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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정한 여유 Feb 07. 2024

이제 제사는 그만 지내면 어때요?

명절 하면 제사지. 대부분 며느리들이 그렇지 않을까. 결혼 전에는 명절이란 긴 연휴였다. 무엇을 하며 연휴를 보낼까 하는 고민은 결혼과 동시에 바로 해결된다. 무얼 할지 고민할 겨를이 없다. 그 대신 이번에는 몇 종류의 전을 부치게 될 것인가, 얼마만큼의 콩나물 꼬리를 따고 도라지를 가르게 될까를 걱정한다. 걱정한 만큼 줄면 좋으련만, 하는 바람은 한 아름 가득한 콩나물 틈에 뭉개진다. 안타깝게도 그렇게 하루종일 다듬고 볶고 지진 갖가지 제사음식을 즐겨 먹는 이가 없다. 우리 집만 그런 걸까. 차곡차곡 쌓은 전은 그대로 차곡차곡 쌓여있다가 각자의 반찬통 속으로 소분된다. 수북하고 복스럽게 담아 위에 통깨를 솔솔 뿌린 콩나물은, 고사리는, 시금치는, 숙주는, 도라지는 통깨가 사라지는 딱 고만큼만 손을 대고는 젓가락질이 멈춘다. 담아주신 나물들로 비빔밥을 해 먹고, 전도 해 먹는다. 다들 같은 고민인지 명절음식을 활용한 레시피가 끝도 없이 검색된다. 이것저것 해 먹어 봐도 결국 쉰 내를 풍기며 반찬통 속에서 명을 다하고 가신다. 돌아가신 분들 오시라고 현관문도 열어놓던데 귀신들이라도 음식들 먹어 치우고 가면 덜 억울할 것 같다. 조상님 많이 드시라고 한 건데 어째 하나도 줄지 않나요? 오셨으면 좀 잡숫고 가주시겠어요? 그런 생각도 한 적이 있다. 화난 채로 힘든 채로 만든 음식이 과연 맛있을까? 음식의 맛은 정성이 다라는 말도 있지 않은가. 사랑의 가루도 뿌리라고 하지 않는가. 분노의 입김과 힘듦의 한숨이 섞인 음식이라 맛이 없나 싶다.

외우려고 사진을 찍어두지만 맨날 까먹는 며느리

명절 전날 시댁에 도착하자마자 앞치마를 장착한다. 여자 셋이 하루종일 부엌을 떠나지 못한 채 음식을 만든다. 시간이 지날수록 식탁에는 제사음식들이 하나씩 늘어난다. 이제 다 했나? 중간중간 밥 해서 먹고 치우고 하다 보면 12시간 넘게 일을 했는데도 부엌에서 벗어날 수가 없다. 다음날 꼭두새벽부터 일어나 밥을 안치고 굴비를 굽고 탕국을 데운다. 종종 거리며 제사상을 차린다. 홍동백서, 두동미서까지는 알겠는데 배는 배라서 꼭지가 위라고 하셨는지 아래라고 하셨는지 헷갈린다. 1년에 대여섯 번씩 해도 매번 헷갈리는 원칙들이 상위에 조르륵 차려진다. 빠진 것이 없는지 다시 한 번 두 번 꼼꼼하게 체크해 본 후에야 세 여자는 부엌 한편 식탁 뒤 쪽에 쪼그리고 앉는다. 마치 조상귀신들이 우리를 발견하면 안 될 것처럼. 아이가 좀 더 어렸을 때 쪼그려 앉아 있는 나에게 물은 적이 있다.

"엄마는 왜 제사 안 지내?"

"응, 글쎄. 엄마는 이 씨가 아니라서?"

딸아이라 남자만 지낸다고 할 수도 없고 달리 할 말이 없어 튀어나온 말인데, 영 틀린 말도 아니다. 생각해 보면 나도 어렸을 적 엄마, 작은엄마는 왜 제사 때는 절을 안 하시고 새배드릴 때만 절을 하시나, 묻지는 않았지만 궁금했었다. 나중에 아이 이야기를 들어보니 실은 너무 지루해서 엄마는 대체 왜 안 지내는가, 부러웠다며 전혀 예상치 못한 의도였음이 밝혀졌다. 제사음식하다가 화가 난 내가 급발진하며 뜬금포 대답을 한 슬픈 이야기. 딸아이가 다 커서 결혼할 때쯤엔 이런 관습이 사라져 있을까? 쪼그리고 앉아 뭐라도 잘못한 사람들처럼 큰소리도 못 내고 목소리 낮춰 말을 하다 보면 요즘의 많은 딸들이 비혼주의 노선을 걷는 것은 현명하다는 생각이 절로 든다. 과거 전통적인 유교식 제사는 음식준비부터 모든 제사 진행을 남자들이 했다고 어디선가 본 적이 있다. 철저한 남존여비 사상에 근거한 것이라 했는데 어쩌다 몇 백 년 뒤 현대의 제사는 남녀차별과 가부장제가 선택적으로 남아있는지 모르겠다.




산문집『다정소감』중에서 김혼비 작가는 제사에 대해 이야기한다. 좋아하는 작가 중 한 명이라 너무 솔직하게 써서 누군가의 공격을 받으면 어쩌나 걱정이 들 정도인데 실은 며느리입장에서는 이토록 통쾌하고 유쾌할 수가 없다.

제사를 없애자는 이야기에 반박 아닌 반박으로 등장하는 말들이 있다. 자주 등장하는 의견은 누구의 희생도 강요도 없이 정말 하고 싶은 사람들끼리'만' 모여 제사를 준비하고 지낸다면 굳이 없앨 필요 없지 않겠냐는 것. 동의한다. 예를 갖춰 망자를 기리는 의식 자체는 존중할 만한 것이기에 그렇게만 된다면 누가 뭐라고 하겠는가. 나 역시 진심으로 제사 지내드리고 싶은 망자가 있다.
이보다 더 자주 등장하는 의견은, 싫은 것과는 별개로 제사를 제대로 지내지 않아 조상을 화나게 할까 봐 두렵다는 것. '정성껏 제사를 드리면 조상에게 복을 받는다'는 맥락의 반대급부로 나왔을 '조상 잘 못 모시면 벌을 받는다' '제사 안 지내면 자손이 화를 입는다'같은 공포 기제가 심어진 말은 의외로 힘이 셌다.
(중략) 아닌 게 아니라 이런 유의 이야기는 잊을 만하면 어디선가 어김없이 들려왔다. 제사를 절에 모시기 시작한 해부터 집안의 누가 중병에 걸리고 누가 갑자기 쓸지고 누가 사고로 다치는 등 줄줄이 재앙이라더라, 추석 때 해외여행 간다고 처음으로 제사를 거른 아무개가 그 해 갑자기 구설에 휘말려 회사에서 쫓겨났다더라 같은 현대판 구전 민담들.
(중략) 아니 근데 무슨 이야기들이 이렇게 죄다 '특정 집단'에만 유리하게 선별적으로 짜였는지. 옥이야 금이야 손에 물 한 방울 안 묻히고 고생해서 잘 키워낸 손녀를 명절마다 데려다 부려먹는 남자네 집안에 벌을 내리는 조상신 이야기는 왜 없는 걸까? 이야말로 한 집안을 쓸어내버리고 싶을 만한 일일 텐데. 남자네 집 제사 지내느라 내 제사에는 몇 년째 오지 않는 증손녀 부부에게 분노해서 그 집안에 저주를 내리는 조상신 이야기는 들어본 적 있나?


여러 대목에서 묵은 체증이 내려가는 것처럼 속이 시원해 깔깔깔 웃게 된다. 큰 공감이 가는 탓에 어느 부분을 빼고 적어야 할지 모르는 이야기들이 내내 이어진다. 프린트해서 지니고 있다가 제사의 당위성에 대해 침 튀기며 이야기하는 사람에게 조용히 건네고 싶은 부분도 있다.

이런 민담 아닌 괴담을 들을 때마다 묻고 싶어 진다. '당신은 당신의 생일에 가족이나 친구들이 정성껏 음식을 대접하지 않거나 바빠서 축하를 잊고 지나가면 서운함을 넘어 이글이글 분노가 끓어올라 그들이 중병에 걸리거나 크게 다쳤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들어요? 망하라고 저주하고  구체적으로 복수를 계획하고 그래요?' 대부분 아닐 것이다. 근데 자신은 그런 사람이 아니면서 왜 조상들은 그런 영혼일 거라 믿어요? (중략) 정말이지 조상들에게 너무 무례한 것 같다. 자기들은 스스로를 상식적으로 이해심 있는 인간형으로 상정하면서, 애먼 조상들은 자손의 피곤한 일상이나 사정 따위 헤아릴 줄 모르고 그저 밥만 찾고 인사받기만 바라는 소시오패스로 만들어버리니 말이다. (중략)'제사 지내면 복을 주고 안 지내면 벌을 준다'니, 한국의 조상을 대체 어디까지 지질하고 졸렬하게 만들 셈이며, 대체 언제까지 '밥에 환장한'이미지로 소비할 것인가. (중략) 우리는 이러한 조상 비하와 조상 혐오를 멈춰야 한다. 그동안 제사를 지냄으로써 도리어 조상에게 자존심 손상과 명예훼손의 피해를 입혔다면, 이제라도 제사를 지내지 않음으로써 조상에게 깊은 신뢰를 표현해 보면 어떨까. (중략) 조상의 품격을 조건 없이 믿는 것으로 그들에게 예를 갖출 필요가 있다.


최근에 감사하게도 제사를 없애고 연미사로 대체하는 어마어마한 변화가 이뤄졌다. 난 10년, 형님은 20년 차다. 그전에도 여러 차례 논의가 있었지만 실행이 매번 미뤄졌던 이유는 위의 이야기를 빼다 박았다. 제사를 지내지 않으면 복을 받지 못한다는 그런 이야기들. 어머님은 50년 차쯤 되셨을 테니 가장 힘들고 지겹고 그만두고 싶으셨을 텐데 저런 이야기를 붙들고 긴 시간 묵묵히 해오셨을 것이 이해가 안 되면서도 안타깝다. 미사를 지낸 지 2년 차인데 매번 성당에서 만나고 헤어질 때마다 제사를 없애고 간소화한 만큼 우리는 더 많은 정성을 들여야 한다는 이야기가 빠지지 않는다. 냉담 중이라 할 말은 없지만 제사를 지내지 않는 대신 냉담을 풀고 기도를 열심히 하고 독실한 신자가 되어야 제사 이상으로 조상님들을 잘 모시는 것이라는 당부들이 후련한 며느리들의 발목을 잡아 다시 가라앉힌다.


1년에 한 번 가는 성묘에는 각자 정성을 다해 음식을 해가서 작지만 간소한 차례상을 차리고 있다. 우리 할머니 제사에는 음식을 해가기는커녕 한 번도 참석한 적이 없지만 얼굴 뵌 적 없는 조상님들을 위해서는 최선을 다해서 전을 부친다. 간단하고 간소한 차례상을 차리기 위해 세 종류의 전을 4시간이 넘도록 부치고 나면 얼굴이 붉으락 푸르락 한다. 옆에서 도와주고 눈치 보느라 고생했음을 알면서도 남편에게 애먼 화를 내본다. 용기 있게 나를, 며느리를 대변해서 이야기해 주는 누군가가 있다는 것을 떠올리며 화를 삭인다. 다음에는 사가야겠다고 마음을 먹었다가도 제사상에 없던 육전이라 그런지 아이가, 남편이, 다른 식구들이 맛있게 먹어주니 좀 싱거웠던 것 같은데 다음엔 간을 좀 더 해볼까 욕심이 생긴다. 실은 마음이 달래지는 것도 별거 없다. 수고했다, 덕분에 제사 잘 지냈다, 나물이 간이 참 잘 맞더라, 전을 이쁘게도 부친다. 그런 말을 들으면 힘들었던 마음이 언제 그랬냐는 듯 스르르 풀어진다. 이번 명절에는 며느리들의 마음이 딱딱하게 굳지 않길 바라본다. 옆에서 그 딱딱함에 한 방 얻어맞는 남편들도 없기를 바란다. 보름달에 두 손 모아 간절히 소원을 빌어본다. 달님처럼 밝고 몽글몽글하게 모두가 즐거운 명절 보낼 수 있게 해 주세요.

비나이다, 비나이다. 출처: 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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