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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 한량 스티브
Dec 14. 2021
바흐, 모차르트, 베토벤, 쇼팽, 리스트, 브람스... 피아노를 배우는 분들이라면 바이엘 입문 과정 이후 만나는 작곡가다. 국민학교 3학년부터 중학교 3학년까지 대략 7년간 피아노를 배웠는데, 선생님의 영향을 크게 받던 시기라 그런지 피아노, 또는 피아노 곡에 대한 느낌도 꽤 극과 극을 달렸다.
국민학교 시절 학원을 다닐 때는 일반 업라이트 피아노로 연습을 하고, 원장실에 놓여있는 그랜드 피아노 앞에서 레슨을 받았다. 아직 바닥에 제대로 다리도 닿지 않을 코흘리개 시절, 딱딱한 나무판에 얇은 천으로 살짝 덮은 의자에 앉아 가볍게 울리는 업라이트는 말 그대로 피아노였다.
그러다 엉덩이가 닿는 순간부터 편안해지는 울룩불룩한 가죽 시트와 멀리서 봐도 반질반질 윤이 나고, 누를 때 사각 거리는 기분마저 드는 그랜드 피아노는 뭐랄까, 삼륜차를 타다가 마이바흐를 탈 때 느끼는 정도로 어마 무시한 차이였다. (tmi: 예나 지금이나 마른 편이라 의자 쿠션에 매우 민감하다)
어리니까 손가락 힘도 약할 때고, 브런치 화면처럼 눈앞에 보이는 거라곤 책도 피아노도 오로지 흑과 백이 전부라 어지럽기도 했을 것이다. 그렇지만 붉은 머리의 사제 비발디처럼 풍성한 사자 머리에 주황빛 도는 갈색으로 염색한 원장 선생님이 '이 곡은 이렇게 치는 거란다' 라는 식으로 건반 위에서 춤 출 때면 내 마음도 스텝을 밟고 있었다.
연습이 부족한 부분은 연습으로 채우기 전까지는 어떻게 해도 가려질 수 없었다. 내 속 사람을 내보이는 글쓰기와 같다. 엉뚱한 곳을 치고, 줄이 몇 개씩 붙은 음표들이 읽히지 않고, 좀 전에 친 건데도 다시 칠 때 또 까먹고, 손가락이 꼬이고, 박자를 놓칠 때마다 얼굴은 화끈거렸다. 하지만, 사자머리 원장님의 칭찬 몇 마디는 그 모든 걸 무마하고도 남음이 있었다.
중학교부터는 음대생에게 개인 레슨을 받았다. 감정에 불타 열을 올리는 제자에게 얼음공주인 선생님(이자 대학생인 그분)은 어려운 상대였다. 모든 악보를 주제별로 나누어 스터디를 하고, 메트로놈의 화신이 되어 원곡의 빠르기에 다다르지 못하면 죄인이 된 듯한 기분이었다. 그의 의도는 아니었겠지만, 마치 이전에 배운 건 잘못됐거나, 부족했다는 느낌을 늘 받기 일쑤였다.
무엇보다도 감정을 배제하고 학구적으로 파고들어 배워나가는 게, 나름 음악의 정석일 수는 있겠으나 당시 또래 남학생들보다 감성이 몇 사발(스푼 정도론 안 됨) 정도 더 퍼 담긴 중학생에겐 쉽지 않았다. 선생님 입장에선 곡을 잘 가르쳤을지 몰라도, 학생 입장에선 잘 배우지 못한 셈이다.
이 경험은 나중에 영어 강사로 설 때에도, 문화 가이드로 안내할 때에도 그대로 적용되었다. 본인이 이만큼 많이 안다고 떠들어봤자 아무 소용이 없다. 받아들이는 눈높이에 맞춰야 한다. 생초보이면 초보 인대로, 고급이면 고급 인대로, 케바케 (case by case)로 준비하고, 이유식으로 하나하나 떠먹일지, 나이프와 포크를 앞에 놓고 알아서 즐기게 할지를 고려해야 한다. 그렇지 않고 일방적으로 퍼주는 것도 잘못이지만, 준비도 안 된 사람보고 즐기라고 하는 것도 강요에 다름 아니다.
다시 피아노로 돌아와서, 사실 피아노의 원래 이름은 피아노가 아니다. pianoforte 피아노포르테이다. 여리게(piano)부터 강하게, 세게(forte)까지 셈여림을 다양하게 표현할 수 있어서 나온 말이다.
내 삶은 얼마만큼 피아노와 포르테로 살아가고 있을까. 피아니시모와 포르티시모 사이에는 메조 피아노도 메조 포르테도 있다. 단답형으로 알려주는 것만은 아니다. 크레셴도로 더 상승할 수도, 데크레셴도로 잠잠해질 수도 있다. 끝을 모르는 쉼 속에서 스페인 거리는 크리스마스로 더욱 떠들썩해진다. 광장의 소란스러움과는 별도로 우울한 감정이 스멀거리며 찾아오는 연말이다. 피아노 덮개를 열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