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시대 생존
내가 체감한 스페인의 코로나는 작년 3월부터다. 그때가 마지막으로 한국에서 온 기관 단체를 맡았기 때문이다. 그때 이후로 벌써 1년 반 가까이 시간이 지났다. 첫 몇 달은 약간 두려움에 떨기도 했다. 슈퍼마켓에서 물자가 동나고, 물건을 사러 간 아내는 장사진의 줄 속에 정말 필요한 생필품 몇 가지만을 사 왔다.
역사 교과서에서나 보던 공산권 국가의 사진, 전쟁 직후 폐허 속에 배급받으러 줄 선 이들의 모습이 눈앞에서 일어나다니. 지나다니는 사람은 없고, 사방이 고요함 속에 연일 2, 3, 4만 명씩 폭증하는 확진자의 숫자 속에 정말 세상 종말이라도 보는 건가 하는 미친 상상을 했다.
그러다 수개월 후 통행금지가 풀렸다. 비로소 숨통이 트였다. 저녁 8시면 의료진들을 위해 박수를 치고, 9시가 되면 한심한 정부 정책에 항의하는 냄비 두드리기로 매일 저녁은 어수선했다. 상황은 별로 달라진 게 없고, 여전히 앞날은 흐릿했다. 스페인 정부는 정말 뭘 하는 건지, 각 의료기관은 또 뭘 하고 있는 건지 알 길이 없었다.
아이들은 봄학기 내내 집에서 보냈다. 그러다 큰 아들의 초등학교 졸업식도 태블릿 하나로 덜렁 치렀다. 초등학생인 둘째는 온라인 수업 시간 내내 말을 거의 안 해서 언어가 많이 뒤처졌다. 이제 막 유치원에 들어간 막내딸에겐 아무것도 해 줄 수 없었다. 집안 남자들이 컴퓨터, 노트북, 태블릿 모두 쓰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2020년의 봄과 여름은 사실상 별 한 거 없이 지나가 버렸다. 내게도 6개월은 그냥 버려진 시간이나 다름없었다. 쉬어도 쉬는 기분이 아니었다. 찜찜함과 불안함 속에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는 상태였다. 아이들 뿐만 아니라 나도 멍해졌다. 멍한 식구들 틈에서 홀로 정신을 붙들고 있던 건 아내였다.
아침에 눈 뜨면 밥, 돌아서면 간식, 다시 밥... 잠들기 전까지 뫼비우스의 띠이자 블랙홀과 다를 바 없는 우리에게 끊임없이 먹을 것을 공급했다. 아내는 징징대는 네 아이들에게 어려운 상황 속에 먹는 것만이라도 잘 먹어야 한다는 일념으로 열심을 냈다. 아내의 차림은 식사뿐 아니라 빵, 떡, 쿠키, 치킨, 피자까지 모든 걸 다 본인의 손에서 야무지게 만들어냈다. 제비 새끼 마냥 짹짹대며 보채는 우리는 열심히 먹기만 했다.
그나마 모처럼만에 살이 잠시 불었다. 운동과는 담쌓은 나는 잘 안 찌는 체질이다. 남들은 부러워하겠지만, 말랐다란 소리를 수십 년간 들어온 나는 안 찌는 게 스트레스다. 원인도 알고 해결책도 알지만, 게으른 나는 운동을 안 한다. 그런 나조차 집에서 온종일 먹다 보니 살이 붙었다. 그럼에도 불안은 겨우 찐 살을 다시 잠식해 체중계를 제자리로 놓았다.
아이들의 공부와 내 집 마련을 생각하고 이사했건만, 마주친 현실은 '응, 둘 다 아니야' 라며 저 멀리 갔다. 그 와중에 그래도 기다림의 보상이 어떻게든 있지 않을까 해서 버텼다.
견딤의 유일한 보상은 사람이다. 여행의 즐거움이 궁극엔 사람과의 만남이듯, 코로나로 얻은 것 또한 사람이었다.
스페인에 계신 분들과는 어떻게든 만났다. 정말 다행이다. 전화로 통화하기에도 같은 시간이라 편하고, 내 동네에서 직접 만나는 건 답답했던 속풀기에 더없이 좋았다.
한국에 계신 분들과는 대면이 안 될 뿐, 내 마음을 따뜻함으로 꽈악 채워주는 분들이 참 많다.
또한 가까이엔 아웅다웅하더라도 사랑할 땐 또 찐하게 안고 안기는 가족이 있다.
그럼에도 이 코로나는 당최 물러갈 줄을 모른다. 정말 얼마나 더 참고 기다려야 하는 것일까.
그러다 보니 마음속에 지난날에 대한 후회가 파도처럼 밀려오곤 한다.
그때 어떻게든 직장에서 더 버텼더라면. 5년 전으로 거슬러 간다.
조금 더 나아가, 슬로바키아를 떠나지 않았더라면. 10년도 더 전으로 넘어간다.
생존의 온도차가 자영업자인 내게는 뜨거운 여름 속에 시베리아 고기압 한파를 맞이한 기분이다.
입김만 내뿜어도 바로 수염에 고드름이 달리고 마는 추위 속에 정신이 아뜩해진다.
그럼에도 어떻게든 버틸 것이다. 남자니까? 가장이라서? 나름 숨겨진 능력이 있어서?
전혀, 혼자가 아니어서다
혼자면 추위를 맛보기도 전에 불볕에 타 죽었을 것이다.
나는 굳센 사람이 아니다. 나의 나약함을 부정하지 않는다.
그렇게 약하고 부실함에도 여태껏 살아남은 것은 딱 하나다 :
혼자가 아니라서.
나를 살려낸 분들의 얘기를 써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