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 어머니의 유전자와는 다르게 나는 애당초 노안이었다. 얼굴뿐 아니라 하는 짓까지 영감탱이였다. 별명도 국민학생 때부터 선비, 영감, 시어머니 등 전혀 어린이답지 않게 애늙은이로 시작했다. (하아, 시작부터 장탄식이...)
국민학생 때 남자애들의 짓궂은 장난에는 참지 못해 발끈했고, 중학교 시절엔 반, 부반장과 선도부까지 고루 섭렵하며 원칙에 어긋나는 걸 단 1도 용납 못하는 어린 꼰대(이자 완전 범생이)였다. 공부에 눌리던 고등학생 시절은 아마도 지금까지의 인생에서 가장 심각하고 진지했을 것이다.
양반 다리를 하고 TV를 봤는데, 정말 그대로 뒤로 넘어갈 뻔했다. 긴 얼굴, 짙은 눈썹, 작은 눈, 큰 입, 심지어 안경테까지 모든 게 완벽할 정도로 다 똑같았다. 딱 하나, 고등학생인 나는 세상 모든 짐이란 짐은 다 짊어지고 가는, 카라바조 작품의 골리앗이자 단테의 신곡에 나오는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지나는 자였는데, 그분은 시종일관 빵빵 터지는 웃음으로 온 인류를 밝은 세상으로 인도하는 구원자였다.
똑같은 얼굴인데 어떻게 저렇게 다른 세상을 살고 있을까. 20년도 더 지나 스페인에 사는 지금까지도 그때 그 순간을 그대로 소환할 정도로 엄청난 충격을 받았다. 그때의 충격은 이후 평생을 두고 곱씹어 보는 인생의 질문이자 화두가 되었다.
매우 더디지만 그 이후 조금씩 긍정적으로 보는 연습을 했다. 매사 부정, 비판, 회의, 짜증, 엄숙, 근엄, 진지함으로 충만했던 내게 능글맞음이 슬쩍, 너스레가 조금씩 들어왔다. 시간의 힘일까. 아니면 나이듦의 여유일까.
고등학생 때까지만 해도 누가 봐도 장남 이미지였는데 대학에 가면서부터 외동, 막내, 위로 누나, 또는 아래로 여동생을 둔 이미지가 되었다. (장남, 차남, 외동을 언급한 건 그게 좋다, 나쁘다를 얘기하려는 것이 아니다.) 어떻게 그리 되었는지는 본인도 의문이다. 여러 가면에서 하나가 약해지면서 다른 하나가 고개를 내민 것인지, 아니면 시나브로 전환이 되었는지 모르겠다.
중요한 건 그런 변화가 가져온 결과이다. 두 입술 앙 다물고, 양쪽 어금니 꽉 깨물며, 미간에 내 천川자 새기며 사진 찍던 얼굴은 입꼬리를 올리며, 실없는 소리도 종종 하며 너털웃음 짓다가 파안대소까지 가는 털보 아재가 되었다. 물론, 여전히 불쑥불쑥 꼰대스러움이 튀어나오곤 한다.
가끔 커뮤니티 단톡방에서 의도치 않게 호구처럼 놀림받을 때가 있다. 역설적인 건, 당하는 입장인데도 그저 즐겁다는 점이다. 어쩔 땐 너무 망가져서 '어어, 나 이런 사람 아닌데.'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하지만, 아무려면 어떠하랴. 이래도 시간은 가고, 저래도 피할 수 없는 건데.
지금 행복하지 않으면서 나중의 행복을 얘기한다는 건 결국 제로섬 zero-sum 게임이 되고 마는 게 아닐까. 보장되지 않는 미래에 로또를 거느니, 지금의 행복을 선택하겠다.
문제가 있다. 해결할 수 있나? 네. 그럼 걱정 끝.
문제가 있다. 해결할 수 없나? 네. 그럼 걱정하면 해결되나? 아뇨. 그럼 왜 걱정을 하나? 걱정 끝.
배경사진: 구글 이미지 Shaza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