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말 지나기 전에 드리고픈 감사
2020년 3월, 회사의 마지막 팀을 바르셀로나 공항에서 배웅했습니다. 락다운이 걸리자 은자의 삶이 시작됐습니다. 언제 끝날지 모를 무기한의 휴식에 들어갔습니다. 모처럼 가족과 원 없이 같이 지내게 되어 좋다고 하지만, 사회적 거리두기는 집안에서도 확실히 필요하다는 걸 여러모로 실감했습니다.
뭔가를 뚜렷하게 하는 것도, 그렇다고 안 하는 것도 아닌 엉성한 상태. 문자 그대로 어영부영하며 애꿎은 아이들에게 큰소리치고, 심통 부리며 때아닌 사십춘기를 지나가는 아재. 그게 저였습니다.
마음대로 무언가를 하는 것도, 그렇다고 안 하는 것도 아닌 시간의 소비자로 살던 중 1년 전 이 맘 때에 브런치의 문을 두드렸습니다. 다음 해 봄이 되자 브런치 작가분들 모집 알림이 떴습니다. 그 광고는 단순한 모임을 넘어 말로만 들어보던 <사이드 프로젝트>이자 <브런치 작가 연합 레이블>이라는, 그야말로 있어-빌리티가 뿜뿜하는 곳이었습니다. 한국에서 겁나먼 왕국, 서반아의 마덕리 마을 촌놈에겐 그야말로 눈부신 신세계였지요.
'본업'이 든든하게 있어야 '사이드' 프로젝트의 의미가 있는데, 비자발적 실업자인 상태에서 사이드를 둔다는 건 뭔가 어폐가 있는 느낌입니다. 하여 함께하는 분들께 번번이 마음의 빚을 느끼곤 했습니다. 아무도 뭐라 하지 않고 도리어 따뜻한 응원을 해 주시는데도, 천직을 잃어버리고 방황하는 저는 감정의 고저와 기폭이 몇 번이고 널을 뛰었습니다.
흔들리는 마음을 잡아준 건 매달 말 팀 라이트에서 여는 강연, <인사이트 나이트>였습니다. 보통 사람에게서 발견하는 통찰력 가득한 세미나를 가져보자는 취지에서 시작했는데, 저는 정말 그 덕을 톡톡히 봤습니다. 아울러 매주 금요일마다 발행하는 <팀라이트 레터>도 잔잔하고도 재치 있고 유려한 글 흐름 속에 마음을 한 번씩 다잡곤 했습니다.
다른 한편으론 좋은 문장을 따라 쓰고, 의미 있는 질문에 대해 솔직한 답을 올리며 서로를 진심으로 보듬어 주는 필사 모임, <따스한 문장>의 힘도 정말 컸습니다. 지난주엔 줌으로 송년회까지 가졌는데, 가족이 된 느낌이었습니다. 올해 초 멋모르고 시작한 모임이었는데, 하다 보니 어느새 연말까지 오며 깨달은 건, 문장이 아무리 좋아도 같이 나눌 사람이 없다면 소용없다는 것이었습니다.
좋은 게 있으면 나누고 싶다는 건 비단 껌이나 초코파이 광고에서만 등장하는 게 아닐 겁니다. 무리 지어 사는 동물들도 먹을거리를 구하면 나누는 걸 봅니다. 좋은 글, 좋은 강연은 같이 듣고, 소감을 나누고, 공감하는 교류가 있을 때 그 파급력이 커집니다. 서로에게 윈윈 하는 일이고, 회의감과 우울증에서 벗어나는 길이 되는 것이라 믿습니다.
공감대는 특정 모임의 커뮤니티에서만 그치지 않았습니다. 슬로바키아에서 친한 동생의 권유로 시작한 페이스북에서도, 여행 중 손님의 강권으로 시작한 인스타도, 그러다 제일 뒤늦게 시작한 브런치에서도 좋은 분들이 계셨습니다.
페이스북에서는 <세계 한국인 가이드 협회> 분들을 통해 세상 곳곳에 인간미 풀풀 풍기는 진솔하고도 품격 있는 한국 가이드 분들이 많이 계시다는 걸 알았습니다. 한 분 한 분, 인생의 선배로 만나 배울 게 너무나도 많은 분들이십니다. 누가 가이드를 두고 사기꾼이니 장사꾼이니 한답니까. 그렇게 물을 흐리는 분도 있겠지만, 그런 판이 되도록 과도한 욕심을 보인 분들 또한 간과할 수 없지 않을까요. 수요가 있기에 공급이 있으니까요.
인스타 Insta에서는 그야말로 별 star 같은 분들이 제 삶에 빛을 반짝여주셨어요. 쓰려고 보니 본명보다 전부 그분들의 재미난 아이디로만 떠오르네요. 인친들의 멋진 사진을 보고 비교 속에 열등감을 느끼는 게 아니라, 다들 어려운 상황에도 행복을 잃지 않고, 잘 살고 있는 모습에 도리어 감사하고 저도 같이 즐거워지는 시간이었습니다. 각종 이모티콘을 사용하며 알콩달콩 나누는 재미 또한 쏠쏠하고요.
브런치에서는 간접 인생 공부과 경험에 도움을 주신 작가님들이 해변의 모래처럼 계십니다. 한 편의 글마다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와 삶에 대한 통찰에 읽는 저는 노호혼처럼 끊임없이 고개를 끄덕끄덕 거립니다. 건전한 자극 속에 저도 언젠가 그렇게 수준 있고 필력 넘치는 글을 쓰고 싶다는 의욕이 듭니다. 그런가 하면 친구처럼 마음의 쿵작이 잘 맞는 문우님들을 만나 알게 된 것 또한 저에게는 큰 인복이라 할 수 있지요.
6월의 어느 날, 너무나도 뜬금없는 연락을 하나 받았습니다. 가이드로서 딱 한 번 행사를 치러본 인솔자 누나였습니다. 그렇게 알고 지내는 누나가 구독료를 보내고 싶다며 계좌를 알려달라는 거였어요. 아니, 제가 글을 규칙적으로 발행하는 것도 아니고, 신문처럼 정보가 있는 것도 아니고, 세상을 읽어내는 통찰이 담긴 것도 아닌, 그저 개인 일상에 불과한, 좋게 포장한다 해도 아마추어 수필에 불과한 글인데 구독료라니요. 그야말로 헉! 이었습니다.
게다가 인솔자 누나도 저처럼 여행업계에 계시니 사정이야 서로가 뻔한 거 아니겠어요. 그런데 지금 누가 누굴 돕겠다는 건가요. 실제로 이전에도 여행 다닌 손님들이 안부 연락을 주시다가 갑자기 밑도 끝도 없이 돈을 보내겠다며 계좌 번호 알려달라고 추궁 아닌 추궁을 하신 적이 있어, 덕분에 아이들과 맛난 식사로 감사 기도 속에 화답한 적은 있었지만, 이런 경우엔 어찌할 바를 몰랐습니다. 네, 결국 받았어요. 그러다 액수를 보고는 순간 말을 잃었습니다. 너무도 당황해서 뭐라고 해야 할지도 모르고, 휴지만 몇 장씩 뽑으며 눈물 콧물을 훔쳤습니다.
어제 교회에서 예배 후 목사님께서 조용히 아내를 부르셨습니다. 연말 교회 재정에 여유가 있어 저희 가정에 500유로(한화 67만원)를 준다는 것입니다. -교회는 저희 외에도 수입이 끊어진 두 가정에 도움을 주었습니다. 교인 수라고 해 봐야 성인 기준 스무 명도 안 되는 작은 교회입니다.
일단 그 자리에서 쥐어주시기에 받긴 했지만, 어떻게 하면 좋겠냐며 아내가 묻길래 저는 바로 돌려드리라 했습니다. 아내 역시 본래부터 그럴 마음이었다는 듯 두 번 묻는 일 없이 동의했습니다. 교회 나오기 전 조용히 헌금 봉투에 넣어 다시 전해드렸습니다.
더 도와주지 못해 미안하다며 쥐어주신 돈을 다시 되돌려 드리니, 더 미안해하시는 듯했습니다. 하지만 마음에는 일체의 아쉬움이 남아 있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교회가 이런 일을 한다는 점이 신선했고, 기분이 더없이 좋았습니다. 이런 교회가 있다는 사실에 뿌듯하고 자부심이 생기기까지 했습니다. 그 일이 계기가 되어 글을 씁니다.
저는 다른 건 몰라도 정말 사람으로 인한 복이 참 많습니다. 양가 부모님의 덕이라 생각합니다. 저는 저대로, 아내는 아내대로, 각각 인품 좋으신 부모님의 가르침 덕에 이런 복을 끌어온 게 아닐까 합니다. 금수저가 아니면 어떤가요. 저희 가정에는 금맥을 타고 이처럼 좋은 분들이 연이어 찾아와 주시고 있는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