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말하는 대로이루어져라
엄청나게 많은 사람들이 깊이 있는 생각을
할 수 있는 무한한 가능성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사람들은 대부분 이런 가능성을
현실화할 수 있는 적절한 환경을 갖추지 못하기 때문에
엄청난 능력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알지 못한 채 죽는다.
백만장자로 태어나서는 거지로 일생을 살다가 죽는 것이다.
-스티븐 라버지
The vast majority of people have enormous potentialities of thinking,
far beyond anything ordinarily suspected;
but so seldom do the right circumstances by chance surround them
to require their actualization that the vast majority die
without realizing more than a fraction of their powers.
Born millionaires, they live and die in poverty
for the lack of favourable circumstances
which would have complelled them to covert their credit into cash.
-<Lucid Dreaming> by Stephen LaBerge, re-quoted by Alfred Richard Orage
Q. 당신이 슈퍼맨이라면, 그 능력을 어디에 쓰시겠습니까?
A. 백만장자로 태어나 거지로 일생을 살다 죽는다는 파격적인 문구에 그만 나도 모르게 끙.. 하고 참았던 숨을 내뱉고 만다. 그런가, 나는 백만장자로 태어난 줄도 모르겠는데, 평범한 집에서 태어나 평범하게 살고 있는 일개 소시민에 불과한 거 같은데, 밑도 끝도 없이, 내가 백만장자라고? 갑자기? 순간 교회에서 당신은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 하는 찬양 가사가 일순간 귀에 살짝 걸린다. 정말 그런 걸까?
어느 정도의 가능성은 갖고 태어나고, 그걸 잘 활용하고 있지 못한 상황에 대해서도 인지는 하고 있다. 하지만, 그걸 무턱대고 백만장자로 태어났다라며 부추기는 것도 별로 와 닿지 않고, 그렇다고 거지로 일생을 살다 죽는다는 다소 극단적인 표현도 썩 마음에 들지는 않는다. 평범하게 그냥 살다가 가기란 정말 그리도 어려운 것일까?
많은 상념과 과거 잘못 지낸 나날들에 대한 후회가 파도처럼 밀려 들어왔다가 다시 나간다. 하지만 알고 있다. 언제고 내 상태가 다시 침잠에 빠질 때 즈음이면, 그런 감정들이 한없이 파고 들어와 멀쩡했던 나를 무너뜨릴 정도로 강타하고 갈 것이라는 것을. 오늘 누군가의 글에서, <인생은 어디로 흘러가는지 알 수 없는 저 물과도 같다>는 문장을 접했을 때, 순간 멈칫했다. 내 인생도 정말 그런 것 같아서. 그게 나 하나만의 일이면 그냥 그러려니 하고 덤덤하게 묻고 가겠지만, 그게 딸린 식솔에게까지 영향을 끼칠 것을 알고 있으니 그냥 넘어가기엔, 무책임하기 짝이 없고, 그렇다고 정면 돌파도 못할, 참으로 꾀죄죄한 모습의 나라는 것을.
아직 자타 공인까지의 레벨은 아니고, 남들이 붙여준 '한량', 그것도 이왕지사 '성실한 한량'이라는 제법 그럴싸한 이미지 속에, 나 스스로도 마음에 들어 필명으로도 애용 중인 이 한량을 두고, 꾀죄죄, 찌질한, 궁상떠는, 구차한 이런 단어들은 다 즉시로 손절하고 튕겨내고 싶은 마음이 한가득이다. 그럼에도 이런 단어에서 피할 수 없음은, 나 자신이 어떠한지를 솔직하게 인정하고 들어간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그렇다고 내 몰골마저 그런 형용사로 분칠 하고 싶지 않다.
그래서 그제부터 오랫동안 쉬어왔던 팔굽혀펴기를 다시 시작했다. 단 사흘뿐인데 과한 욕심 때문인지, 벌써부터 가슴과 배가 다 당기고 아파와서 이게 제대로 하는 건지, 잘못하는 건지 잘 모르겠다. 다만 아픔이 오니, 뭔가 하고 있긴 하는 건가 보다 라는 자기 위안이 있어, 기분이 좋긴 하다. 그렇지만 그 통증 때문에 막내 딸랑구를 안을 때마다 아악! 하고 소리 지르는 건 부작용인 듯싶다. 요지는, 어려운 상황이라고 해서 당장 내 얼굴을 홈리스나 죄인인 것 마냥 하고 다닐 필요는 없다는 것이다. 오히려 그 어느 때보다도 더 당당하고 긍정적인 기운이 넘치는 사람으로 살아가고 있다.
그런 나에게 슈퍼맨의 능력이 주어진다면 무얼 할 것인가? 어쩌면 스페인에 살고 있는 이상, 이미 답은 나온 것인지도 모르겠다. 스페인의 성실한 한량으로서 제2의 돈키호테의 삶을 살지 않을까 싶다. 그는 좌충우돌하는 가운데 엎어지고 깨지고 비웃음을 샀지만, 슈퍼맨의 능력이라면 정신뿐 아니라 몸도 짱짱할 테니 누구도 우습게 여기지 못할 것이다. 그런 능력을 헛된데 쓸 수야 있겠는가. 김칫국을 한통 들이키자면, 슈퍼맨이 된다면, 지금 내가 가지고 있는 문제쯤은 국제 정세와 세계 안보, 평화, 기후변화 등 거대담론 속에 묻혀 깜도 되지 않을 성싶다. 할 일이 너무도 많아 날 좀 쉬게 해 달라고 미디어에 기자간담회를 가질 수도 있겠고, 맨날 바깥일에만 신경 쓰느라 집에서는 아이들에게 볼멘소리를 들을 것 같다. 상상은 여기까지.
현실적인 고민의 수준으로 돌아와, 내게 주어졌으면 하는 능력을 생각해 본다면, 인내심 있는 자가 되면 좋겠다. 그것은 "너무 많은 이해심은 무관심일 수도 있지"라고 절규하듯 외치던 이승환 형님의 가사 속에 생략된 인내가 아니다. 이해 - 인내 - 무관심의 수순을 밟는 것이 아니라, 진정 나의 내면을 관찰하고, 상대에 대한 이해를 깊이 바라보는 통찰력 있는 자로서의 인내가 깊어지길 원한다. 어쩌면 그것이 일상의 인문학과 거리의 인문학을 꿈꾸는 내게 가장 필요한 것일지도 모른다. 나와 네가 각자의 길에서 제대로 서기 위해. 저마다의 인생길에서 실수해서 넘어지더라도 다시 일어서고, 몇 번이고 도전할 수 있고, 창피를 무릅쓰고, 꾸준히 길을 개척하고 밟고 다져가, 필경, 아름다운 여정으로 만들어 가고 싶다.
그런 일에 가장 필요한 것은 인내, 달리 말해 꾸준함일 것이다. 그저 묵묵히 참는 것만으로 모든 걸 덮으려 하지 않고, 입술 꾹 깨무는 것만으로 능사로 칠 것이 아니다. 그건 죽으러 가는 것도 아니고, 라떼는 말이야 라며, 과거 자기의 경험을 바탕으로 현재의 나와 너에게 무분별한 희생을 강요하는 것도 아니다. 종교적인 열심으로, 되지도 않는 일을, 믿음이라는 포장으로 악다구니 써가며, 달성하고 차지하기기 위해 목숨 걸듯 무모한 인내를 감당하라는 것은 더더욱이 아니다. 앞으로 다가올 상황을 어느 정도 짐작하고도, 또는 이미 알고도 있지만, 반드시 거쳐 가야 할 필요 불가경한 일이기에, 어찌 되었건 용기를 내어 한 발짝 더 나아가는 일에 희망을 북돋워 주는 일이다. 그 길을 가고 있는 지금, 외롭지 않아서 감사하다. 인내하는 한량이길, 아브라 카다브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