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 25일, 아리랑 라디오 생방송 전화 인터뷰를 마치고, 26일 팀라이트 모임의 정기 강연 <인사이트 나이트>에서 사회를 보고, 28일부터 2주간 가족과 여행을 다녀왔습니다.
"아니, 코로나 때문에 일도 못하고 쉬는 바람에, 돈 없고 힘들다면서 어떻게 여행을 가? 돈 없다는 거 순 그짓말 아녀?"
할 수도 있겠지만, 여행 계획은 올해 초부터 했던 일이었어요. 아이들이 여름방학 두 달 반, 75일간의 시간을 집에서만 보내기란 쉽지 않은 일이라서요. 렌터카 업체에서 프로모션이 크게 나왔을 때 일찌감치 빌려두고, 숙소도 아파트로만 구해보았습니다.
무엇보다도 작년 말 즈음 짐작해 보길, 올해 9월 정도면 다시 일을 시작하지 않겠나 하는 생각이 들어서, 일 시작 전에 가족과 좋은 추억을 만들어야겠단 마음에 모아 모아서 마련한 건데, 델타 변이로 다시 불투명해지고 말았네요. (역시나 인생은 뜻대로 되지 않는다는...)
한 주는 남부 그라나다에서 보내고, 한 주는 북부의 부르고스, 레온, 히혼에서 보내고 왔어요. 그라나다는 이슬람의 통치가 최후까지 남아 있던 곳이고, 북부는 일찍이 이슬람의 영향을 아예 안 받았거나 (히혼, 오비에도), 무슬림의 지배 하에서 일찍 독립해 카톨릭의 영향이 강하게 남아 있는 곳이라 (레온, 부르고스), 같은 스페인임에도 그 개성이 매우 다르게 드러나는 곳이지요.
문화와 건축 양식 차이뿐 아니라 기온차도 컸습니다. 2주 전 그라나다는 38도까지 올라갔지만, 히혼은 18도가 낮 최고 기온이었어요. 시원하다 못해 서늘하고 춥다고 느껴질 정도였고, 사람들의 옷차림 역시 긴팔에 쟈켓을 항상 걸치고 있었어요. 같은 나라 맞나 할 정도로 신기했지요.
여하간 그렇게 보름 남짓 일상을 벗어나 자연의 작품과 인간의 손길 사이 위대함을 마주하고 돌아왔습니다. 여행을 떠나면 인생의 축소판을 보는 기분입니다. 희노애락애오욕이 다 들어 있어서요. 마음 같아선 이것 때문에, 저것 때문에, 쟤 때문에 등 남 탓을 하고 싶지만, 늘 그 모든 것의 원인은 제 자신에게 있고, 좀 더 들여다보면 제 마음의 욕심 때문이라는 결론에서 피할 수 없음을 봅니다.
아이들의 웃음소리에 즐거웠다가도, 말 안 들어서 스트레스받고, 이름난 장소를 방문해서 들떠 있다가도, 제대로 들여다보지 못했다는 생각에 분을 내고, 이것만 봐도 이번 여행은 충분히 건진 셈이다 싶다가도, 여기까지 와서 이걸 놓치다니 하면서 욕심을 내는 저 자신을 보면서, 아직도 모자라고 모자란 애어른이구나 라는 걸 되짚어 보게 됩니다.
떠나기 전까지 분주했던 마음을 이제는 차분히 가라앉혀 보고 뭐든 적어보려 합니다. 그럼에도 다시 시작하려니, 뭘 딱히 한 것도 없으면서, 마음에서 이 핑계, 저 핑계 대면서 뭉그적거리는 저를 보니 그저 '어휴..' 하는 한숨만 나옵니다.
그렇지만 언제까지나 그렇게 응석받이로 있을 순 없으니까요. 다시금 마음 잡고 보며 들으며 생각했던 것들을 글로 적어 보렵니다. 뜨거운 스페인의 여름, 올해는 글쓰기로 식혀보고, 생각의 푸른 잎사귀를 한껏 뻗쳐 올려보겠습니다.
(제목 배경 사진: 바야돌리드 시의 깜뽀 그란데 공원 Campo Grande de Valladolid)
=자연과 인류의 작품 하나씩 올립니다.
대서양을 마주하는 도시, 히혼 Gijón 아름다운 스테인드 글라스의 레온 대성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