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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페인 한량 스티브 Dec 30. 2021

스페인에서 누군가를 만난다는 건 I

내 피에 강아지 유전자가 있는 걸까? 당장에 등짝을 처맞을 소리지만, 사람을 만나면 좋아서 달려들다 보니 이런 상상을 하곤 한다. 분명 부모님의 사랑을 원 없이 받으며 자랐는데 말이다.


지인 또는 좋아하는 분을 만나러 가는 때야 말할 것도 없지만, 일 하러 나갈 때도 즐거워서 콧노래를 부른다. - 참고로 내 일은 사람으로 시작해 사람으로 끝나는 가이드업이다. 


옷은 가급적 정장을 입는다. 전날 다림질한 셔츠의 빳빳한 깃을 세우고, 커프스로 양쪽 소매 끝을 야무지게 잡아주고, 쟈켓을 가뿐히 걸칠 때의 착용감은 콜라 한 잔의 청량감보다 더 상쾌하다. 착 붙는 정장 바지는 짧은 다리도 가려줄 것만 같고, 또각거리는 구두까지 신으면 자신감마저 저절로 따라붙는다. 

 

단정하게 차려입는 건 내 기분을 위해서도 그렇지만, 상대방을 향한 내 마음의 표현이기도 하다. 그게 꼭 정장일 필요는 없다. 청바지를 입어도 내가 제일 즐겨 입는 걸로 고르고, 티셔츠를 입더라도 색깔과 전체적인 톤을 고민해 본다. 같이 보낼 시간은 더없이 소중하니까.


그렇게 입고 나서면 오늘 만날 친구며 형, 동생, 손님에 대한 관심도 더 높아진다. 몇 시쯤 도착한다는 메시지가 오면 에스프레소라도 마신 듯 심박수가 올라간다. 머릿속에선 이미 몇 번이고 생각해 본 이야깃거리를 떠올린다. 아니면 전에 같이 찍은 사진을 보며 그때의 즐거웠던 순간을 상기해 보기도 한다.


한 번의 만남에 대해 이렇게나 마음을 쓰는 건 현재 내가 해외에 살고 있기 때문만은 아니다.

스페인에 온 지 얼마 안 되었을 때, 정현종 시인의 <방문객>이 내 마음을 완전히 뒤흔들었다.


사람이 온다는 건
실은 어마어마한 일이다.
그는
그의 과거와
현재와
그의 미래와 함께 오기 때문이다.
한 사람의 일생이 오기 때문이다.
(후략)

 

실로 그러하다. 누군가의 전체 일생이 나에게 오기 때문이다. 그냥 흘러가 버릴 뻔한 내 시간에 의미가 생겼다. 얘기를 나누다 보면 시간이 어떻게 흐르는지도 모른 채 해가 지고 밤이 되고 했다.  


(배경사진: 마드리드 데보드 신전에 노을을 보러 나온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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