하면서 과연 어디로 가는지 궤적을 어떻게 그려볼까. 흔들리지 않는 게 아니라 흔들리는 상태를 인식하는 것. 글이 주는 선물 같다. 『쓰기의 말들』은유


필력이 좋은 작가님들의 글을 읽으면 마음이 쪼그라드는 것도 사실이다. 내 글이 부끄러워지고 좋은 글을 쓰고 싶은 욕심에 글쓰기 진도가 더디다. 하지만 글 쓰는 것이 타고난 능력이라면 이미 없이 태어났으니 어쩔 수 없는 것이고, 숙련된 기술이라면 아직 숙련되지 않았을 뿐이다. 브런치 작가로 데뷔해 책까지 출간한 손화신 작가님의 『쓸수록 나는 내가 된다』라는 책에 이런 말이 나온다. '모든 일에는 미숙한 시기가 있는 게 당연한 거고 1층 계단 없이 2층 계단을 오를 수 없는 것처럼 차곡차곡 밟아야 하는 단계들이 존재한다고 믿는다.' 그러니 계속 써야 한다. 그냥 꾸역꾸역 지치기 전까지 써보려 한다. 이은경선생님도 '소처럼'쓰라고 하신다. 비타민과 글쓰기의 공통점이라면 꾸준할 때 빛을 발하기 시작하는 것 같다. 소처럼 써야 하는 이유가 그것일 것이다. 그래, 이제부터 난 코에 브런치라는 뚜레가 뚫린 글 쓰는 소다, 음메.

열심히 오늘도 글을 써보았습니다, 음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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