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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정한 여유 Jan 31. 2024

퇴사를 후회해 본 적 없습니다

퇴사! 퇴사를 한 지 5년이 넘어가지만 퇴사를 생각하면 아직도 아주 억울하고 원통하다. 무슨 사건이 있어서 퇴사했느냐 하면 그건 아니다. 육아를 이유로 퇴사를 하지만 일하는 동안에는 정말 열심히 일했다. 실적이 뒷받침해 주니 열심히만 한 것은 아니고 잘했다고 생각한다. 그러니 회사는 묵묵히, 열심히 일하는 사람으로 알고 있을 거라 믿었다. 그렇게 믿었던 것이 억울하고 원통한 일의 시발점이었다.


나의 퇴사로 인해 직격탄을 맞는 것은 다름 아닌 동료들. 일은 고되고 매일이 전쟁터 같아서 일초에 한 번씩 그만두겠다는 마음을 먹었지만 버틸 수 있었던 것은 동료들 덕분이었다. 그런 마음이 전달되었는지 퇴사 전에 추억을 만들자며 추억 만들기 프로젝트까지 짜면서 직장생활 마지막을 아름답고 성대하게 장식해 주었다. 고맙고 고마운 동료들이 나의 퇴사로 인해 타격을 입는 것이 어쩔 수 없다면 최소한으로 줄이고 싶었다. 보너스 받는 것까지 치밀하게 계산해서 퇴사 날짜를 정하여 이익을 최대치로 올려 퇴사하는 사람이 많다고 했다. 그것보다는 나에게는 중요한 것이 있었다. 함께했던 동료들을 생각하며 업무 공백이 최대한 없도록 퇴사일을 인사이동일로 했다. 발령받은 직원과 바통터치하면 되니 완벽한 계획이라 생각했다. 부서장님도 인사부와 특별히 통화하셨다고 했다. 업무환경이 안 좋은 곳이니 신경 써서 발령을 내겠다고 했다는 말에 조금 안심이 되었다. 호언장담 했다기에 철석같이 믿었다. 인수인계 파일을 최대한 자세하게 작성했고 담당 고객파일에 자세히 메모를 달아놨다. 고객도 직원도 업무가 물 흐르듯 했으면 좋겠다고 퇴사하는 주제에 욕심을 부렸다. 그것이 과한 욕심이었다고 일침을 놓듯, 퇴사날 우리 부서로는 아무도 발령 나지 않았다. 내가 퇴사한 자리는 싱크홀처럼 뻥 뚫려버렸다. 퇴사날 한 회식자리에서 살면서 최고로 술을 많이 마셨던 것 같다. 너무 속상했고 배신감이 가득해서 다른 직원들에게 미안하다며 내내 술을 퍼마시다 동료 직원의 호출에 달려온 남편에게 업혀갔다. 다음 날 인사부에 문의한 부서장님은 담당직원 승진소식을 접했다. 승진해서 다른 곳으로 발령이 났고 그 말은 우리 부서 인사에 관해 책임을 지는 직원도, 문의를 받아주는 직원도 없다는 뜻이었다.


지난 회사생활을 돌아보았다. 회사에서 하라는 모든 교육을 충실히 이행하고 채우라는 목표가 과해도 늘 꾸역꾸역 채웠다. 쉽지 않았고 투덜댔지만 매일매일 노력했다. 목표는 채우는 게 당연하다 생각했고 목표를 채우고 나면 그래도 보람차구나, 착각했다. 노력과 실적이 이름 앞에 차곡차곡 적립되고 있다고 굳게 믿었다. 퇴사할 때서야 깨달았다. 가스라이팅 제대로 당했었구나. 그 착각이 재직할 동안 깨지지 않게 한 것까지 회사의 가스라이팅이었다. 끝까지 나보다 동료와 회사를 생각하면 아름다운 마무리가 될 줄 알았다. 퇴사사실을 주변에 알렸을 때 여러 조언들을 들었다. 퇴사를 마음먹은 시점부터는 자신을 먼저 챙기라고. 마지막까지도 철저히 가스라이팅 당했던 나는 그런 소중한 말들을 귀담아듣지 않았다. 콩깍지 제대로 씌었던 바보였다. 직원수가 많은 회사일수록 퇴사자는 전산상 퇴사 처리해야 하는 존재, 톱니바퀴에 빠진 나사 같은 존재일 뿐. 재직 동안 일을 어떻게 했는지 어떤 이유로 퇴사를 선택했는지, 그런 감상이 끼어들 틈은 없었다.

회사는 누가 되었든 톱니바퀴를 계속 돌릴 사람만 있으면 되는 걸까


사실 인사업무를 담당해 보지 않아서 상대의 입장은 알 수가 없고 그저 퇴사한 당사자로서 느낀 것일 뿐이다. 덕분에 퇴사한 것을 후회해 본 적이 아직 없는 것은 좋은 점 중 하나다. 그만하면 됐다 싶은지 재직 시절에 대한 아쉬움도 별로 없다. 열심히 일한 덕분에 동료들과 아직도 정답게 지낼 수 있고 기나긴 신입연수를 통해 돈독해진 동기들과의 추억도 진행 중이다. 회사가 월급을 준 덕분에 결혼 전에 잘 먹고 하고 싶은 거 하며 살았고 모은 돈을 결혼할 때 보탤 수 있어 뿌듯했다. 그렇다. 회사가 월급을 주었을 때, 일만 건네줬어야 하는데 나도 모르게 마음까지 주고 말았다. 그 마음을 회사는 주인의식이라고 했고 충성심이라고 불렀다. 그렇지만 나는 회사 사장이 아니므로 주인의식은 현실을 자각하게 되는 시점이 오게 된다. 충성심은 글쎄, 그거야말로 돌려받을 길 없는 일방적인 마음 아닌가 싶은 마음에 사전적 의미를 찾아보았다. '임금이나 나라에 대해 마음속에서 우러나는 정성스러운 마음' 임금이나 나라 정도 되는 대상에게 갈 수 있는 숭고한 마음이었네. 스스로 판을 깔아 가스라이팅 당하기 아주 좋은 조건을 만들었다. 주고받았어야 했는데 나만 너무 많이 줬다. 내 노동력은 쌓여서 퇴직금을 만들었고 마음은 쌓여서 기대를 만들었다. 퇴사할 때 그 기대를 돌려받았더니 오랜 기간 동안 변모하여 억울하고 원통한 마음이 된 거다. 기브 앤 테이크처럼 철저하고 정 없이 재단하자는 것이 아니다. 한쪽에 너무 치우치지 않게 적당히 균형이 맞춰져야 건강하게 오래갈 수 있는데 그것을 망각했다.

 



얼마 전 예전 동료들과 만나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한 분이 회사에 요즘 어렵지 않은 일에 비해 보수가 괜찮은 아르바이트 자리가 있다며 아이도 많이 컸으니 어서 지원하라고 성화다. 생각해 보겠다고 거리를 뒀으면서 다음 날 바로 채용사이트에 들어와 전화를 건다.  

"여보세요. 어제 말씀하신 거요, 그러니까 어디서 지원하라고요? 이거 맞아요?"

 '위의 정보로 지원하는 것이 맞습니까? 한 번 제출한 지원서는 수정이 어렵습니다. 신중한 검토 부탁드립니다.'

[네, 맞습니다.] 클릭! 가스라이팅을 한 번 당하고 나면 그걸 깨달은 후에도 벗어나기는 쉽지 않다는 말이 사실인 것 같다. 이번에는 정신 바짝 차려야지. 돈 받고 일하고, 일하고 돈 받고. 기필코 담백하게 가볼 테다. 비장할수록 위험하던데, 두고 봐야겠다.


그림출처: 작가 storyset 출처 Freepi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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