웃어, 엄마.

교사병 엄마

by 여름둘겨울둘


“엄마가 다 안다면서요?
나보다 날 더 잘 안다면서?
그럼 지금 내 얼굴 보세요.
지금 나 어때 보여요?
괜찮아 보여요?
이렇게 숨이 막히는데도 엄마는 또 아무 말도 안 하잖아요.”

아들이 외쳤다.
울먹이지도 않고, 오히려 담담한 얼굴이었다.
그게 더 아팠다.
눈물은 차라리 위로였다.
이렇게 무표정한 분노는,
그동안 말하지 못한 시간들이 눌리고 눌려서 만들어낸 화석 같았다.

“엄마는 항상 뭔가 해결하려 들었어요.
내가 힘들다 하면, ‘이럴 땐 이렇게 하면 돼’
‘넌 이걸 이겨야 해’
‘그건 네가 너무 예민해서 그래’
언제나 그렇게 말했잖아요.
내 감정은 늘 해석당했고, 평가당했고, 고쳐져야 할 무엇이었어요.
그래서 나는 결국 아무 말도 하지 않게 됐어요.”

나는 입을 꾹 다물고, 그 말을 그대로 맞았다.
어디서부터 잘못된 걸까?
내가 ‘엄마’라는 이름으로 처음부터 너무 많은 것을 정답처럼 안고 있었던 걸까?

“웃어보세요. 엄마.
억지로라도 웃으면 기분 나아진다고 했잖아요.
뇌가 속는다고.
그게 엄마가 나한테 해준 말이잖아요.
그러니까, 지금 웃어봐요.
웃으라고요.”

나는 웃을 수 없었다.
입꼬리가 무거웠다.
그 무게는 죄책감 같았고, 부끄러움 같았고, 무엇보다도 늦은 깨달음 같았다.

“난 엄마가 무서워요.
뭘 말하면 ‘그건 아니지’ 하잖아요.
엄마는 항상 정답을 말하니까…
내 말은 필요 없어진다고요.
엄마는 이미 다 겪어봤고, 다 알아서
나는 그냥 듣기만 해야 되는 거잖아요.
그게, 너무 숨 막혀요.
엄마랑 있으면 내가 틀린 사람 같아요.”

나는 그 순간
내가 교사로 살아오면서
늘 ‘답’을 찾아야 했던 존재였다는 걸 떠올렸다.
학생의 질문에도, 학부모의 불만에도,
같은 교사들의 갈등에도
나는 언제나 판단하고 조율하고 결론을 내려야 했던 사람이었다.

그리고 그 습관이
그 잔인한 훈련이
가장 사랑하는 아이에게 그대로 향했다는 걸
그제야 알았다.

‘내 얘기 좀 들어줘요.'

그 말이 내 가슴을 짓눌렀다.
나는 언제부터 네 말을 안 들었을까?
아니, 들은 적이 있었나?

“엄마는 교사잖아요.
애들한테는 다정하잖아요.
근데 왜 나는 항상 엄마한테 혼나는 사람 같았는지 모르겠어요.”

그 말에 나는 완전히 무너졌다.
내가 그렇게 보였던 걸까?
가장 따뜻하고 싶은 사람에게
가장 차갑게 남았던 걸까.


그래. 나는 너보다 너를 더 잘 안다고 착각했다.
그건 착각이 아니라 오만이었다.
그걸 사랑이라고 포장했다.
사랑이란 이름으로, 나는 너를 해석하고 훈계하고 평가했다.
“이건 다 널 위한 거야.”라는 말로
내가 주고 싶었던 건 사랑이 아니라 통제였던 걸지도 모른다.

나는 한 번도 너에게
"그랬구나."
"힘들었겠다."
"어떻게 하고 싶어?"
물어보지 않았지.

너는 그걸 다 기억하고 있었고,
결국 오늘, 이렇게 내 앞에서
분노로, 눈물로, 고요한 절규로
다 쏟아낸 거다.

나는 가르치는 사람이었지만,
사실은 듣는 법을 배우지 못한 사람이었다.
그리고 지금,
너의 이 고백 앞에서
나는 ‘엄마’로서 처음으로
입을 다물고 있다.

웃지 못해 미안해.
대답하지 못해 고마워.
지금 이 순간,
네가 나에게 해답이 아닌 질문을 준 것처럼
나도 너의 마음을 해석하지 않고
그저 듣는 사람이 되려 한다.


※18년 동안 엄마 말을 듣기만 하던, 엄마가 제일 좋은 엄마라던 아들은.. 열아홉에 처음으로 자신의 이야기를 꺼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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