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해받은 삶, 끝내 사과받지 못한 사람

상연은 나쁜 여자일까?

by 여름둘겨울둘


상연은 침묵이 많은 사람이었다.
사랑을 숨기고, 우정을 지켰고, 죄책감을 품었다.
그녀는 언제나 물러났다.
선뜻 나서지도 않았고, 자신의 감정을 쉽게 말하지도 않았다.
대신 웃었다. 참았고, 조금씩 병들어갔다.

사람들은 그 침묵을 오해했다.
지켜보던 시청자들도, 극 중 인물들도 모두
그녀를 ‘이기적인 여자’로 단정 지었다.
친구의 연인을 탐낸 배신자.
단정은 언제나 쉽고 편하다.
누군가의 복잡한 마음을 이해할 필요도 없고,
말 한마디로 잘라내기만 하면 되니까.

하지만 상연은 입을 열었다.
사람이 자기 자신을 증명할 시간도 없이 작아질 때에서야
그녀는 처음으로 목소리를 냈다.

너희들도 나 같은 삶이었다면,
ㅡ그깟 자존심이 그렇게 중요하냐고,
너 자신을 버리지 말라ㅡ고
정말 감히 말할 수 있느냐고.
그 말을 하고 차를 타고 가는 상연의 터진 울음이

너무도 이해가 됐다.

상연은 누구보다 자신을 버리지 않기 위해
조용히 버티던 사람이었다.
어떤 말도 쉽게 할 수 없었고,
그래서 더 오래 아팠다.

하지만 사람들은 그런 속사정을 모른다.
모르면서도 쉽게 판단한다.
그녀가 한 선택들,
그 갈등과 망설임의 시간은 보지 않은 채
결과만 보고 손가락질한다.

“너 인생을 그렇게 살지 마.”
상연에게 돌아온 말은 단 한 줄짜리 비난이었다.
그 말이 얼마나 잔인했는지,
그녀가 그 말 앞에서 어떤 식으로 무너졌는지
아무도 알지 못한다.

은중이 상학의 연인이었다는 것이, 다른 사람의 삶을 함부로 판단할 수 있는 판사봉을 쥐어줄 일은 아니지 않은가.


난 한 번도 은중이를 이겨본 적이 없다던 상연의 말은, 태도와 눈빛이 되었고,

주눅 들었고

그걸 느낀 다른 이들은 상연을 함부로 대한 것임이 느껴졌다.

죽음 앞에서 그녀는 “미안하다”라고 말했지만,
그 말은 끝내 사랑받고 싶고, 이해받고 싶었다는. 마지막으로 토해낸 한숨 같았다.
상연의 아픈 마음을 위로받고, 받았어야 할 사과는 어느 누구에게도 끝내 받지 못한 채
이야기에서 퇴장했다.

나는 그 장면을 보고 오래 앉아 있었다.

떠오르는 얼굴이 있었다.
열여덟 해 전, 옆반 선생님.
늘 조용하고 따뜻하던 분이었다.
어느 날, 그 선생님의 목소리가 달라졌다.
메마르고, 차가웠다.
나는 당황했고, 그저 물었다.
“괜찮으세요?”

그분은 말했다.
"뭐가 궁금해서 전화했는데요?"
나는 당황해서 전화를 끊었는데,
며칠 뒤에서야 그 이유를 알게 되었다.

아이와 함께 세상을 등지셨다는 소식을 듣고 난 후에.

지금도 가끔 그 전화기의 공기가 기억난다.
그날, 내가 그 목소리 속 침묵을 알아봤더라면.
그날, 그 선생님의 집을 찾아갔더라면.
무엇이 달라졌을까.

가까운 사람을 잃은 사람들은 끝없이 죄책감에 시달린다.

상연은 오빠의 죽음에 죄책감으로 힘겨워하고

사랑받지 못해 엄마를 미워한 것을..

사랑받고 싶었지만 끝내 삼키기만 했던 울음을
끝내 이해받지 못한 채로 조용히 사라졌고,

그 침묵이 드라마를 보는 내내 너무도 아프게 공명했다.

어떤 인생을 살아보지 않고서

누군가의 삶의 태도를

눈빛을

말을..

함부로 재단하지 않는

우리가 되었으면 좋겠다.


상연을 마음 깊이 안는다.

토닥토닥

등을 두드린다.


아팠던 어린 상연을 위로한다.

외로움 속에서 고군분투했던 어른 상연에게 박수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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