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줄 수 있는 사랑을 모두 담아 어루만질게.
아들이 다시 피부를 뜯기 시작했다.
살짝만 올라온 피부, 모공 옆을 스치듯 지나가던 손끝이 어느새 집요하게 그곳에 멈추고, 뜯고, 후벼 판다.
예전엔 눈에 띄지 않던 버릇이었는데, 우울이 깊어진 뒤로 그 습관은 마치 악착같은 의식처럼 굳어졌다.
내가 아들의 손끝보다 먼저 그의 손을 잡아내지 않으면, 어느새 또 피가 맺히고 상처가 생긴다.
아들은 잠이 몰려올 때마다 손끝으로 온몸을 더듬는다.
마치 자기 몸 구석구석에 남겨진 불안을 찾아내려는 것처럼, 아니면 차라리 그걸 뜯어내서 없애버리고 싶은 듯이.
그 손길을 보고 있으면 가슴 한복판이 뜨겁게 조여 온다.
나는 말없이 아들 옆에 앉아 그 손등 위에 내 손을 얹는다.
부드럽고 조용하게, 쓰다듬고 또 쓰다듬는다.
이제는 그 아이도 안다.
엄마의 손길이 닿으면, 불안이 조금은 가라앉는다는 걸.
그러다 어느 순간 아들의 눈이 감긴다.
겨우 찾아온 휴식, 겨우 밀려온 잠.
나는 숨을 죽이고 머리맡에 앉아 아이의 이마 위로 머리카락을 걷어주며 아주 천천히, 아주 조용히 방의 불을 끈다.
아이가 깨지 않도록. 그 고요한 세계가 조금이라도 더 지속되도록.
내가 이런 이야기를 꺼낼 수 있는 건 아마, 지금은 내 마음이 조금은 괜찮아졌기 때문일 것이다.
그동안은 쓰러지지 않으려고 애쓰는 데에만 온 힘을 써야 했고,
쓰러져도 아무에게도 티 내지 않기 위해서 밤마다 조용히 울음을 삼켜야 했던 시간들이었다.
하지만 이제는, 쓰다듬는 손길이 울지 않고도 사랑을 전할 수 있다는 걸 알게 됐다.
각설하고,
아이가 지금보다 더 어렸을 때, 팔에 난 요철을 뜯으면
그의 아버지라는 사람은 그 팔뚝을 찰싹 때리며 소리쳤다.
"하지 마! 혼내야 돼. 그래야 사람 돼."
눈을 부릅뜨며 말하던 그 사람의 얼굴은 지금도 선명하다.
아이의 놀란 눈, 무서워 움츠린 어깨.
그 장면은 내 안에서 사라지지 않는 사진처럼 정지되어 있다.
그 사람은 스스로 자랑하듯 말했다.
젓가락질을 못한다고 밥을 굶겼고, 그래서 결국 똑바로 자랐다고.
하지만 내가 보기엔, 그는 여전히 라면 가닥 하나 집지 못하는 어설픈 젓가락질로
국물 위로 건져 올린 라면을 숟가락으로 떠먹고 있었다.
그런 사람이 자식에게 말하던 ‘똑바로’란 말이 어처구니없이 무의미하게 느껴졌다.
그가 제대로 배운 게 있다면,
그건 사랑이 아니라, 질책과 강요였다.
비난하고, 기죽이고, 입 다물게 만드는 것.
그건 아주 충실하게도 전수되었고, 그는 그것을 자식에게 반복했다.
그것만은 누구보다 정확하게 닮았다.
내 아버지는 달랐다.
내 아버지에겐 자신을 닮을 어른이 없었기에
당신은 자식에게 받은 것보다 더 주고 싶어 했고,
사랑이라는 걸 함부로 쓰지 않으셨다.
서툴렀지만 결코 포기하지 않으셨고, 결코 무섭지 않으셨다.
나는 그분의 딸로 자란 것을 늘 고맙게 생각한다.
그래서 더더욱, 내 아이에게는
그의 아버지 같은 사람이 되지 않겠다고 다짐할 수 있었다.
이혼을 결심했던 날도 마찬가지였다.
밥상 앞에서 아이를 또 나무라던 그의 목소리.
그건 습관이자 본능 같았다.
나는 속으로 조용히 입을 꾹 다물고,
"이제 그만하자"
"더는 이 아이 앞에서 그러지 말자"
하고 마음을 다잡았다.
결심은 이내 확고해졌다.
아들의 팔뚝에 남은 상처들을 보면
그 시간들이 되살아난다.
헉, 하고 폐에 바람이 새듯,
숨이 끊어지는 듯한 고통이 밀려온다.
그래도 나는 손을 뻗는다.
내 손이 닿는 곳마다, 그 아이의 아픔이 조금씩 녹기를 바라며.
천 번이고, 만 번이고.
그 아이가 뜯었던 상처보다 더 많은 쓰다듬으로,
내가 줄 수 있는 사랑을 모두 담아 오늘도 그 아이를 어루만진다.
아침 햇살이 번지는 창가.
조용히 밥을 차려내고, 아이가 일어나 와서 앉는다.
밤새 잠들지 못한 아이는 밥을 먹고, 다시 이불속으로 들어간다.
그 곁에 앉아 마지막으로 손을 쓰다듬으면, 아이는 눈을 감는다.
나는 말없이 방의 조명을 끈다.
문을 닫기 전, 마지막으로 속삭인다.
“푹 자.”
그 아이가 다시 뜯지 않기를.
다시 불안에 휘둘리지 않기를.
내 손길 하나가,
그 모든 고통의 밤을 조금이라도 덮어주기를 바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