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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페인 한량 스티브 Dec 14. 2021

외국어 공부는 무조건 칭찬입니다

무엇이 중한가

<먼나라 이웃나라> 시리즈 덕에 외국, 특히 유럽, 그중에서도 프랑스에 대한 바람이 마구 일기 시작했던 국민학생 시절. 88 올림픽 92 엑스포를 치르고 우리는 당장에라도 선진국에 들어갈 것 같은 기세였고, 그런 바람은 대통령부터 시작해 글로벌에 대한 열망으로 나타났다. 그리고 외국어 고등학교 붐도 한창 일었다.


학교에서 얌전한 샌님 내지는 범생으로만 지냈던 중학시절, 나 역시 그 외고 열풍에 마음이 출렁거렸고, 그러다 정말 덜컥 합격해서 들어갔다. 환상과 현실은 엄연히 다르다는 걸 그때에 절실히 깨달았나 보다.


내가 꿈꾸던 외고는 각 전공언어별로 교실이 그 나라 분위기를 자아내는 것이었다. 영어과면 영국과 북미의 근엄한 분위기가 나게끔 장식을 한다던지 (내가 알던 세계는 그게 다였으니까), 프랑스어과인 경우 한껏 낭만에 젖어들게끔 <르 몽드>를 게시판에 붙이거나, 프랑스 원어 서적을 배치해 둔다든지 하는 식으로 말이다.


현실을 몰라도 너무나 몰랐다. 기실, 외고의 목적 역시 SKY 합격이었다. 주위엔 전부 엄청난 아이들 뿐이었고 그때 받은 충격은 상당했다. 우물 안 개구리도 아닌 우물 벽돌 틈에 끼인 이끼 같은 느낌. 졸업한 지 얼마 지나지 않자 이젠 우리나라도 좁다 싶은지 아예 미국과 중국의 대학교를 목표로 삼는 반이 등장할 정도였으니, 얼마나 대단한가. 그나마 우물물이라도 축여 유지하던 이끼가 이글거리는 햇볕에 바짝 말라 파스스 흩어지는 기분이었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영어 원어민 교사를 만났던 일은 25년도 더 지난 지금까지 생생하다. 지울 수 없는 낙인을 받았기 때문이다. 첫 회화 수업, 내 이름은 칠판에 적힌 수많은 영어 이름 중 Peter로 정했다. 수업 후 캐나다 서스캐처원 출신의 선생님이 본받을 학생과 따라 하면 안 되는 학생 둘을 뽑아 짧게 언급하셨다.


여러분, 피터처럼 하면 안 돼요. 자꾸 한국말 쓰면 안 돼요. 피터 이름 뜻이 뭔지 알아요? 돌이에요, 돌. 


헐. 대박. 미쳤음. 아이의 마음에 못질 정도가 아니라 아예 블렌더에 넣고 갈았다. 학생인들 다른 수업도 아닌 영어시간에 영어를 쓰고 싶지 않았을까? 다른 곳도 아니고 외고까지 오려고 얼마나 공부를 했는데. 얼마나 입이 간질거리는데, 한 단어라도 흉내 내고 싶은 마음이 얼마나 간절했는데. 설령 한국어를 썼다 한들 대체 얼마나 사용했다고. 당장에 답답하고 모르니까 옆 짝꿍에게 이건 뭐라고 하냐, 저건 뭐라고 하냐 한 정도에 불과한데. 그런 현장을 발견했으면 교사로서 지도하고 가르쳐 주지는 못할 망정 애들 앞에서 대놓고 개망신을 줘?


아마 지금 와서 그런 소리 들으면 그냥 반을 바꿔 달라고 하든지, 아님 정중하게 상담 요청에 들어갔을 것이다. 당신은 교사로서 가르치는 기술을 논하기 전에 사람을 존중하는 자세부터 익히라고 카운터펀치를 날리겠지. 학생이 못하니까 교사가 필요한 거지, 학생이 알아서 잘하면 당신이 무슨 필요가 있겠느냐며 모욕을 줄지도 모를 일이다.


중학생 때까지만 해도 영어라면 누구보다 좋아하고 자신 있어 했지만, 그날 이후로 영어는 버리고 프랑스어를 선택했다. 그래도 미련이 남아 있어서 자습시간에 수학보다도 영어 공부를 더 했다. 영어를 사랑해서가 아니었다. 수학과 과학은 아무리 공부해도 이해도 안 되고 모르겠고 도저히 따라잡을 수 없는 세계였다. 그러니 그나마 감이라도 있던 영어마저 포기한다면, 정말 인생을 망치고 영원한 루저loser로 비루하게 사는 게 아닐까 하는 불안감 때문이었다.


대학 전공 역시 영어가 아닌 프랑스어로 정했다. 나중에 영어를 제2전공으로 선택해서 그만큼의 학점 이수를 따내고 졸업은 했지만, 뭔가 석연찮은 아쉬움이 있다. 어린 시절 너무도 크게 긁힌 생채기 때문이었을까. 그렇다고 언제까지 어렸을 때의 일로 징징댈 수는 없는 일이다.




외할아버지는 영어 선생님이셨다. 퇴임하셨어도 외할아버지의 서재는 항상 영어 교재들로 가득했다. 외고에 들어간 손주를 기특하게 여기셔서 당신께서 알고 계신 영어에 대한 모든 이야기를 들려주셨다. 그뿐이랴, 영한사전은 물론 영영사전도 안겨 주시고, 각종 영어 학습 자료들을 갈 때마다 안겨주셨다. 외할아버지는 지조가 있으시고 품격 있으신 학자이셨다. 배움에 대한 열정이 있으신 외할아버지의 모습은 영어를 비롯한 외국어에 대한 꿈을 꾸게 해 주는 통로가 되었다.


대학생 때 좋은 원어민 교수와 선생님들을 만났다. 따끔한 비판이나 질책 한마디만으로도 휘깍 쓰러지기도 하지만, 칭찬 한 말씀만으로도 우주 정복이라도 할 기세로 에너지를 과하게 쏟아붓기도 하는 터라, 칭찬과 격려로 이끌어 주는 교수님들 앞에 돌탱이Peter는 비문을 새기듯 학습한 것들을 깎아 새겨 넣었다. 그리고 그때의 집중적인 학습이 지금의 스티브를 만들었다고 믿는다.




스페인에서 영어 국제 공인증과 같은 TEFL (Teaching English as  Foreign Language) 과정 수료 후 강사 기관에서 면접을 봤을 때의 질문과 답변을 떠올려 본다.


질문: 스페인에는 영국, 미국, 캐나다 등 원어민이 넘쳐난다. 당신은 비원어민인데, 비원어민이 영어강사로서 가질 강점이 있는지?


답변: 맞다, 나는 비원어민이다.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하지만 영어 강의에서 중요한 것은, 선생이 말을 잘하는 것이 아니라 학생이 말을 잘하는 것이다. 나는 비원어민이었기에 학습자의 입장을 잘 안다. 그들의 질문을 이해하고 답할 수가 있다. 

왜 과거 시제가 아니라 현재 완료를 써야 하는지, 무슨 이유로 수동태를 사용해야 하는지, 가정법의 구조는 어떻게 되는지, 문법적으로 다양하게 설명할 수 있다. 

솔직히 말해, 원어민이 학생의 why? 에 대해 제대로 설명해 주는 걸 들어보지 못했다. 패턴을 알려주고 계속 반복하라고만 알려준다. 물론, 방법이야 어찌하든지 학생이 말만 잘할 수 있으면 그걸로 된 것이다. 

하지만 학생의 입장에서 궁금하고 가려운 걸 긁어주는 게 교사의 역할 아니겠는가. 그래서 TEFL 교육 이수 중에도 원어민 동료들이 나에게 와서 다시 물어보고 배우곤 했다. 원어민에게 문법이란 살면서 단 한 번도 접한 적이 없는 것이지만, 외국인인 나는 영어 문법의 모든 걸 꿰고 있다. (이건 나뿐만이 아니라 한국인은 누구나 그렇다 라고까지 방점 찍음)

또한 단어 하나를 알려주더라도 어원은 물론 어근과 접두사, 접미사를 이용해서 파생 단어까지 확장해서 수준에 맞게 가르쳐 줄 수 있다. 이유를 알고 설명할 수 있는 것, 그게 비원어민 강사로서의 강점이다.


질문자는 고개를 크게 끄덕거리고 추가 질문 없이 바로 OK에 들어가 계약서에 들어갔다. 이후 스페인 현지 기업을 방문하고 관공서를 찾아다니며 영어 출강을 나갔을 때, 언제나 그들이 필요로 하는 것을 가르쳤고 그들의 입장에서 설명해줬다. 


스페인어 문법도 병행해서 알아두니 더욱 요긴했다. 어떤 말을 하건 큰소리로 칭찬을 아끼지 않았고, 틀린 답을 해도 문제없다며 격려해 줬다. 외국어 공포증을 없애니 자신감을 가졌고, 자신감은 학습에 대한 열의로 선순환을 가져왔다. 틀리면 어때, 외국어인데, 그러니까 배우는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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