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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페인 한량 스티브 Dec 22. 2021

동안 보다 동심

누구나 젊음을 원한다. 정확하게는 젊음을 오래 유지하기를 원한다. 어렸을 적엔 그렇게나 빨리 나이를 먹고 싶더니, 어른이 되니 어려지고 싶은 청개구리 같은 마음이 왔다 갔다 한다.


스페인의 한국 교민들은 한국만 다녀오면 다들 얼굴부터 광이 난다. 여성분들의 머리는 말할 것도 없거니와 남자들도 스타일링이란 단어가 보자마자 떠올려질 정도로 멋지다. 문자 그대로 머리부터 발끝까지 스타일의 업그레이드이자 트렌드 업데이트다.


그뿐이랴. 한국에 사는 분들의 인스타 속 성탄 풍경과 거리 장식의 화려함은 넘사벽일 정도로 럭셔리, 그 자체다. 소득 격차의 지표 지수를 굳이 찾지 않더라도 사진만으로도 그 결과를 쉽게 확인할 정도로 한국의 경제는 상당한 수준에 이르렀다.


물질의 부유함은 사람의 얼굴에서도 느껴진다. 특히 여성들의 경우, 정말이지 나이 가늠이 안 된다. 다들 피부관리를 받는 게 기본인 듯싶다. 어플이 사기네, 휴대폰 카메라 성능이 좋아졌네 하며 다들 너스레를 떨지만, 아니다. 이건 정말 다르다. 


사진마다 좋아요를 누르고, 정말 예쁘다며 댓글도 달다 보면 가끔 나는 원시인도 이런 원시인이 없겠다 생각이 든다. 아내에게 미안한 마음이 드는 건 무조건 반사다. 이 나이가 되도록 뭘 한 걸까 하는 후회는 기본 옵션이고.


그러다 아내를 보면, 아내는 무심하다 싶을 정도로 아무 내색이 없다. 하지만 안다. 아내라고 다를까. 아니다. 그도 하고 싶지만, 사정상 환경상 그냥 넘기는 것뿐이다. 오늘도 변함없이 유, 초, 중 세 아이의 하루를 챙기며 웃음꽃을 피운다. 물론 때때로 언성 올라가는 일도 여전하다.




스페인에서는 동안童顔에 대해 의외로 좀 무신경한 듯싶다. 일반적이지 않다고 보기 때문인 것 같다. 연예계야 어떻게든 젊음을 유지하려고 각종 시술은 물론, 화장품으로 관리하지만, 일반인들은 크게 신경 쓰는 편이 아니다. 


개인 경험만으로 성급하게 일반화시키고 싶진 않지만, 스페인 사람들은 어느 정도의 나이에 따른 자연스러움을 더 잘 받아들이는 것으로 보인다. 나이에 어울리는 멋스러움, 나이 들어도 당당한 가운데 세련된 멋을 내는 것이 미의 관점인 것 같다. 심지어 남자의 경우, 너무 젊은 건 오히려 애송이로 취급받아 좋지 않다. 


직장인 시절, 독일 베를린 IFA 가전박람회에 갔다가 황당한 일을 겪은 적이 있었다. 관심 있게 제품을 보다가 직원과 얘기를 나누고 싶어 부스에 들어가니 웬걸, 본체만체하다 나 xx 매니저요 하니 그래 알겠소, 여기 전단지나 가져가쇼 라는 식으로 찬밥 신세가 된 일이 있었다.


아니, 이게 대체 뭐지? 더 의외였던 건 스페인 동료들의 그럴 줄 알았다는 식의 반응이었다. 유럽에선 한국인을 비롯한 아시아계는 너무 어려 보이는 게 (젊어서도 아니고) 문제라는 것이다. 아니, 우린 동안童顔 을 인정받으려고 애쓰는데, 이게 대체 뭔 소린가 싶어 되물어 보니, 어려 보이는 건 경험이 부족하다는 것과 동일시되기 때문에 말에 권위가 서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게 무슨 소리인가. 문화충격이었다. 공자왈 맹자왈이라도 읊어야 하는 건가. 아니면, <롤랑의 노래> 한 구절이라도 따와야 하는 건가. 유럽이 이렇게나 보수적인 곳이었어? 우리나라와는 또 다른 이들만의 나이에 대한 인식 문화 차이에 어안이 벙벙했다.


아닌 게 아니라 나보다 어린 동료들은 나를 당연히 자기들보다 어리게 보거나, 본래 나이보다 띠동갑 이하로 보고 있었다. 대학교 갓 졸업한 정도로 알았다는 말에는 태어나서 처음 듣는 진지한 농담인가 싶기도 했다. 이미 아이가 둘이요, 첫째는 초등학교 들어간다 하니 도리어 자기들끼리 충격이라며 수군대기까지 했으니.


수염을 기르기 시작한 건 그때부터였다. 맨송맨송한 얼굴과 짧은 머리의 동안童顔이 아니라 노안, 아니 나이에 걸맞은 얼굴을 찾기 위해서. 그래 봤자 여전히 어려 보인다고 했지만, 그래도 띠동갑을 면한 것만으로도 다행으로 여겼다. (모든 게 실화라는 게 놀라울 따름)


어렸을 적 영감 소리를 듣고도 띠동갑 아래가 될 정도였으니, 동안을 바라는 모든 한국인들은 유럽으로 오시길.  




직장인 세계에서 벗어나 동안, 노안 이런 개념에서 떠난 지 오래다. 그럼에도 수염은 여전히 기른다. 다른 이유는 없고, 그저 있는 게 없는 것보다 왜소함을 가려주는 듯싶어서 기를 따름이다. 


사무실에서 벗어나 밖으로 돌아다니면서부터 주위의 환경에 놀라기 시작했다. 그저 사무실 창문 밖으로 낮과 밤만 구분할 정도였는데, 버스 타고 줄기차게 다니는 와중에 시간의 흐름에 따른 계절의 변화, 그리고 풍경의 전환에 감탄이 끝없이 이어진다. 흑백의 세계에서 무지개로 들어온 기분이다. 


봄이면 노란 유채와 빨간 개양귀비 꽃이 수를 놓는다. 여름이면 남부의 밀밭은 바람 따라 황금물결을 일렁이며 추수를 기다린다. 뒤이어 해바라기 꽃들이 저마다 쭉쭉 뻗은 키로 반겨준다. 가을이면 온통 갈색과 노란색의 물감을 풀어놓은 듯 가을 남자의 마음을 두드리고, 겨울이면 두 주먹 크기의 탱글탱글한 오렌지가 주렁주렁 매달려 때를 기다린다.


보고 또 봐도 늘 새롭고 신기하다. (망각의 힘일까?) 어쩌면 저렇게 자연의 시간은 그 무엇 하나 놓치는 일 없이 착착 자신의 일을 해 나갈까? 아이를 셋이나 둔 아재가 되어서도 철없는 아이 마냥 감탄이 절로 나온다.


아내 또한 놀랄 때가 많다. 무서운 소식에 두려워 놀라는 게 아니라, 아이들의 말과 행동에서 어쩜 그런 예쁜 말을 하냐며, 어찌 그런 기특한 생각을 하냐며, 그리고 그런 아이디어를 행동으로 옮기냐며 놀라워한다. 안으로도 밖으로도, 동심을 유지하는 일상이 그저 좋다. 찬바람의 겨울마저 즐겁다.



배경 사진: 스페인 까스띠야 라 만차의 유채밭. 본인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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