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울의 늪을 지나는 아이의 엄마로 산다는 것
물안개처럼 희미한 새벽을 지나, 다섯 시가 되면 나는 부엌으로 간다. 방학이 되었지만 나의 시간은 오늘도 빠르게 시작된다.
혐오와 불안의 시대가 힘겹다.. 아니 고통스럽다는 너. 어쩌면 세상이 아니라 네 속의 또 다른 너에 대한 혐오와 불안과 맞서 싸우는 너 혼자만의 싸움, 방황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오늘도 불면으로 밤을 지새운 아들이 식탁 앞에 조용히 앉아 있다.
눈은 감겨 있지만, 그 자리에 있어 준다는 사실만으로도 나는 안도한다.
밥은 고슬고슬 보다는 적당히 찰기 있게, 국은 뜨겁지 않게.
그 애가 삼킨 세상의 고단함이 목을 넘기지 않도록 조심스레 맞춘 온도다.
숟가락이 그릇에 닿는 소리, 음~~ 맛을 음미하는 가벼운 숨소리.
그 조용한 리듬 속에서, 나는 오늘도 아들의 무사함을 확인한다.
밤 사이 울음소리를 들은 것도 같은데 무슨 일 있었냐는 말 대신, 그 곁에 앉아 그 애가 좋아하는 복숭아 한 톨을 꺼내어 깎는다.
그제야 뱉는 ㅡ새벽 감성 때문에요.(울었어요.)ㅡ라는 한마디 말에 나는 걱정했던 마음을 조금 내려놓는다.
살아 있다는 건 생각보다 거창하지 않다.
그저 앉아 있고, 씹고, 삼키고, 다시 일어서는 일.
그렇게 조용히 하루를 통과해 내는 일.
그 시간
베란다 창 너머 아메리칸 블루는 아직 피지 않았다.
깊은 밤의 습기를 잎사귀에 품은 채, 꽃봉오리는 입을 꼭 다문 듯 잠들어 있다.
그 모습은 어쩐지 아들과 닮았다.
밤을 통과하는 데 온 힘을 다 써버린 몸, 아직은 세상을 마주할 준비가 되지 않은 마음.
그러다 어느 순간,
식탁 위 그릇들이 비워지고, 과일을 다 삼켜갈 때 즈음,
베란다에 기척이 인다.
빛이 닿자마자, 아메리칸 블루가 조용히, 그러나 확실하게 꽃을 피운다.
작고 푸른 그 꽃은 매일 아침, 우리가 나눈 침묵과 기다림의 끝에서 처음으로 얼굴을 드러낸다.
그 찰나의 개화는 마치, 아들이 스스로 하루를 살아보겠다고
조용히 몸을 일으켜 방으로 돌아가는 모습과 닮아 있다.
말은 없지만, 분명한 시작이 거기 있다.
그렇게 하루는 다시, 우리에게 찾아왔다.
나는 그 모습을 놓치지 않고 바라본다.
아들의 등을 바라보며, 창가의 꽃을 바라보며,
조용히 되뇐다.
살아 있다는 건,
이렇게 서로를 기다려주는 일이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