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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페인 한량 스티브 May 19. 2021

무엇을 알고 싶은가요 II

앎에 대한 소고

진정한 앎이란 알아야 하는 ,   있는 것만 알면 되는 것이 아니다.   있었던 , 알아서는  되는 것까지 알아야 하는 것이다. 움베르토 에코의 저서, <장미의 이름>에서 발췌한 문장인데, 문장 자체만 보면 좀 무섭단 느낌부터 든다. "이보쇼, 한량 양반, 이 것도 실은 최소한이야, 이 정도도 모르면서 어디 가서 좀 안다고 나대면 안 되는 거요. 그건 아는 게 아니야, 깝죽거리는 거지." 라며 본격 라떼 시리즈로 훈육을 받는 기분이 든달까. 하지만, 다른 분도 아닌 움베르토 에코 작가님이시니까, 까라면 까야지. 미국, 영국, 프랑스, 이태리 등 세계 유명 대학에서 받은 박사학위만 약 40개인 것도 충분히 놀라고, 더는 상대할 분이 아닌가 보다 할 정도로 입이 다물어지지 않는데, 어학도로서 제일 부러운 무려 9개 국어(영, 불, 독, 서, 이, 포, 노+그리스어와 라틴어까지)를 구사하는 능력이란, 그야말로 넘사벽이다. 그러니 까불대고 싶은 심정은 잠시 좀 구석에 치워놓아야겠다.

 

다만, 필사한 문장의 출처가 소설 인터라 너무 진지하게 받아들이고 싶진 않아졌다. 그러니 초짜 작가의 딴지 정도쯤은 작고하신 작가님께서도 피식 거리 하나 정도로 넘어가리라. 에코의 말을 따르기란,  생각에, 애당초 실현 불가능이다. 그냥 신의 능력이 되어야 가능한 것이다. 예를 들어, 내가 전공했으나 전혀 사용하고 있지 못하는 프랑스어를 예로 들어보자.



프랑스어를 안다는 것은 무엇인가. 일상생활에서 충분히 의사소통이 되고, 뉴스를 듣는데 지장 없고, 신문기사를 읽는데 사실과 의견을 구분해서 파악할  알며, 학부모로서 선생님과의 상담에 헛다리 짚는  없이  이해하고,  빠른 프랑스의 코미디 프로그램 하나 정도 현지인들과 같은 타이밍에 웃어주는 거라면 충분히 알고도 남은 게 아닐까. 그런데 여기에   있었던 것과 알아서는  되는 것이라니. 프랑스어를   있었던 사실들? 프랑스어에서 알아서는  되는 금기사항?  인간에 대해서라면 모를까, 언어에서 알면  되는 법칙이 존재할  있을까?(아, 있다, 프랑스어는 가급적 아예 배우지 않는 게 정신건강상 이롭다. 아, 그냥 농담인 거 다 아시죠.) 나로서는 상상도, 적용도  되는 개념들이다. 어학은  추상적인 면도 많고,  폭이 넓으니 다른 적절한 예를 하나 들어봐야겠다.

 

오늘은 스페인에선 아무 날도 아니지만, 한국은 석가탄신일로 공휴일이다. 석가탄신일을 안다는 것은 어디까지를 내가 아는 것일까. 알아야 하는 , 석가탄신일의 의미와 주인공인 석가모니에 대한 역사적 사실 파악.   있는 , 그간 살아오면서 상식 선에서 아는 것들과 현실에서 석가의 가르침을 적용하고 실천하는 사례들. 여기까진 편하게 따라간다. 그런데,   있었던 , 글쎄? 무슨 말일까? 내가 싯다르타에 대해   있었던  존재한다는 말이 성립 가능한 일인가? 내가 한국이 아닌 스페인에 살면서 그에 대해    있었던  있을까? 아니면, 지금 스페인에 살면서 비로소   있는 것을, 과거 한국에 살고 있던 당시에   있었던 것으로, 영화    퓨처 마냥 타임머신을 타고 미래로 가서 미리    있었다는 말이 되는 것인가? 작가가 기호학자였기에 가능한 구문일런지도 모른다. 마지막으로, 알아서는  되는 이란  무엇일까. 성인의 반열에 까지 오른 석가에 대한 뒷조사라도 해서 까발려야 하는 건가? 아니, 일개 소시민이자 범부에 불과한 내가 그런 자료를 발굴한다는 것도 어불성설이지만, 세계를 아우르는 종교계의 시조를 반박하는 자료 자체가 과연 존재할까. 현대에 와서 타락한 종교인들의 부도덕한 행실을 고발하는 것이라면 모를까. 종교계라 잘못 건드리면 나만 몰매 맞을  있으니 일상에서 쉽게 보는 다른 적절한 예를 찾으면 뭐가 있을까.


그래, 글쓰기를 하고 있으니 브런치에 대해   적용해 봐야겠다. 브런치를 에코가 말하고자 하는 진정한 앎의 공식에 대입해 보자. 일단, 알아야 하는 , 생산성 글쓰기 툴인 브런치의 기본적인 사용법과 브런치 작가 선정 방법 정도로   있겠다.   있는 , 그냥 클릭만 해도 이것저것 글을 읽고 구경하면서 대강의 쓰임새며 활용도 정도는 파악이 가능하겠다.    알고 싶으면야 지금 세상에선 얼마든지 인터넷 검색이면 어지간한 정보를 찾을  있을 것이고. 어찌 되었건  사항은 통과다. 다음,   있었던 , ? 역시  막히기 시작한다. 내가 브런치에 대한 메타인지 (metacognition, 인식에 대한 인식,   알고  모르는지를 아는 ) 조차 제대로  되는데, 인지하는 대상 너머의 것을   있었다는 것이 과연 가능한 일인가. 에코의 기호학 세계에 대해 아는 것이 없기에 무지한 나는 속이 탈뿐이다. 그다음 관문, 알아서는  되는 이라니, 세상에  본지 오래되지도 않았고, 출범 목적이 실력 있는 작가 양성에 있고,  개인적인 견해로는 브런치 덕에 글쓰기와 글 읽기의 문화가 보다 고급화시켜 일상에 수준의 끌어올리려 하는데, 그런 브런치의 의도에 대해 알아서는  되는 것이 있다니. 일부러 기사거리를 쓰기 위해 없는 거라도 만들어서 어디엔가 폭로하라는 것인가. 여기까지 가니 왠지 없는 사실도 만들어 내게끔 보이는 음모론에 휘말리는 느낌마저 든다. 중단해야겠다.


20 파릇파릇하던 학생 때도 아닌 50 교수로 재직하면서,  담고 있던 볼로냐 대학 도서관  모든 책의 위치까지 기억하던 천재 작가, 교수, 철학자, 기호학자 움베르토 에코. 이런 천재에게   있었던 이라는 추상적인 개념은, 그의 탁월한 기호학 지식을 내세워, signifiant 기표와 signifié 기의 개념 정도만으로도 쉽게 정의를 내리고, 예시도 풍성하게 들었을지 모르겠다. 그뿐이랴. 알아서는  되는  개념은 철저히 고증에 고증을 거듭한 중세 수도원들을 배경으로 삼고,  안에 중세 역사, 신학, 철학, 과학  지식을 총망라해 촘촘히 엮었으면서도, 작가 자신은 무종교인으로 있었다는 사실을 생각해 본다면 (물론 그렇다고  종교인이 되어야 한다는 주장은 당연히 아니지만, 이태리에서 태어나 이태리인 부모 밑에 살면서 무종교인이 된다는 , 물고기가  밖에 나와 산다는 것과 별반 다르지 않다고 생각한다), 역설적이면서도 흥미롭다.


지식을 쌓는 것은 남의 것으로 남을 보는 일이다. 반면, 지혜는  것으로 남을 보는 일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앎은 중요하지만, 진정한 앎을 위해 (에코 작가의 관점에서 보면 나는  건이나 만족시키지 못하니, 출발부터 성립이  되는지도 모르겠으나) 무리수를 두는  자신을 고립시키는 일만을 초래할 뿐이다. 나는 그저  삶이 극단으로 가지 않기를 바란다. 좌든 우든 균형이 맞아야 외줄을 탄다. 가장 균형 맞추기 좋은 건 출발 전이다. 가만 잡고만 있으면 되니까. 하지만 그렇게 가만히 있는  현상 유지가 아니라, 멈춤이고 포기다. 그러니 앞으로 나가려면 왼쪽으로도 기울고, 오른쪽으로도 번갈아 가며 기울어야 한다. 뭐라도 알아야  현재를 자꾸 비춰볼  있을  아니겠는가. 상식의 적절 안에서 지식에 대한  뜨기를 그치지 않고, 동시에 지혜를 향한 마음의 창 또한 잘 닦고 열어놓아  균형을 맞춘다면,  이상 바랄 것이 없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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