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틀 전 스페인 알칼라 데 에나레스의 보건소에서 2차 화이자 백신 접종을 했습니다. 1차 때도 느꼈지만, 접종 하나만큼은 '과연 여기가 스페인이 맞나?' 싶을 정도로 너무 빨라서 적응이 안 됐어요.
스페인의 코비드-19 백신은 대체 무엇인가?
한국에서는 유독 화이자에 애정을 보이는 분들이 많습니다. 반면 아스트라 제네카라면 대놓고 학을 떼시는 분도 계시고요. 스페인은 어떤 상황일까요?
배경 사진에 나온 2차 접종 공문에서 보듯 화이자, 모더나, 아스트라 제네카 다 맞습니다. 얀센이 없다고요?
아, 2차 접종이라서 그런 거였어요. 얀센은 한방에 딱! 끝내주니까요.
선택권 같은 건 일절 없습니다. 보건소에 주어진 물량에 따라 복불복입니다. 해당 보건소가 어떤 백신으로 접종하느냐는 가 봐야 알 수 있습니다. 차 타고 미리 확인하고 오지 않는 이상 모르는 일인 거죠.
도시마다 다르고, 도시 내에서도 각 군 별로, 군 내에서도 보건소 별로 전부 다 다릅니다. 일률적으로 통일된 게 없어요. 묻지도 따지지도 않은 채 예약만 한 상태에서 당일 해당 시간에 아는 겁니다.
나이순, 직군순, 선착순?
70대 어르신이 3월에 맞았습니다.
60대 독신은 6월에서야 처음 맞았습니다.
50대 부부는 6월부터 7월에 걸쳐 맞았습니다.
40대 의사와 가족은 4월에 모두 마쳤습니다.
30대 초등교사는 6월에서야 맞았습니다.
기본적으로 나이와 직군 유형에 따라 나누긴 하겠지만, 순조롭게 진행되지만은 않았습니다.
그런가 하면 예약 시간이 접종 장소별로 지켜지는 곳도 있고, 아닌 곳도 있습니다.
무슨 말인고 하니, 제가 접종한 장소는 시간을 상당히 정확히 지킵니다.
오전 10시 접종인데 9시 반에 도착했다고 해서 들여보내주지 않는 겁니다.
하지만 안내문에는 아무리 늦어도 예약시간 15분 전에는 오라고 되어 있습니다.
백신 주는 입장에서 관리 편하게끔 일단은 와서 줄부터 서라는 거죠.
헌데 어떤 곳은 먼저 접종을 마친 분이 일찍 와도 아무 상관없이 접종해 주니, 무조건 일찍 나와 맞으라 하더랍니다. 반신반의 속에 원래는 오후 3시 반 예약이지만, 접종 선배(?)의 말을 따라 일찌감치 오전 9시에 왔더랬죠. 정말 날짜만 확인하고 시간은 문제 삼지 않은 채 바로 들여보내서 접종을 받은 경우도 있습니다. 신기하단 생각에 주사 맞고 나와보니 밖에선 줄이 꼬리를 물고 있다는 것에 깜짝 놀랐다는 얘길 들었어요.
절대 어떤 경우에도 깔끔하고도 명료하게 정리한다는 건 스페인에서 불가능하다는 게 개성만점 스페인의 국룰인듯 합니다.
기다려 연락 갈 거야 (그런데 언제?)
분명 보건소에 문의했을 때는 무조건 기다리라고 했습니다. 걱정 말고 기다리라고 했습니다.
한 번 확인받고 집에 들어갔습니다. 다음 날 다시 물어보니 짜증을 냅니다.
하긴 저야 한 번 더 물어본 것뿐이지만 접수실에서는 똑같은 질문을 수천번도 더 들었을 테니까요.
ㅡ 내가. 기다리라고. 했잖아. 기다리면. 된다니까. 그냥. 제발. 기다리라고요.
저는 사람 말 정말 잘 믿는 편이에요. 그래서 두 번까지만 확인하고 그다음엔 더는 안 물어봤죠.
그런데 주위에서 슬슬 아니다, 한국인 같은 외국인은 예외다, 백신 웹사이트 들어가서 예약하면 된다, 들어가서 알아봐라 수군수군댑니다.
저도 처음엔 마음속에서 그 접수원처럼 짜증이 났어요.
ㅡ아니, 내가. 확인을. 했다니까. 그것도 두 번이나. 나 못 믿어?!
그러다 그냥 생각을 전환하기로 맘 먹었습니다.
하긴, 내가 손이 없냐 눈이 없냐, 그냥 해보면 되는데 뭐가 문제냐.
와... 저희 동네 보건소 직원분. 멱살 잡고 싶었어요. 기다리긴 뭘 기다려. 인터넷에서 바로 되는구만.
이럴 때만큼 기분 나쁠 때가 없죠. 현장에서 분명 확인했는데, 믿고 있는 저만 바보 되는 거잖아요.
잠시 바보였던 저는 뒤로하고, 저희 집에서 제일 가까운 곳으로 예약했습니다.
여기 스페인 맞습니까? 왤케 빠르죠?
1차 예약시간은 금요일 오전 9시 20분. 평일이고 1차 접종 때라 그런지 줄이 제법 길었습니다. 어림잡아 30명 정도로 보였어요. 그런데 줄은 컨베이어 벨트 위의 부품 마냥 - 아, 그보다는 스키 리프트 대기줄이라고 보는 게 좀 더 인간적이겠어요 - 계속 앞으로, 앞으로, 전진했습니다. 줄을 서는 기분이 아니라 한 발씩 계속 걷는 기분이었지요.
안에 들어가 보니, 세상에, 무슨 사람들이 이렇게 많아, 공장이야 병원이야, 백신 맞다 코로나 맞겠네 싶을 정도로 모여 있습니다.
접수원은 제 이름을 확인하자마자 2차 접수대로 다시 보내고, 그곳에서 제 휴대폰의 예약증 QR 코드를 찍어 1차 접종 확인증을 출력하더니, 바로 옆에 주사실로 가라 합니다.
왼팔, 오른팔? 어디에 맞을 거예요? 간호사의 묻는 말에 왼쪽이요 하니 그 즉시 주사 바늘을 꽂습니다. 느낌도 안 났어요. 반창고를 붙였지만 나중에 떼어봤을 때는 피 한 방울 묻은 게 없습니다. 그러고서 어지럼증이 있을 수 있으니 10분 앉아서 기다렸다 나가라고 합니다.
전 세계에서 공포의 대상처럼 여겨지던 코로나, 이를 방어하기 위한 최선의 선택, 백신. 그것도 그렇게나 많은 사람들이 갈망하던 화이자 (저는 한 번만 맞고 끝내는 얀센으로 하고 싶었어요). 장사진의 대기 중에는 뭔가 근엄한 배경음악이 등장하고, 병원 안에 들어가 이름 확인받을 땐 침이라도 꿀꺽 삼키고, 다시 한번 분명 본인 맞는지 확인 할 때는 긴장이 일면서, 마침내 왼쪽 반팔 소매를 걷어 올리며 길고도 뾰족한 주삿바늘이 살갗에 안착될 때 그간 쌓여 왔던 긴장의 해소, 이로 인한 가벼운 허탈, 동시에 마침내 맞았다는 환희감이 슬로우 모션으로 진행되어야 마땅할진대.
병원 앞 대기부터 접수원에게 1차 확인받고, 용지 받으며 2차 확인, 주사까지 전체 10분? 15분? 눈 깜짝할 틈도 없이 주사를 맞고 나오니 이거 제가 알던 스페인이 맞나 싶었습니다. 일체의 감정이 없었습니다. 정말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았다고요.
여기서 주는 백신은 화이자입니다
2차 접종은 심지어 더 빨라
2차 알림은 저마다 다르게 옵니다. 아내의 경우는 접종 하루 전날, 저는 1주일 전에 문자로 알림이 왔어요.
보건당국에서 정한 장소, 날짜, 시간이 있어서 그대로 할 건지, 연기할 건지, 아님 취소할 건지 (중간에 확진이라도 되는 경우를 위해 마련한 걸까요?), 세 가지 선택사항이 있습니다. 저와 아내 둘 다 문자 통보 그대로 하겠다고 확인을 했어요.
한창 휴가철에 2차 접종 통보를 받아서 그런지 대기자 수 자체가 확 줄었습니다. 아니면, 일찍 와 봐야 좋을 게 없다 라는 학습효과 때문일 수도 있고요. 아내와 저는 1차 접종 때 일주일 간격을 두고 맞았던 터라, 2차도 그대로 1주일 차이가 있었습니다.
2차는 대기줄이랄 것도 없었어요. 열댓 명 있는가 싶더니 역시나 수동 스키 리프트 모드. 앞으로 쭉쭉 갑니다. 접수원 분이 소리를 질러요. "아. 좀. 다음 분. 빨리빨리 앞으로 나와요."
미리 지갑에서 신분증을 꺼내서 접수원에게 보여주고, 확인받자 바로 2차 맞으라며 주사실로 보냅니다.
1차 때 비해 2차는 3초 통증이 있었어요. 역시나 바늘 꽂자마자 빼고, 반창고 붙이고 10분 쉬다 나가랍니다.
뭘 십 분씩이나 쉬어, 1차 때도 그냥 잠깐 앉았다 나갔는데. 이번엔 처음부터 일어나 나갔습니다.
시계를 보니, 5분도 안 걸렸습니다.
지나가는 여성분에게 접종 속도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물어봤습니다.
increíble (인끄레이~~블레)
영어의 incredible입니다. 믿을 수 없다는 거죠. 역시나 나만 느끼는 게 아니었어.
스페인을 비롯한 유럽은 백신 접종 이후에도 변이 바이러스로 다시 폭발적인 기세로 확진자가 늘고 있습니다. 일일 1, 2천 명은 바라지도 않아요. 접종 이전 때처럼 하루에 3, 4만 명씩 자릿수가 다르게 급증 중입니다. 두 번이나 백신을 맞았지만 전혀 마음이 편치 않은 이유가 여기에 있겠지요.
출처 : 코로나보드 7/25 일자
스페인 정부는 거리에선 마스크를 벗어도 된다고 공식 발표했습니다. 스페인의 도시는 스페인 사람은 물론 영국, 프랑스, 독일에서 스페인의 이글거리는 태양을 찾아 나온 사람들로 이미 가득하고요. 아무리 정부 발표가 있다 해도 스페인 사람들은 마스크를 쓰고 다니는 편인데, (극히 일부겠지만) 제가 본 영국인들은 예외가 없을 정도로 정말 마스크를 쓰지 않습니다. 이런 상황 속에 코로나 확진자가 줄어들길 바라는 마음은 뜨거운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달라는 소리일까요. 그나마 1, 2차 백신 맞은 당일 모두 왼팔만 잠시 통증이 있었을 뿐 고열, 구토, 오한 등 다른 일체의 부작용이 없었던 점에 감사합니다.
글 쓰는 새벽, 모처럼만에 비가 골고루 내리고 있습니다. 뜨거운 스페인의 여름을 식혀줄 빗줄기 하나하나에 코로나가 떠나길 바라는 마음, 다시 한 번 간절히 실어 봅니다. 더불어 우리나라와 세계 모든 나라에서 백신을 맞으신 분들과 맞으실 분들 모두 무탈하시고, 건강하시기를 진심으로 두손 모아 기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