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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페인 한량 스티브 Jul 28. 2021

각질 어루만지기

여름이 되니 굳은살이 생긴다. 겨울에는 잘 때도 수면양말을 신고 잘 정도지만, 여름은 집 안이건 밖이건 양말을 신는 일이 없다. 돌아다닐 때는 모르지만 잠자리에 들 때면 내 발이 맞나 싶을 정도다. 아내도 깜짝 놀란다. 


도미를 사면 생선 가게 아주머니는 몽둥이 같이 생긴 것으로 박박 문댄다. 도깨비 방망이가 지나갈 때마다 도미의 비늘은 사방팔방으로 튄다. 도미의 그것이 그대로 내 발바닥에 붙었는가 보다. 샤워를 하루에 세 번도 하는 뜨거운 스페인의 여름이지만, 찬물 그마저도 5분 이내인 터라 각질이 불을 틈은 없다.


한동안은 손톱깎기로 손질했다. 손톱깎기의 날은 먹잇감을 발견한 사냥개 마냥 각질층을 한 번에 물 수 있는 최대의 크기로 벌려 앙하고 물어 재낀다. 각질층은 날카로운 날 앞에 가을 낙엽이 되어 떨어져 나간다. 


손톱깎기를 찾으러 가기가 귀찮아지자 손톱으로 긁어본다. 겹겹이 에워싼 굳은살을 짧은 손톱으로 뜯어 내기란 여간 어려운 작업이 아니다. 어떤 연장도 없이 오직 손으로만 살살 건드려가며 조금씩 뜯어내는 건 나름의 기술을 필요로 한다. 잘못하면 피를 볼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렇게 각질을 제거하면, 하는 동안은 모르지만, 작업 후엔 후유증이 있다. 왼손 오른손 할 것 없이 엄지, 검지와 중지 손톱 끝이 떨어져 나가는 기분이다. 오른손으로 펜을 잡는 것도, 왼손으로 자판을 치는 것도 제법 아프다. 각질은 그렇게 내 손에 자기를 지운 흔적을 남긴다.


어쩌면 "스티브, 네 몸 막 쓰면 안 돼"라고 외치는 발의 아우성일지도 모르겠다. 양말이 없으니 발은 굳은살이라도 만들어 내서 제 몸을 보호하고 싶은 걸까. 그렇다고 이 뜨거운 날씨에 양말을 신는 건 굳은살 제거보다 더 싫은 일인데. 




손톱깎기를 쓰자니 자세가 영 불편하고, 맨손으로 되는대로 하자니 손가락이 살려달라고 난리다. 이럴 땐 아내한테 물어보는 게 제일이다. 


ㅡ여보오, 있잖... (당신도 알겠지만 요즘 내 발이 어쩌고저쩌고 하려는데)

ㅡ응, 크림 발라요. (헉!!)


아내는 내 모든 걸 안다. 이름만 불러도 무슨 일 때문에 본인을 찾는 건지 이미 알고 있다. 

아프리카 가나에서 선물로 받은 시어버터 크림이 있었다. 개봉한 지 1년도 넘었지만 그냥 쓰고 있는 딱히 상표도 없는 크림. 그래, 그게 있었구나. 


샤워하고 발랐다. 내가 내 발을 어루만지는데 나도 모르게 살짝 한숨이 나왔다. 

예전 같았으면 한창 세비야 플라멩코 공연을 보며 같이 구르던 내 발,

한창 그라나다 알람브라의 나스르 궁전 내부 하나하나를 누비고 다녔을 내 발, 

마드리드 프라도 미술관에서 손님들 칭찬에 내 기분도 같이 으쓱하고 높여주던 고마운 내 발

굳은살이 대체 뭐야, 집에 엉덩이 붙일 틈도 없이 스페인 여기저기 돌아다니느라 바쁜데.


삼국지의 유비가 자신의 넓적다리를 보며 슬퍼했다는 비육지탄 髀肉之嘆은 

이천 년 가까이 지난 스페인 어느 한량의 굳은살 박인 발을 보며 내뱉는 한탄이 되었다.


굳이 크림 한번 바르는 일에 이렇게 까지 유난을 떨 일인가 싶어 피식 웃었다. 

열심히 마사지해 주듯 몇 번을 연거푸 바르며 어루만져주었다. 그리고 양말로 잘 덮어주었다. 두터운 겨울 양말이라 차마 나갈 수는 없었다. 그렇게 며칠이 지났다.




헛, 발바닥이 손바닥이 되었네. 각질 다 어디 갔니?

아내에게 무슨 간증하듯 발바닥 각질 실종 사건을 얘기했다.


손톱깎기와 손톱으로 물고 뜯을 때는 기분전환일 뿐 여전히 붕어와 잉어의 비늘을 달고 살아야 했다. 

유통기한은 이미 넘었을 크림이라도 나름 정성껏 바르며 어루만지니 새살 솔솔 돋듯 바뀌었다.


충분히 익숙한 일상이지만 여전히 배울 것으로 가득한 매일이다. 

며칠 바르고 좋아졌다고 중단하면 분명 다시 생길 테니, 귀찮더라도 지금처럼 잘 발라줘야겠다. 


방학이라 둘째 녀석에게 전과목 특별과외를 해 주고 있다. 과외교사는 선택의 여지없이 아빠인 나다. 당연히(?) 하루도 조용히 넘어가는 날이 없다. 윽박지르는 거는 정말이지 그만하고, 쓰담쓰담하며 부드럽게 잘 대해줘야겠다. 발바닥은 손바닥이 되어 나에게 써프라이즈를 안겼는데, 이 녀석은 뭘로 나를 놀라게 하려나.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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