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 많이 사랑을 주지 마라.

오래 사랑하기 위해 남겨두는 마음

by 여름둘겨울둘

엄마는 자식이 많았다. 딸 넷, 아들 하나. 그 다섯 중 누구 하나라도 서운할까 봐 칭찬도 사랑한다는 말도, 포옹도, 손 한번 잡는 것도 아끼고 또 아꼈다. 어린 나는 그 이유를 알 수 없었다. 동그란 자개밥상에 둘러앉아 밥을 먹는 우리 다섯을 바라보던 엄마의 얼굴을 기억한다. 그 얼굴엔 웃음 대신 무표정이 깃들어 있었고, 나는 그 무표정을 사랑의 다른 모양이라 늘 믿었다. 그래서 스스로 속삭였다.

'엄마는 나를 사랑할 거야. 그건 말하지 않아도 아는, 숭고한 거야.'

그 믿음은 나를 단단하게 만들었다고 생각했는데, 지금 돌이켜보면 단단함이 아니라 굳은살 같은 것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요즘 나는 자주 마음이 헛헛하다. 우울증인 아들의 기분을 살피느라 밤새 아들방에 귀를 기울이고, 사춘기 딸의 부드럽지만 날 선 눈빛을 외면하느라 아침부터 가슴이 조이기도 한다. 아들의 방 앞에 서면 문틈으로 새어 나오는 공기가 묘하게 눅눅하다. 오랫동안 빨지 않은 이불 냄새와 잠에서 덜 깬 숨결이 섞여 있다. 방 안에서 무겁게 발을 끄는 소리가 나면 손끝이 저릿해지고, 말을 걸까 그냥 지나칠까 그 사이에서 한참을 망설인다. 방 앞의 공기마저 식어있다.

딸은 거실 소파 한쪽에 반쯤 걸터앉아 길고 가느다란 손가락으로 화면을 천천히 훑는다. 웃는 듯한 표정이지만 그 웃음이 나를 향한 것이 아니라는 걸 나는 안다. 겨울이 와 여름이가 발밑에 앉아 짧은 꼬리를 천천히 흔든다. 부드러운 털에서 강아지 특유의 단내와 햇볕과 바람 냄새가 섞여 나온다. 그 눈빛은 단순하다.

" 왜 이렇게 오래 걸려요? 그냥 쓰다듬어주면 되잖아요." 하지만 그런 아침이면 손이 무겁다. 손바닥 안의 온기를 다 쏟아주면 오늘 하루를 버틸 힘이 줄어들 것 같아서, 무심한 척 시선을 돌려버리는 것이다.

그럴 때마다 불쑥불쑥 뭔지 모를 서러움이 차올라 식도를 타고 묵직한 아픔이 느껴지곤 한다. 아무도 내 마음을 채워주지 않는 세상에서 내가 퍼줄 마음까지 고갈된 기분. 그 허기는 눈에 보이지 않아서 더 오래, 더 깊게 스며든다. 그럴 때마다 나는 엄마의 말을 떠올린다.

“너무 많이 사랑을 주지 마라. 사랑을 다 주면 일찍 떠나보낸다더라.”

예전에는 그게 엄마의 핑계 같았다. 표현이 서툰 사람의 자기 합리화 같았다. 솔직히 너무 무서운 말로 들렸다.


모든 생명을 길러내는 것에는 정성이 있어야 한다. 사랑을 많이 주어도, 적게 주어도 그 생을 다하게 되는 건 작은 화초하나라도 돌봐 본 사람들은 알 거다. 화초 몇 개, 강아지, 그리고 자식을 낳아 기르고 보니 엄마의 그 말이 사랑을 계산하라는 말이 아니라, 사랑에 잠식당해 자기 자신이 사라져 버리지 말라는 경고였다는 걸 어렴풋이 깨닫는다. 남겨둔 사랑이 있어야 끝까지 곁을 지킬 수 있다는 오래된 지혜였다는 걸 깨닫는다.

밤이 되면 거실 불을 끄고 소파에 앉아 겨울이 와 여름이의 따뜻한 몸을 느낀다. 아들은 제 방 침대에 누워 뒤척이고, 딸은 어둠 속에서 핸드폰 불빛을 바라본다. 창밖 가로등 불빛이 유리창에 스치며 방 안을 옅게 훑는다. 그 빛은 오래 머물지 않고, 스쳐 지나가는 동안만 잠시 모든 것이 멈춘 것처럼 보인다. 나는 작은 숨구멍을 마음속에 남겨둔다. 그 숨구멍이 있어야 내 아이들도, 강아지들도, 그리고 나 자신도 이 삶에서 오래오래 함께 견딜 수 있을 것 같기 때문이다.

어쩌면 나는 이제야 엄마의 방식을 이해하는지도 모르겠다. 사랑을 다 주지 않고 조금씩 남겨두는 건 사랑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더 오래오래 사랑하기 위해서라는 걸. 그리고 그 오래가, 나를 지키고 내가 사랑하는 것들을 지켜낼 수 있는 방법이란 걸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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