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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정한 여유 Feb 09. 2024

고속도로에서 폭주하다 든 생각

신나게 놀다가 집으로 돌아가려고 내비게이션을 켠다. 으잉? 왜 이리 오래 걸리지? 시간이 평소보다 1.5배는 족히 더 걸린다고 나온다. 큰일이네, 아이 학원 시간까지 너무 촉박하다. 집으로 가려면 고속도로를 타야 하는데 고속도로 초입까지 내비게이션이 내내 빨갛다. 심한 정체구간이라는 뜻인데 한참을 그렇게 가야 할 것 같다. 겨우겨우 고속도로에 들어왔는데 이미 도착시간은 30분 이상 늘어나있다. 정체가 풀리고 슬슬 속도가 나기 시작한다. 늘어난 시간을 따라잡고 싶은 마음에 차선을 옮기다 보니 1차선이다. 앞차를 따라 열심히 달렸더니 속도가 너무 과하다. 심하게 긴장하고 운전하려니 힘들어 속도를 약간 늦춘다. 그 상태로 좀 달리다 룸미러로 뒤 쪽 상황을 살피며 속도를 살짝 올린다. 몇 번 반복했더니 급격하게 피로해진다. 안 되겠다, 하고는 2차선으로 다시 내려온다. 휴우, 이제 마음이 좀 편하다. 선생님께는 죄송하지만 못 가겠다고 연락도 드렸으니 천천히 가야겠다.


1차선에서 속도를 냈다가 뒤차 눈치를 봤다가를 반복하다가 엉뚱하게 머릿속에 떠오른 것은 아이 수학진도였다. 아이 수학선행을 천천히 해야겠다고 결심한다. 앞차를 내내 따라 달리지도 못하고 속도를 늦추자마자 끊임없이 남 눈치를 보고 있는 꼴을 보니 과한 수학선행에 쩔쩔맬 모습이 훤하다. 요즘 수학학원을 다녀야 하나 고민하는 중이라 생각이 그쪽으로 연결되었는지도 모른다. 그렇게 어림했다기엔 많이 비슷한 양상 같기도 하다.


고속도로에 진입한 지 얼마 안 됐을 때는 모두가 한 곳을 향해 달리고 있는 것 같다. 요리조리 추월하며 과속하든 정속으로 가든 쉬지 않고 달리고 있지만 시간이 좀 지나고 나면 다른 길로 빠지는 차들도 하나둘씩 있다. 빨리 목적지로 가서 쉬고 싶어 하는 차가 있는가 하면 휴게소에서 간식도 먹고 허리도 펴면서 쉬어가고 싶어 하는 사람도 있다. 빨리 목적지에 가서 쉬고 싶은 마음에 1차선에서 긴장하며 열심히 앞차 따라 달려간 적도 있다. 초행길에 고속도로도 몇 번 안 타봤던 때라 아마도 두 손에 긴장을 잔뜩 먹여 빳빳하게 운전대 위에 올려두고 어깨를 바짝 당겨 운전하지 않았을까. 2시간 정도 후에 목적지에 도착했을 때는 목 뒤가 뻣뻣해져 있고 허벅지까지 뻐근했다. 무리하면 안 되는구나 싶어 돌아올 때는 2,3차선에서 여유롭게 달리며 휴게소에 들러 라면김밥세트에 소떡소떡까지 사 먹었다. 소요시간은 당연히 늘어났지만 도착 후에 확실히 덜 피곤했다. 쉬지 않고 내내 달리기만 할 수 있는 사람이 있을까? 목적지가 멀지 않다고 휴식 없이 달려 도착했을 때는 남들보다 더 긴 회복시간이 필요할 지도 모른다.




예전에 나는 정속으로 달리며 쉬지 않는 차였다. 그렇다고 남들을 추월해 가며 달려 나갈 생각도 별로 없었다. 쉬고 싶은데 울며 겨자 먹기로 뛰고 있는가 하면 그것도 아니었다. 그냥 멈춰 쉴 수 있다는 것도 모르고 멈출 생각을 해보지 않았던 것 같다. 그냥 다 같은 사정이겠거니 온 힘을 쏟지도 않으면서 지루해하며 그저 묵묵히 갔다. 가다 보니 고속도로 출구가 나오길래 후다닥 출구로 빠져나왔다.


지금 내가 하고 싶은 것은 리듬을 타는 것이다. 여유가 되면 좀 달렸다가 숨이 차기 전에 속도를 늦췄다가 다시 좀 달리고. 1차선에서 속도도 냈다가 2차선에서 편안하게 가다가 휴게소에 들러 도넛도 사 먹고 마음 내키는 대로 해보는 것이다. 그렇게 해보고 싶다. 얼마 전에 달리기에 푹 빠진 언니를 만나서 달리기를 해본 적이 있다. 앱을 설치하면 가이드가 나오니 그대로 따라 하면 된다고 했다. 나는 1일 차, 언니는 20 며칠차였나. 앱은 달리기 1일 차에 맞게 적당히 뛰었다 빨리 걸었다를 반복하는 것을 알려주었다. 달리기 능력치가 이미 쌓여있을 언니에게는 좀 더 어려운 코스가 주어졌다. 그걸 반복하다 보면 의도하지 않아도 달리기 능력과 체력이 길러지겠지. 재미는 덤일 것이다. 그저 어디 가기 위해 달려서 통과해야 하고 어쩔 수 없이 가야 하는 길이 아니고 좋아하는 노래 들으며 달리고 휴게소에서 먹을 것도 골라 먹다 보면 그게 좋아서 어딜 가고 싶어 질지도 모른다. 멀리 가야 하는 길이 지루하거나 힘겹게 느껴지지 않을 것이다.


코로나가 심하게 유행했던 시절에 유튜브를 통해 김경일교수님의 강연을 들은 적이 있다. 강연에서 인상 깊었던 것은 행복하게 사는 것을 목표로 하지 말라는 것이었다. 행복은 목표가 아니라 수단과 도구가 되어야 한단다. 내 삶의 목표를 이루는 길에 행복을 수단과 도구로 써먹어야 한다는 것이다. 과정에 행복이 있다면 목표를 향해 가는 길이 덜 힘들 것 같다. 내 아이는 어떻게 가야 할까. 그냥 별 생각, 특별한 뜻 없이 가기보다는 즐겁게 갔으면 좋겠다. 다들 어딜 가니까 나도 가야지, 하고 갔을 뿐인데 가보니 그곳은 목적지가 아니라 그저 하나의 톨게이트였다. 목적지에 가기만 하면 누구든 결승테이프 끊고 그저 쉴  수 있는 줄 알았더니 띠링, 000원이 결제되었다는 알람만 울리고는 또다시 시작이었다. 행복하게 가려면 어떻게 해야 할지 일단 고속도로 휴게소 맛집 지도를 검색해 보고 간식 하나 입에 물고 고민해 봐야겠다.

소떡소떡보다는 꽈배기 좋아하는 편. 출처: 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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