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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페인 한량 스티브 Aug 31. 2023

선택은 곧 책임이다

글루틴, 주중 매일 글쓰기 도전을 시작하며

온 세상 짐을 나 혼자 다 진 것 같은 기분이 들 때가 있다.


이번 생이 옴팡지게 재수 없어서 그런 건가 싶은데,

한번 더 곰곰이 생각해 보면,

실은 그 사건을 맞닥뜨리기 전까지 장밋빛 미래를 꿈꾸고 있었다.

아, 이건 좀 MSG가 많이 들어갔다.


다시.

지금보다는 분명, 유튜브 영상과 인스타 릴스만 내리 보다가 

꺼지기 직전의 휴대폰 배터리 분량 정도는 나을 거라고 기대했다는 게 솔직할 것이다.


이것보다 저것이 나으니까, 이것을 선택했던 것이고,

그 선택은 내가 한 것이기에 책임은 일단 나에게 있다.


물론 그 일은 나 하나만으로 이뤄지는 것이 아니고, 

특히나 내 위치가 누가 봐도 반박의 여지없이 아래에 있는 경우라면, (을 너머 병정무기.. 하)

세상만사가 불공평하게 다가오고, 만성이 되면 무서운 유혹도 찾아온다.


그래, 책임이 나에게만 있다고 할 순 없지만, 일단은 나에게 있다고 보자. 

세상만사 복잡하게 보자면 한도 끝도 없으니, 

모든 이유 여하를 막론하고 일단 내가 한번 끌어안고 가 보자.

오래 자주 마주치면 문제지만, 한두 번 정도는 가볍게 넘어갈 만한, 괜찮은 거다.


중요한 건.

잘못된 선택이었다면, 인정하고, 다른 선택을 하면 된다.


헌데 그게 엄두가 안 나서 못한다. 왜 그럴까.


조용히 남들 보지 않는데서 나의 내면을 살펴보면 

책임을 지고 싶지 않아서, 회피하려고 선택을 주저하고만 있다는 걸 발견한다.


To be, or not to be, that is the question!
죽느냐, 사느냐 그것이 문제로다*


(*원문대로 보면 사느냐 죽느냐가 맞겠지만, 이어령 선생님은 우리 민족의 역동성이라 칭하셨으니 넘어가자.)

 

햄릿은 좋게 보면 신중에 신중을 거듭 기하며 돌다리도 두들겨 볼 사람이지만,

돈키호테의 입장에서는 종일 고민만 하고 결단을 못 내리는 우유부단하기 짝이 없는 인간이다.


덧붙이자면... 

물론, 햄릿 전체를 보면 그는 철저한 복수의 화신이다. 

사색만 하는 게 아니라 돈키호테 이상으로 품은 생각을 남김없이 실현한 자다. 

반면, 돈키호테의 고뇌를 살펴보면 그는 더없는 몽상가로 볼 수도 있다. 

이는 모두 러시아 작가 이반 투르게네프의 언급, '햄릿형 인간과 돈키호테형 인간'에서 비롯된 일이다.

 



한동안, 어쩌면 지금까지 나는 착실히 햄릿형 인간으로 살아왔다.

고민만 하다 깔고 뭉개고 주저앉아버리고 마는 무기력한 사람. 


완벽을 기하기 위해서라며 머릿속에서만 수많은 세계를 짓고 부술 뿐 

행동으로 과감히 옮기지 않았던 화석이 된 자아.


이런 내가 답답하고, 이런 내가 싫다며

벗어나 살고 싶다 하면서도 다시 회귀하고 마는, 

아니, 무슨 인간 연어도 아니고, 대체 왜 그래.


샌님 햄릿으로 살았으니 기사 돈키호테가 되어 살아야 하나.

아이고야, 글 하나 쓰는 게 뭐라고 이래 거창한 인물들을 섭외해 오나.


이룰 수 없는 완벽을 이룰 수 있다고 잘못 믿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 완벽을 깰 선언문 하나를 적어보자.


완벽한 건 관 뚜껑 못 박힐 때다


이걸 핑계 삼아 관짝에 못 박히기 전, 내지르는 시도를 (또) 한다.


한국에서의 휴가를 마치고 스페인으로 돌아가면

연말까지 쉼 없이 돌아갈 본업의 스케줄이 보이고,

부모이자 가장으로서 감당할 일이 쇼핑카트에 쟁여놓은 물품 마냥 가득하지만,

글쓰기를 더는 미루고 싶지 않으니,

의지를 넘어 환경 조성이라도 하고 봐야겠다.


선택은 책임이다. 

책임을 진다는 건 나의 선택에 후회가 없고, 후회할 일을 만들지 않겠다는 의지의 표명이다.

그 선택은 바로 내가 했기 때문이다.


한동안 손 놓은 글을 다시 쓰려니 분명 뻑뻑대는 소리로 요란하겠지만

그것마저 한걸음 내 닿는 과정이자 성장이라 여기고 즐겨보련다.


#글루틴 #팀라이트 #글쓰기


photo by pexel of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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