햄스터와 아이들이 내게 가르쳐준 생명의 소중함
처음에는 그저 예민한 청춘기의 한 단면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시간이 갈수록 아들은 사소한 일에도 분노했고, 작은 말 한마디에도 집안은 뒤흔들렸다. 문을 쾅 닫는 소리, 분노에 차 던지는 말들, 그 뒤에 남겨진 침묵. 우리 집은 늘 지진대 위에 세워진 집처럼 불안정했다.
나는 엄마로서 어떻게든 이 상황을 버텨내야 했다. 아이가 흔들리면 나라도 흔들리지 말아야 한다고 스스로 다짐했다. 하지만 현실은 늘 달랐다. 아들의 분노 앞에서 내 목소리도 높아졌고, 딸의 눈물 앞에서 내 심장도 같이 무너졌다.
나는 자식과의 관계가 삐그덕 댈 때마다 다짐했다.
더 많이 들어주자.
더 많이 참아주자.
더 많이 안아주자.
그 다짐은 하루가 멀다 하고 무너졌지만 다시 일어나 다짐했다. ‘오늘은 실패했으니 내일은 더 잘하자. 오늘은 못 참았으니 내일은 더 참자. 오늘은 세 번 밖에 안아주지 못했으니 내일은 눈이 마주칠 때마다 안아주자.’ 엄마라는 이름으로 버티는 일이란, 끝없이 무너지고 다시 다짐하는 일이었다.
어느 날 저녁, 아들은 나와 싸우다가 끝내 딸을 향해 소리쳤다.
“너 때문에 내가 사랑을 못 받았어. 집에서 나가버려.”
그 말은 칼날 같았다. 아직 어린 딸에게 감당하기엔 너무나 무거운 말이었다. 아이의 얼굴은 순식간에 굳어버렸고, 나는 그 장면을 두 눈으로 지켜봤다. 가슴이 갈라지는 듯 아팠지만, 나는 그 순간조차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그저 이러지 말자고 눈물로 하소연할 뿐이었다.
힘든 마음으로 겨우 잠을 청했던 그날 밤, 큰 아이는 넘치는 화를 주체하지 못해 거실에서 깨어 있었다. 둘째가 잠든 줄 알았던 새벽 세 시.
적막을 찢는 노크 소리에 잠에서 깼다. 경찰이었다. 그 순간 나는 화들짝 놀라 일어나 현관으로 나가 누구시냐 물었고, 경찰이라는 소리에 바로 알 수 있었다. ‘아, 내 딸이구나. 내 딸이 인터넷에 죽고 싶다고 글을 남겼구나.’ 몇 해 전 친구의 딸이 인터넷에 ‘죽고 싶다’는 글을 쓰고 잠들었다가 경찰이 집을 찾아왔던 일이 떠올랐다. 그 기억이 내 머리를 세차게 때렸다.
경찰 한 분은 딸과 이야기를 나누었고, 다른 한 분은 나에게 물었다.
“어떤 일이 있었던 건가요? 도움이 필요하지 않으세요?”
그 말을 들은 순간, 나는 끝내 고개를 떨구었다. 이제는 내 힘만으로는 안 된다는 것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거실에 앉아 있던 아들은 자신 때문인가 보다 하면서 놀라고 뉘우치는 듯한 표정이었다. 순간 내가, 우리 가정이 무너지지 않으려면, 도움을 청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날 이후 나는 여성인권보호센터를 찾았고, 아들에게 도움이 될만한 단체 회장님께도 집으로 찾아와 달라 부탁했다. 이 가정을, 이 아이들을 더 이상 방치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딸의 마음은 늘 뒷전이었다. 나는 아들의 소용돌이에 휘말려 딸의 허전함을 제대로 보살피지 못했다. 그 아이가 자기만의 방식으로 버티고 있었다는 사실을 너무 늦게 깨달았다.
2024년 1월, 딸은 태어난 지 두 달 된 햄스터를 집에 들였다.
작은 두 손바닥 위에 올려도 남을 만큼 작고 연약한 생명이었다. 딸은 그 작은 몸을 두 손으로 감싸 쥐며 매일 정성껏 돌보았다. 먹이를 챙기고, 물을 갈아주고, 모래와 톱밥을 갈아주었다. 햄스터의 집을 정리하는 시간이 곧 딸의 하루가 되었고, 작은 숨소리 하나하나가 아이의 위로가 되었다.
딸은 인터넷을 뒤지고 책을 찾아보았다. 어떤 먹이가 좋은지, 어떤 톱밥이 안전한지, 챗바퀴는 어떤 모양이 다치지 않는지 하나하나 공부했다. 작은 생명을 위해 배우고 실천하는 일이 딸의 표정을 조금씩 바꾸었다. 햄스터를 쓰다듬는 순간만큼은 눈빛이 오랜만에 빛났다. 햄스터는 단순한 반려동물이 아니었다. 딸에게는 책임감이었고, 위로였고, 자기 성찰의 거울이었다. ‘나는 잘하고 있을까? 이 아이는 행복할까?’ 딸은 늘 그렇게 스스로에게 물었다. 그 질문은 곧 자기 자신에게 던지는 질문이기도 했다.
햄스터가 태어난 지 1년 10개월. 작은 몸은 시름시름 힘을 잃어갔다. 그 사이 딸은 자주 “죽고 싶다.”, “집을 나가고 싶다.”는 말을 내뱉었고, 어느 날은 손목을 긋기도 했다. 나는 그 말을 들을 때마다 화부터 냈다. 지금 생각하면 그것은 다그침이 아니라, 내 무기력의 다른 얼굴이었다. 아이를 안아주지 못하고 쏘아붙인 나는 매번 후회했고, 그 후회 속에서 다시 다짐했다. 무너지지 않기로.
엊그제, 햄스터가 해씨별로 떠났다.
아침에 잠깐 보았을 때, 힘겹게 베딩으로 깔린 톱밥을 파고 들어가 집 한가운데 몸을 묻던 모습이 마지막이었는데 그땐 몰랐다. 오후에 병원에 데려가려 했을 땐 이미 차갑게 식어 있었다. 하교한 딸에게 조심스레 소식을 전하고 함께 작은 박스에 베딩을 깔고 햄스터를 눕혔다. 꽃잎으로 장식하고 마지막 인사를 했다. 준비가 되면 덮어주자고 하자, 딸은 떨리는 입술을 꾹 다물고 따뜻한 이불을 덮듯 햄스터 위에 베딩용 톱밥을 뿌려주었다. 그러다 끝내 울음을 터뜨렸다. 꺽꺽 소리를 삼키며 울던 모습이 오래도록 마음에 남았다.
그날 밤, 침대에 함께 누운 딸이 천정을 바라보며 나에게 말했다.
"엄마."
"응?"
"죽지 마."
나는 딸에게 말했다.
“엄마 건강하게 오래오래 살 거야. 딸, 이렇게 작은 생명도 떠나니까 마음이 너무 아프지? 우리 딸, 엄마한테도 너는 그런 소중한 생명이야. 네가 죽고 싶다고 말할 때, 엄마 마음이 너무 아팠어. 네가 세상에 없는 거 상상도 하기 싫어. 사랑해. 많이 많이."
딸은 대답하지 않았다. 눈을 깜빡이며 내 말을 삼켜내듯 몸을 일으켜 앉아 있었다. 그러나 나는 믿고 싶다. 딸이 햄스터라는 작은 생명을 떠나보내며, 자기 생명 또한 귀하다는 것을 어렴풋이 깨달았다고.
며칠이 지나자 딸의 표정은 조금씩 밝아졌다. 물론 아들과 나 사이의 관계가 서서히 안정기에 접어든 덕분일 수도 있다. 하지만 나는 햄스터 덕분이라고 믿는다. 그 작은 존재가 아이의 마음에 남긴 것은 단순한 상실이 아니라, 책임과 사랑, 그리고 생명의 소중함이었다.
아들의 우울증은 우리 가족을 흔들었었다. 때로는 무너져버릴 것 같았고, 실제로 무너져내리기도 했다. 그러나 나는 매번 다시 다짐했다. 더 많이 들어주자. 더 많이 참아주자. 더 많이 안아주자. 무너지지 않기로, 끝내 우리 가족을 지켜내기로.
햄스터의 죽음은 우리에게 생명의 무게를 새겨주었다. 아들의 우울은 우리를 갈라놓았지만, 동시에 가족의 소중함을 다시 보게 했다. 딸은 햄스터를 키우며 생명의 소중함을 알았고, 나는 딸을 지켜보며 가족이라는 이름이 얼마나 무거운지 다시 배웠다.
햄스터의 집은 이제 비어 있다. 그러나 그 빈자리는 단순한 공허가 아니다. 우리가 잃고 나서야 깨달은 것들이, 다시는 잊지 말아야 할 것들이 그곳에 남아 있다.
나는 오늘도 바란다.
내 딸이, 내 아들이, 그리고 나 자신이 이 깨달음을 잊지 않기를.
우리가 서로에게 소중한 생명이라는 사실을, 그 누구도 부정하지 않기를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