잃지 않은 것을 잃은 것처럼

내 곁에 있는 것들에 대해 고마움을 느끼며 살자

by 여름둘겨울둘


주말이었다. 장을 보고 돌아와 헝클어진 머리로 커피를 마시며 앉아 있는데, 문득 지난주에 사려다 만 주식이 떠올랐다.
휴대폰을 들어 시세를 확인한 순간, 나는 조용히 절망했다. 주가는 미친 듯이 치솟아 있었고, 손가락은 정지한 채 움직이지 않았다.

“내가 그때 샀으면… 1억만 넣었어도 오천은 벌었을 텐데.”

잠깐, 아무도 나에게서 돈을 빼앗아 간 것이 아니었다. 사기당한 것도, 도둑맞은 것도 아니었다. 그런데도 속은 벌겋게 달아오르고, 마치 지갑을 잃어버린 것처럼 정신이 아득해졌다. 나는 그 자리에서 고개를 떨구고, 혼자 중얼거렸다.

“선영아, 넌 잃은 게 없어.”

그 말을 꺼내는 데 한 시간이 걸렸다. 그리고 겨우겨우 웃었다. 부끄러워서. 과장된 상실감으로 나 자신을 공격하는 버릇이 아직도 몸에 밴 나를 보며, 한심하기도 하고 귀엽기도 해서.

돈뿐이 아니었다.

아이 문제도 그랬다.

아이를 뱃속에 품고 있을 땐, 건강하기만을 바랐던 내가, 아이가 태어나자 성적을, 사회성을, 글씨체까지 요구했다.
마트에서 아이가 장난감 사달라고 누웠을 때, 스물네 살의 나는 세상이 나만 쳐다보는 듯 얼굴이 붉어졌고, 아이 팔을 들어 올리며 화를 냈다.
아무도 우리에게 뭐라 한 사람 없었다. 오히려 마트 직원들은 아이를 달래주었고, 나를 토닥였다.
아이는 아무 잘못도 없었는데, 나는 마치 삶의 큰 조각이 부서진 것처럼 분노했었다.

학교에 들어간 뒤엔, 담임 선생님 앞에서 “나는 괜찮은 엄마예요”라고 증명이라도 하듯, 아이의 준비물을 점검하고, 글씨에 눈살을 찌푸리고, 낙서에 한숨을 쉬었다.

그러던 어느 날 밤, 산불이 났다.

아파트 벽에 등을 기대고, 두 아이를 어떻게 데리고 나갈지 머릿속으로 그렸다.
결국 내가 가져가야 할 물건은 단 하나였다.
아이들.

내 아이들.
다치지 않게, 무사히 데리고 나가야 한다는 단 하나의 사실만이 남았다.

그 밤 이후, 나는 조금씩 바뀌었다.
그리고 아주 큰일이 하나 더 지나간 후, 마음속 깊이 이렇게 다짐했다.

“아이들은 건강하기만 하면 돼. 힘든 일이 닥치면 함께 고민하고, 같이 건너가면 되지.”

하지만 나라는 인간은 쉽게 바뀌지 않는다.
아직도 시험 전날에는 등 뒤에서 “좀만 더 해봐”라고 속삭이고, 친구들과의 갈등 앞에 “네가 좀 맞춰봐”라고 말한다.
내가 애초에 잃은 적 없는 것들을 마치 가지고 있다가 뺏긴 것처럼 슬퍼하고, 분노하고, 자책하고, 후회한다.
그리고 그 감정들을 아이에게 고스란히 흘려보낸다.

내가 아이에게 원하는 것들은 결국 내 마음속에서만 있었던 것들이다.
아이는 그걸 가진 적이 없었다.
그저 자기 속도로, 자기 방식대로 살아가려 했을 뿐인데, 나는 자꾸 그 아이의 길에 내 기대라는 끈을 묶고 있었다.

그건 아이에게도, 나 자신에게도 마찬가지였다.
돈도, 명예도, 사랑도.
잃은 것이 아니라, 애초에 없었던 것들을 잃은 것처럼 여기며 아파하고, 억울해하고, 분노했다.
마치 세상이 나에게 빚을 지고 있다고 믿는 것처럼.

생각해 보면, 나는 참 많이 받았다.
말 그대로 거저 얻은 것도 많다.
태어날 때부터 옷 한 벌은 입고 있었고,
아프지 않은 날도 있었고,
웃음도, 바람도, 사랑도,
때로는 용서까지도
누군가의 마음에서 흘러나와 내게 안착했다.

그러니,

내일 아침 아들이 또 학교 가기 싫다고 하며 늑장을 부려서,
내가 현관 앞에서 괜히 짜증 낼 수도 있다.
하지만 아마 곧 따라 나가서, “미안해. 좋은 하루 보내자.” 하며 배웅할 테지.
그리고 저녁엔 다시 웃으며 밥을 차릴 것이다.

매일 출렁이는 감정의 파도 속에서
나는 자꾸 다짐해 본다.

잃지 않은 것들을 생각하며 살자.
이미 내 곁에 있는 것들의 고마움을 잊지 말자.

이 조용하고, 따뜻한 하루를
조금 더 선명하게 살아내기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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