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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페인 한량 스티브 Nov 15. 2021

잃은 것으로 끝나지 않아 다행이다

한 해를 돌아보며

다 끝난 것만 같았고, 잃어버린 줄로만 알았던 시간이었다.


앞만 보고 달려왔으니 잠시 쉬어가라 했지만, 그 시간이 한 달 보름을 넘기고 나니 '쉼'은 '짐'이 되었다. 직장인으로 다니던 당시 스페인 동료들이 2-3주씩, 그것도 일방 통보로 전달하고, 자신들은 몇 달 전에 예약한 호텔과 리조트에서 당당하게 즐기는 휴가 문화가 부럽다 했다. 하지만 이건 아니지. 내가 바라본 건 유급 휴가였지, 무급 휴가는 아니었잖아.


비자발적 강제 휴식이라는 거창한 명칭까지 부여했지만, 그래 봤자 실직이다. 매일 지나가던 길에 문 닫는 가게가 하나 둘 늘어갈 때마다 내 안의 오지랖도 같이 커져갔다. 오십보 백보였고, 누가 누구를 불쌍하게 여길 처지가 아닌데도, 나보다 더 힘들어하는 분들의 얘기를 들을 때마다 발만 동동 구를 뿐이었다.


코로나 공포는 실은 돈의 위력이었다. 매장이 폐업을 하고, 가정 경제가 망가지니, 냉정한 현실에서 내몰린 자들은 서로가 <오징어 게임>의 번호 붙은 츄리닝을 입고 죽기 살기로 뛰어야만 했다. 보는 내내 몰입이 되고 감정 이입이 자연스레 되었던 건, 단순히 배우들의 연기력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막연한 기다림 속에 일단은 삽을 들어 다시 물이 흘러들어올 고랑을 만들어 가는 사람들이 하나 둘 늘어간다. 목이 타는 중에 수맥을 건드려 바짝 마른입이라도 축이는 분이 있는가 하면, 삽 하나 선뜻 사기가 어려워 호미로 쭈그리고 앉아 돌을 골라내는 분도 있다. 


어휴 그런 장비라도 있는 게 어디야, 그냥 맨손에 돌맹이고 자갈이고 일일이 다 건져내는 바람에 섬섬옥수는 수세미가 되어 버리고, 관절염으로 약값만 더 든 경우도 숱하다. 세상과 신을 향한 원망이 없었다면 거짓말일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은 돈으로만 사는 게 아니다. 진심 어린 마음이 오고 가야 힘을 얻어 다시 시작할 다짐도 하고, 실천으로도 이어진다. 좋은 일에는 함께 축하인사를 주고받는 게 훈훈한 일이듯, 힘들 때는 담담하고도 솔직하게 힘들다고 하는 것 또한 건전한 관계의 축복이다. 


작년에는 세계 곳곳의 한국인 가이드 분들을 만나 동병상련의 위로로 힘을 얻었는데,

올해는 <팀라이트> 작가님들과 다양한 채널을 통해 동기부여를 받았다.

그뿐이랴. 필사 모임 <따스한 문장>에서 넘치는 사랑 덕에 다시 일어섰다.


그룹에서 눈을 돌려 개개인을 보면 미안할 정도로 따뜻한 사랑을 받았다. 한 분 한 분의 구독자 분들, 문우들에게 받는 격려의 힘이란 옹졸한 내가 감당하기에 벅찰 정도로 크다. 게다가 자발적 구독료라며 본인도 어려운 처지인데 기어이 후원을 하신 분도 계셨다. 


이 모든 분들과의 연결고리는 "글"이다. 글의 힘이란 글 자체가 아니라 글을 쓰는 사람에게서 출발한다.

사람이 진실되지 않아도 글은 어느 정도 그럴듯하게 쓸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내가 마주하고 싶은 건, 다시, 사람이다. 


그 사람과의 만남이 나는 한 해가 풍년이냐 평작이냐 흉년이냐를 결정한다.


세상의 가치인 돈의 관점으로는 여전히 잃어버린 한 해였을 것이다. 하지만 각자의 인생마다 오는 타이밍이 있다. 쩍쩍 갈라져 먼지만 풀풀 날리던 황야가 진흙이 되고 뻘이 될 정도로 주체 못 할 단비가 내릴 때가 있음을 안다.


인생과 인생이 마주하는 만남, 가장 소중히 여기는 나만의 가치로 다시 본다면, 이미 환상의 쌍박을 몇 곱절로 터뜨린 대박 풍년이다. 아무렴, 그렇지, 그렇고 말고! 




15년차 외국 생활에 큰 힘이 된 필사모임입니다. 

이번 기수는 무료라서 더욱 좋아요 (미안할 정도로). 함께 해요.




글쓰기로 우주정복을 꿈꾸는 브런치 작가들이 모여

팀라이트가 되었습니다.

팀라이트 매거진에는 매월 한 가지 주제를 선정하여

각양각색 작가님들의

다른 시선과 색깔을 담아가고 있습니다.


11월의 주제는 <나의 한 해를 돌아보며 쓰는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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