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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페인 한량 스티브 Jun 09. 2021

스페인의 사회생활-칼퇴, 정시퇴근, 그런게 어딨냐

그냥 퇴근이지

한 때 나름 대기업에서 잘 나가던 직장인이었던, 그러다 예상치 못한 일로 10년 만에 나왔지만, 다행히 천직을 찾아 이전과는 다른 모습으로 사회생활을 이어가고 있는 사람으로서, 한국이든 스페인이든, 세계 어느 나라든지 간에, 한국계 기업에서 오늘도 고군분투하는 직장인들에게 어떻게든 응원의 소리를 전해보고 싶다.


'외국서 살면서 별 오지랖이셔, 너나 잘 하세요' 하는 핀잔을 들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최근 네이버 사태 뿐 아니라 이전부터 직장 폭력을 꾸준히 보면서, 나 또한 회사원으로 몸 담았던 때가 떠올라 쓴다. 일단, 눈칫밥을 먹게 하는 일상의 용어, 무의식적으로 쓰고 있는 말부터 달라졌으면 하는 바람에서 적는다.




졸업 후 제일 먼저 일했던 곳은 입시학원 영어강사였다. 전공은 프랑스어였지만 영어를 좋아했고, 수능이 끝나자마자 입학 전부터 동네에서 고등학생 영어과외를 해온터라 가르치는 게 적성에 잘 맞았다. 입시학원이란 공간은 각각의의 강사에게 장소만을 제공할 뿐, 전적으로 개인의 역량에 달린 곳이었다. 출근해서 수업 시작하기 전까지 전체 회의가 있을 뿐 그 이후엔 모든 게 자율에 맡겨졌다. 하지만 워낙에 학생들을 좋아하고 같이 근무하는 선생님들이 좋아 내 일이 끝나고도 다른 선생님들의 필요를 도와주며 즐겁게 보내곤 했다.


그러다 슬로바키아에 와서, 그리고 스페인으로 옮겨 오면서 매일 규칙적으로 출근하는 회사원이 되었다. 대기업에서 바로 시작을 해서 그런지 모든 게 이전과 달랐다. 가장 먼저 피부로 와 닿은 것은 장시간의 근무였다. 집에서 걸어서도 갈 수 있는 거리였든, 또는 통근버스에 몸을 싣고 달리는 거리였든지 간에, 언제나 출근 시간은 일정했지만, 퇴근 시간은 점심 시간이 지나도, 오후 근무 시간에도, 심지어어 퇴근시간이 다가와도 알 수가 없는 존재였다.


이상도 하지. 내 퇴근 시간을 남에게 허락받아야 하다니. 현지인들은 퇴근할 때 인사하면 잡힌다는 걸 알고서 인사 없이 슬그머니 사라져 버리곤 했다. (아, 그렇게 쉬운 방법이?!) 웃어야 할지 혀를 차야 할지 모를 일이었다. 분명한 건, 현지인이 그러는 건 그냥 에잇! 한번으로 끝나고 말 일이지만, 한국인이 그런 식으로 쥐도새도 모르게 사라지는 건 (실은 그저 퇴근을 했을 뿐인데) 전화를 해서 들볶이고 대역죄인이 되어 다음 날 아침 출근할 때에도 편하지 못하게 된다는 거였다. 동료들의 험한 꼴을 본 필자는 그래서 인사만큼은 항상 성실하게 했다.


그러다 칼퇴라는 말이 유행을 탔다. 이전에 학원가에서는 쓸 일이 없는 단어라 들어보지도 못했다. 듣자마자 바로 이해가 되는 용어이긴 했지만, 들을수록 그처럼 기분 나쁜 말도 없었다. 자기 할 일 다 하고 가는 사람을 단박에 죄인으로 만들어 버리는 이상한 말. 정당한 퇴근조차 나몰라라 내팽 치고 자기 혼자 살겠다고(?) 동료를 버리고 마는 분위기로 몰아가는 묘한 주술적인 말이었다. 그건 고용주나 상사만 쓰는 말이 아니다. 동료들도 대놓고 즐겨 사용한다. 그러면 칼퇴 당사자는 다음날 출근 때까지 찝찝함을 떠안고 왕따가 되어 돌아간다.


그러다 어느새 본인도 비꼼과 비아냥, 조소가 뒤섞이는 분위기에 동조가 된다. 나중에 신입이 들어오면 너도 당해봐라 라는 식으로 고스란히 대물림을 한다. 이 모든 것은 전부 사회생활 하려면 당연한 것 아니냐 라는 것으로 정당화 한다. 사회생활이 정말 무엇일까. 학창 시절 사회 수업 시간에 과목으로는 공부했어도, 생활로서는 미처 들어보지 못했던 그 말.


뭔가 애매한 상황에 맞닥뜨리게 될 때 언제나 너는 사회생활 좀 한다, 못한다로 자기들 마음대로 낙인을 찍어댔다. 돌이켜 보면 사회생활 이라는 것은 꼰대들이 본인 편하고, 본인 하기에 좋자고 하는 온갖 추잡한 행패의 명분이었다. 사전에서는 대체 사회생활을 뭐라고 하고 있었을까?


사회생활 社會生活 [명사]
1. 사회 일반 사람이 사회의 일원으로서 집단적으로 모여서 질서를 유지하며 살아가는 공동생활.
2. 생명 많은 수의 생물이 모여서 일을 맡아 공동으로 영위하는 생활


집단과 공동이란 단어가 들어간다. 사회와 생활의 합성어에 지나지 않아 보인다. 하나의 인간이기 보다 일단 수많은 사회 구성원 중 하나로 살아가야 한다는 당위성 속에 밋밋하고 재미없게 느껴진다. 보통 퍼즐 조각, 또는 모자이크로 표현하기도 한다.


대기업에서 신입사원이던 당시, 동기들이 모인 회식 자리에서 차장님은 말씀하셨다. 본인을 포함해 우리는 수많은 퍼즐 조각에 불과하지만, 빠지면 전체 그림이 완성되지 못하는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고. 그 때는 얼마나 무한한 감동을 받았던지, 대기업의 조직생활이란 게 이런 거구나, 역시 다르다 하며 감탄을 연발했다. 시간이 지나고 보니, 나도 그 분도 왠지 측은함이 먼저 느껴진다. 틀린 말은 아니지만, 너무 순하게 길들여진, 일사불란한 한국기업의 조직문화에 딱 맞는 존재,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닌 느낌.   




우리말의 사전적 정의를 찾아봤다면, 다른 언어에서는 어떻게 정의하는지도 궁금해졌다.

먼저 미국식 영어 사전의 표준, Merriam-Webster 미리엄 웹스터에서는 이렇게 정의한다.


social life (noun)

: the part of a person's time spent doing enjoyable things with others

사회 생활 : 한 개인이 타인과 즐거운 일을 하고자 사용하는 시간의 일부


설마, 이거 농담이죠? 근엄해야 할 사회생활이 즐거운 일에 사용하는 것이라니요?

학창 시절 나의 영어 선생님이었던, 예문으로 풀어 친절히 설명해 주는 Collins Cobuild 콜린스 코빌드 사전을 찾아봤다.


Your social life involves spending time with your friends, for example at parties or in pubs or bars.

너의 사회생활이라는 건 네가 친구들과 파티나 펍 또는 바에서 친구들과 쓰는 시간을 포함하는 개념이다.


헛, 내가 지금 뭘 보고 있는거지? 열심히 일해야 하는 자본주의의 나라 미국 맞아? 이건 거의 우리나라 대학교 신입생 환영회에서 들어볼 법한 말인데?


흥미가 돋아 현재 거주 중인 스페인에서는 뭐라고 하는지 찾아봤다.


El concepto de vida social hace referencia a nuestro perfil público y sociable, aquel en el que entablamos relaciones sociales con otros.

사회생활이란 개념은 우리가 다른 사람들과 사회적 관계를 구축하는 공개적이고 사교적인 프로필을 말합니다.


미국처럼 대놓고 놀자는 건 아니지만, 그렇다고 우리나라처럼 '조직의 일원으로 공동의 생활을 영위하기 위해 해야만 하는 암묵적 합의의 약속'이라는 느낌과도 한참 떨어져 있다.


프랑스어도 궁금해서 찾아봤다. 역시나, 이들은 뭐 하나도 단순 명쾌 쉽게 설명하는 법이 없다. 뭐든 원자 단위로까지 쪼갠 다음, 그것을 다시 인간의 정신 상태와 결합시키는, 대단히 피곤한 언어였음을 확인했다. 프랑스어는 역시나 언어학습계의 판도라 상자급이다.


그렇다면 하나만 더, 말 많은 유럽에서 그래도 가장 근면 성실하며 조직생활을 잘 하(는 것으로 여기)는 독일에서는 사회생활을 뭐라고 하는지 살펴 보자.


Unser soziales Leben drückt sich in den Menschen aus, mit denen wir in Kontakt stehen, und zwar nicht nur im beruflichen, sondern auch im privaten Bereich. Für den eigenen Erfolg und die Zufriedenheit ist es wichtig, ein aktives soziales Leben zu führen.


구글 번역의 도움을 받아보니 다음과 같다.


우리의 사회 생활은 우리가 접촉하는 사람들, 직업적 영역뿐만 아니라 사적인 영역에서도 표현됩니다. 자신의 성공과 만족을 위해서 적극적인 사회 생활을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사회 생활을 설명하는데 흥미롭게도 촛점이 나의 성공과 심지어 "만족"에 맞추어져 있다. 같은 단어를 두고 이렇게나 온도차가 크다니. 그래서 지금까지 만나본 독일 동료, 친구들도 과묵하지 않고 '적극적으로' 말하는데 열심이었던 것일까. 흔히 독일인에 대한 인상을 차다고 하지만, 그건 겪어 보지 않은 사람들의 추상적인 관념일 뿐이다. 독일인들은 배운대로 하는 사람들이지 않던가. 사전적 정의를 그대로 따르기에 열심히 사회생활을 한다.




인간은 혼자 살아갈 수 없다. 싱글과 유부월드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태어난 이상 누구와도 관계를 맺으며 살아간다는 의미이다. 학생 시절을 보내고 졸업하면 회사에 들어간다. 작가는 회사에 안 들어가는데? 그렇다 해도 출간하려면 편집자와 만나야 한다. 비대면이라 해도 메일과 전화로 생각과 의견을 부지런히 주고 받아야 하니, 이 역시 사회생활이다. 회의를 하든, 난상토론을 벌이든 서로가 서로에게 맞춰가는 세심한 작업이 요구되는 일이 직업의 세계에선 매일 전쟁으로 터진다.


그런 전쟁터에서 칼퇴니 정시퇴근이니 하는 말은 사회생활의 용어가 아니다. 아, 칼퇴는 그렇다 치더라도 정시퇴근은 그래도 나은 표현 아니냐고? 아니다.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에도 없는 말이다. 정시와 퇴근을 합쳐, '회사에서 정한 시간에 하는 퇴근'이라는 말을 만든거다. 문제는 그 정한 시간이라는게 애당초 지켜지지 않을 일이라는 데에 있다. 스페인에선 칼퇴라는 자조적, 주술적 용어도, 정시퇴근이라는 법률용어 냄새나는 단어도 없다. 그냥 (하던) 일에서 (밖으로) 나온다는 퇴근 salir del trabajo, fuera del trabajo 만 있다.   


그러니 칼퇴 라며 비아냥 대는 것도, 정시퇴근 이라며 불필요한 조어를 만들어 내는 것도, 듣는 입장에서는 심적으로 불편만 준다. 협력하며 살아갈 관계를 끊어내고, 부당한 죄책감과 불공평을 조장해 평범한 인간의 사회생활을 해치는 말은 이제 그만 쓰자. 대신 아주 평범하고도 단순 명료하며, 하루를 뿌듯하고 따뜻하게 까지 만들어 주는 소박한 단어, 퇴근이라고 하면 안 될까? 코로나 때문에 abnormal이 normal로 된 일상이라지만, 이 땅의 직장인들에게 상식선에서 지켜지는 출근과 퇴근이 되기를 진심으로 바라고, 또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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