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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정한 여유 Feb 02. 2024

직접 만든 식혜의 비밀

달달하고 시원한 식혜. 재래시장에 갔다가 식혜 한 통을 사 왔다. 우리 가족은 식혜를 모두 좋아한다. 한 통이 금방 순삭이다. 그렇다고 여러 통을 사두기는 그렇다. 한 통 먹고 나면 틈이 있어야 다음 식혜가 맛있다. 얼리지 않으면 삭힌 밥이지만 밥이 들어 있어 냉장고에 두어도 금방 상한다. 여러 이유로 살 때는 늘 한 통만 사기 아쉽지만 적은 식구라 한 통만 사고 만다. 모든 음식이 만드는 사람에 따라 맛이 다르지만 단순한 레시피 같은데도 식혜도 파는 곳에 따라 맛이 제각각이다. 차별점이라 봐야 당도일 텐데 당도가 적당해야 싱겁지 않고 벌컥벌컥 마시기 부담이 없다. 이번에 산 것은 딱 적당하다. 성공이다. 다음에 갔을 때 또 사 와야겠다. 한 가지 아쉽다면 식혜밥풀이 적게 들어있는 것 정도.

다들 입맛에 잘 맞는지 반나절만에 다 사라지는 중이다.

아이와 남편은 식혜에 들어있는 밥알을 별로 안 좋아한다. 물컹하고 맹한 느낌이 별로라고 한다. 반면 나는 식혜 밥알을 좋아한다. 부드럽고 은은한 단맛이 아주 마음에 든다. 아이가 식혜를 먹고 나면 컵에 늘 밥알이 남아있다. 그럼 난 그걸 열심히 퍼 먹는다. 식혜를 따를 때 잘 흔들어도 밥알은 쉽게 가라앉아 아이는 만족하지만 나는 그게 참 아쉽다. 보통 입구가 좁은 병에 들어있어 가라앉은 밥알을 퍼낼 수도 없다. 먼저 위아래로 흔들고 재빨리 병뚜껑을 딴 후 좌우로도 빙빙 돌려 컵에 따른다. 순발력과 손목 스냅을 최대한 활용해 본다. 그래서 집에서 만들 때는 밥알만 따로 보관하기도 한다. 식혜를 따르고 밥알을 한 숟갈 듬뿍 떠서 넣을 수 있도록. 어느 날, 식혜를 마시던 아이가 다 마신 잔을 건네며 말했다. "엄마 이거 먹어. 밥알 많이 남았어." 응 고마워, 하고 받아 들다가 갑자기 '나 남은 밥알만 먹는 엄마 된 건가?' 하는 의문이 든다. 아이는 다정하게 엄마가 좋아하는 것을 챙겨주는 것이라는 걸 알지만 엄마는 닭목 좋아하잖아, 하며 자신은 닭다리를 먹고 엄마인지 아빠에게 닭목을 건네주었다는 어떤 일화가 생각나는 것은 왜일까. 아이가 남긴 밥을 급히 입에 넣고 설거지통에 넣던 내 모습이 떠오르는 것은 왜일까.


보살핌. 정성을 기울여 두루 돌보아 주는 행위. [출처: 다음 국어사전]

사람은 보살핌을 받으며 산다. 아이는 보통 부모나 선생님 같은 연장자에게 보살핌을 받는다면 어른은 나이와 관계없이 다른 사람들에게 받는다. 버스를 타면 버스 기사님께, 마트에 가면 마트 직원에게, 집에서는 택배기사님의 보살핌을 받는다고 생각한다. 타인에게 받는 보살핌도 중요하지만 스스로를 보살피는 것도 중요하다. 나에게 정성을 기울여 나를 돌보는 것. 아이를 돌보듯 스스로도 돌봐야겠다고 생각한다. 남는 것만 나에게 주지 말고 좋아하는 것은 나를 위해 먼저 챙기기도 해봐야 한다.


식혜 한 통을 다 먹었는데 예전보다 소진속도가 빠르다. 이제는 두 통 사도 되겠다. 마트에 장 보러 갔다가 엿기름이 눈에 들어온다. 오랜만에 식혜 만들어 볼까나. 식혜 만들기는 아주 간단하지만 실은 약간 귀찮다.


<식혜 만들기>

1. 엿기름을 물에 불려준다. 불린 엿기름을 면포 같은데 넣어 삶은 소면 빨듯 주무르다 꾹 짠다. 그럼 뽀얀 단물이 만들어진다. 잠시 기다리면 위쪽은 맑고 아래쪽은 전분 푼 물처럼 가루 비슷한 것이 가라앉아있다.

2. 밥에 물을 조금 잡아 약간 꼬들하게 밥을 한다.

3. 밥솥에 밥을 넣고 맑은 단물 윗부분만 넣는다. 4-5시간 정도 보온으로 두고 열어보았을 때 밥알이 위로 둥둥 뜬다면 완성이다.

4. 밥알을 따로 옮겨두고 설탕을 넣어 잘 녹도록 끓인다. (밥알을 꺼내어 물만 끓이라고 나와있지만 대세에 지장이 없는 것 같아 같이 끓인다. 단계가 늘어날수록 해 먹는 비율은 현저히 떨어지는 타입이다.) 생강맛 첨가를 원하면 생강편 한쪽이나 생강가루, 생강청 등을 넣는다.

요즘은 식혜티백도 있던데 왠지 맛이 덜 날 것 같아 시도해 보지 않았다.

[밥솥의 크기에 따라 양을 달리할 수 있겠지만 보통 엿기름 250g 기준으로 물 열 컵, 설탕 한 컵을 넣는다. 밥은 1인분해서 넣는다. 단맛은 개인의 기호에 따라 설탕양을 가감하면 된다. 주의할 점이라면 식으면 단맛이 강해지므로 끓이면서 간을 보고 설탕을 첨가하면 많이 단 식혜를 먹게 될 수도 있다. 너무 달 경우 물을 타서 농도 조절을 해도 된다. 이런 양으로 만들면 1.5L 정도의 식혜가 완성된다. 단맛이나 생강의 향, 밥 양도 취향대로 조절할 수 있는 것이 직접 만든 식혜의 장점이다.]


재료도 단출하고 레시피도 단순하다. 다만 이 중 귀찮은 부분은 뒷처리이다. 엿기름을 짜고 나면 면포 여기저기에 붙어 있는데 어찌나 딱 붙어 있는지 비 오는 날 낙엽 저리 가라다. 고이 모아 쓰레기통에 버리기가 좀 번거롭다. 체망에 거르면 입자 고운 엿기름 떼내다 많이 화날 수 있으므로 개인적으로 추천하지 않는다. 그리고 들쩍지근한 단물 덕분에 주방 여기저기가 왠지 끈적끈적한 것 같은 느낌이다. 기분 탓도 나의 탓도 있다. 아주 큰 들통에 끓이면 깔끔할 텐데 찰랑찰랑하게 냄비용량을 가득 채워 식혜를 끓이다 보면 약간씩 넘쳐서 실제로 좀 끈적해진다. 하지만 식혀서 맛보면 얼른 다 먹고 또 만들어야겠다, 싶게 맛있다. 시원한 음료가 쓰디쓴 하루를 씻어주고 달달한 맛은 상처받은 마음을 매끈하고 윤기 나게 코팅해 준다. 이제 식은 식혜를 통에 담아 냉장고에 넣어둔다. 달콤한 엄마와 아내의 사랑이 냉장고에 보관된다. 아이와 남편 것은 밥알 적게 내 것은 밥알 많이. 별거 아닌 직접 만든 식혜의 비밀은 내 맘대로 밥알 많이 넣기다. 좋아하는 것을 나에게도 챙겨주는 것, 이 작은 비밀이 나 스스로를 돌보아 준다. 달콤한 식혜 한 잔이 날 다독이고 보듬어 준다.

밥알 용량초과. 스타벅스 인사동점 리미티드 에디션으로 팔았음 하는 소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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