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의 이름이 무엇이든 나는 너를 사랑이라 부를게.

다시 태어나고 싶은 너

by 여름둘겨울둘


어제저녁, 아들이 다가와 조용히 말했다.
“저… 개명하고 싶어요.”

고개를 들고 미소를 띠며 아주 천천히, 마치 마음을 꺼내듯 한 말이었다.
그 말에 나는 잠시 말이 막혔지만,
그건 놀람 때문이 아니라,
그 말에 이르기까지 아들이 지나온 시간을 순간적으로 떠올렸기 때문이었다.

나는 아들 옆에 앉아, 숨을 한번 고르고 말했다.
“그래. 이왕 바꾸고 싶은 거 근사한 이름으로 바꾸자. 너의 이름이 무엇으로 바뀌든, 나는 널 사랑해. 그리고 그 이름이 너를 조금이라도 더 편하게 해 준다면, 엄마는 기꺼이 도와줄게. 이름이 바뀌어도 넌 엄마 아들이고 너의 가치는 변하는 거 아니니까.”

말을 하며 나도 조금 놀랐다.
이렇게 단정하게, 사랑을 말할 수 있다는 사실이.
그리고 동시에, 오래전 그날이 떠올랐다.

"죽고 싶어. 이렇게 살아서 뭐해요? 같이 죽자."
소리치고 울며 집안 분위기를 또 갑자기 망치는 아들을 보고 있자니 땅이 흔들리고 속이 뜨거워져서 내 안에 맴돌다 결국 입 밖으로 새어 나왔던 끔찍한 말.

나도 죽고 싶다.

그건 분명 혼잣말이었다.
아들이 듣지는 못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내가 뱉은 말을 내 귀로 들었고, 기억하고, 잊지 못하고 있다.

그 말이 나온 건, 너무 지쳐 있었기 때문일까.
아들의 고통은 끝도 없었고, 나는 무기력했다.
살아 있다는 것 자체를 비난처럼 여기며 울던 아이.
아빠를 닮은 체구, 남자라는 성별, 심지어 이름에 달린 성까지 다 버리고 싶다고 했던 그 아이.
그 모습을 보며 나는 점점 말이 없어졌고, 마음은 바닥을 쳤다.

그날 밤, 그 말은 내 안에 있는 두려움과 죄책감과 절망이 엉켜서 만들어낸 것들이었다.
나는 아들을 미워한 게 아니었다.
그 아들의 고통을 감당하지 못하는 나 자신에게, 엄마이면서도 갈피를 잡지 못하고 아무것도 해주지 못하는 무력한 내게 화가 났던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 해도, 그 말은 결코 해선 안 될 말이었다.
혼잣말이었다고 해도 그러면 안 되는 거였다.
그 말은 나를 깊게 베고, 오랫동안 죄책감으로 남았다.
정신과 의사 선생님은 각종 검사로 ㅡ아들은 기질적인 것 때문이 상당하다ㅡ라고 했지만, 이혼의 아픔은 나만 가진 것이 아니었다.
이혼을 하지 않았다면 내가 죽었을 것이고 하면 네가 죽을 것 같은 고통에 놓이게 되는 이 잔인한 인생.
나는 이기적이었을까?
널 살리고 내가 죽었어야 할까?
하지만 내가 없다면 네가 느낄 또 다른 고통을 누가 쓰다듬어 줄까?


어제, 아들이 “개명하고 싶다”라고 말했을 때,
나는 마음속으로 조용히 다짐했다.
그 어떤 날카로운 말로도, 아니면 그 어떤 침묵으로도, 다시는 아들을 혼자 남겨진 것처럼 느껴지게 하지 않겠다고.

이름을 바꾸고 싶다는 말은 단지 이름의 문제가 아닐 것이다.
그 안에는 자신을 새롭게 시작하고 싶은 마음,
과거의 아픔에서 조금이라도 멀어지고 싶은 열망,
그리고 무엇보다 엄마에게 물어보고 싶었던 것 —
“이름이 바뀌어도, 여전히 나를 사랑하겠냐”는, 그 조심스러운 확인이 담겨 있었을 것이다.

나는 지금, 늦지 않게 대답한다.
“그럼. 넌 내 아들이야. 네가 어떤 이름을 갖든, 어떤 모습으로 살아가든, 나는 너를 사랑해. 그 이름이 너를 조금 더 너답게 만들어줄 수 있다면, 함께 고민해 보자.”

아들의 새로운 이름은 아직 정해지지 않았다.
하지만 나는 안다.
그 이름은 슬픔과 상처를 지나, 다시 피어오르려는 아들의 용기에서 비롯된 이름이 될 것이다.

나는 그 이름을 기다린다.
그리고 그 이름을 부를 날을,
조금 더 따뜻한 목소리로 맞이하고 싶다.

이전 04화나의 손길이 너의 상처를 녹일 수만 있다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