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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페인 한량 스티브 Jan 28. 2022

누군가를 잃는다는 건...

내 기억이 맞다면, 나는 7년 전 이맘때 스페인 교회에 처음으로 발을 디뎠다. 그 교회는 아이들이 다니는 학교 강당을 예배당으로 사용하고 있었다. 성도 수가 얼마 되지 않아 긴 의자에 자리는 듬성듬성 비어 있었다.


여성 목사님이 단 위에 오르셨다. 마이크를 잠시 찾으시다 이내 마이크가 없다는 것을 알고 약간은 갈라진 목소리로 웃으시며 마이크가 없어도 본인 목소리가 잘 들리지 않냐 하셨다.

'엄청 소탈하시구나.' 겉껍데기에 치중하지 않아 마음이 한결 편해졌다.


강당에는 그랜드 피아노가 있었다. 하지만 찬송가를 불러야 하는데 반주자가 없었다.

목사님은 다시 말씀하셨다. 보다시피 반주자가 없지만, 없어도 우리는 부를 수 있다며.

순간 뭔지 모를 짜안함이 밀려들어왔다. 소박함의 차원이 아니었다.


조용히 시작해서 차분하게 끝난 예배. 이후 성도들은 커피와 다과를 나누는 자리로 이동했다.

헌데 백발의 할아버지 한 분이 피아노 앞에 앉으시더니 찬송가 한 소절을 치셨다.


다가가서 한마디 건넸다 : 할아버지, 안녕하세요, 피아노를 치시네요. 그런데 왜 아까 예배 때는 안 치셨어요? (지금 생각해 봐도 당돌하다)


시큰둥하게 쳐다보시더니 말씀하시길, "아, 난 예배 반주를 할 정도까진 안 되거든. 그러는 자넨, 자넨 좀 치나?"

"저요? 네에, 조금 치긴 합니다만."

"그래? 그럼 여기 앉아서 한번 좀 쳐봐."


할아버지가 연주했던 찬송가 한 소절을 뚝딱거리며 바로 쳐냈다.

"Cómo? Cómo?" (원래는 '어떻게'란 뜻이지만, 보통 뭐지, 뭐지? 하며 놀라워할 때 쓰는 말이다)

"젊은이, 자네 이름이 뭔가? 다음 주부터 와서 좀 쳐주겠나?"

"네?"

"반주 좀 해달라고, 다음 주부터, 되는 거지?"

"아, 네..."


관심 없어 보이던 (또는 없어 보인 척했던) 그는 언제 그랬냐는 듯 함빡 즐거워하는 표정으로 나를 데리고 다과 장소에 가서 모두에게 들으란 듯 자랑스레 외쳤다.

"다들 좀 들어봐요, 주님께서 우리에게 선물을 하나 보내주셨어. 여기 이 젊은이가 피아노를 쳐."


그러더니만 목사님과 나, 둘을 다시 피아노 자리로 옮겨서 방금 전의 일을 증명하듯 다시 쳐 달라고 한다.

다시 뚝따기 뚝딱. 어르신들 앞이라 살짝 긴장은 했지만 쉬운 곡이라 그냥 훑듯이 했는데, 두 분 입에선 할렐루야가 터졌다.




그렇게 츤데레 할아버지, 미사엘 고린 Misael Gorrin 씨 덕에 말도 잘 안 통하는 한국인은 오자마자 스페인 교회의 반주자, pianista 가 되었다. 우리나라에선 음대생이 아니면 생각도 못할 일인데, 스페인이라 가능했다.


시간이 지나면서 안 거였지만 이 분들에겐 뭘 연주해도 전부 감탄이고, 감동이었다. 치다가 틀려도 아무도 몰랐(어쩌면 모른 척 해 주시는 것일 수도 았다). 아마추어 연주자에게 민망할 정도로 리액션이 엄청났다. 같은 곡을 여러 번 쳐도 그저 좋다며, 고맙다는 말을 성도마다 돌아가며 몇 번이나 하셨다.


단 한 분, 의외로 미사엘 씨는 처음 그 때와 같은 반응이 이후엔 없었다. 그저 너는 주님의 선물이라는 말씀만 입버릇처럼 하셨다. 그마저도 굳은 표정으로 하는 터라 속마음은 알 수가 없었다. 대신 그분은 본인이 오래 몸 담은 교회에 반주자를 구했다는 사실 하나로 충분히 만족하는 듯한 표정을 짓곤 했다.


스페인에 살면서도 스페인어를 잘 못하는 어수룩한 이방인을 현지인들에게 가장 사랑받고 인정받으며 둘도 없이 소중한 사람으로 만들어 놓은 미사엘 할아버지. 어찌 된 일인지 3년 전부터 예전처럼 자주 나오지 못하셨다. 알츠하이머를 약간 겪고 계신다는 얘기만 전해졌다. 아주 가끔, 어쩌다 찾아오시긴 했지만 말수가 많이 줄었고 수척해 보이기까지 하셨다.


그럼에도 찬송가는 곧잘 부르셨고, 성경 말씀도 잘 아셨다. 때때로 주일학교에도 가셔서 아이들을 가르치기도 하셨다. 알고 보니 미사엘 할아버지는 스페인으로 오기 전 쿠바에서 목회를 하셨다. 목사였던 것이다.


그런 그분이 어제 오후 주님 품에 안기셨다.




할아버지 조카의 말로는 정말 평안한 가운데 돌아가셨다고 했다. 왓츠앱 (유럽의 카톡 같은 메신저)에서는 위로와 애도의 메시지가 쉼 없이 이어졌다. 평소 그냥 보기만 하던 나조차 애도의 말을 남겼다. 동시에 이번 주일 예배 후에 무슨 곡을 연주할까. 머릿속에선 찬송가 목록이 지나갔다.


스페인 교회는 목사님의 축도만으로 예배가 끝나지 않는다. 반주자가 별도의 한 곡을 처음부터 끝까지 연주한다. 거기까지가 예배의 순서다. 


성도들은 피아노의 선율이 흐르는 동안 가슴에 손을 얹고 기도를 하거나, 눈을 감고 설교 말씀을 묵상한다. 3분 내외의 잔잔한 연주가 마쳐도 바로 일어나기보다는 여운을 음미하는 듯 머물러 있는 편이다.


목사님의 축도 후 아무도 자리를 뜨지 않는다. 시선은 목사에게서 일제히 피아니스트에게 모아진다. 누군가는 아예 휴대폰을 들고 녹화하려고 준비까지 한다. 헛, 나는 음대생이 아닌데, 프로가 아닌데 하는 생각으로 발뺌할 수 없는 자리이다.


선곡부터 시작해, 연습과 완성을 끌어가기 까지 아마추어인 내겐 매주 매번 도전과제이다. 예배에서 가장 긴장되고 떨리는 순간이 다름 아닌 끝이라니... 그래도 그때는 어떻게든 했다.


이번에도 과연 가능할까. 수많은 곡 중에 선곡을 마쳤고, 연습은 하고 있지만, 자신이 없다. 극소량의 멜로디만으로도 마음을 통째로 뒤흔드는 건반이 덜그럭 거릴 테지. 첫 만남처럼 시종일관 내 손가락을 바라볼 것만 같은 미사엘 할아버지의 황소 같은 큰 눈망울이 떠오를 텐데.   


츤데레처럼 겉으로는 퉁명스러워도 (츤츤 つんつん) 속으로는 남들에게 자랑할 정도로 좋아하던 (데레데레 でれでれ) 미사엘 할아버지. 나도 츤데레가 되어 일곱 무지개 빛깔의 감정을 뒤로하고 피아노 건반처럼 오로지 흑과 백만으로 나누어 그 앞에 굳건히 앉을 수 있을까.


사랑하는 누군가를 잃는다는 것, 누군가를 보낸다는 것은 정말 힘겹다. 그리고 이런 일을 당하고 나면, 제 아무리 미움과 증오가 있던 사람에게 마저 그 마음을 눈 녹듯 다 풀어지게 된다. 세상을 떠나는 분이 남기고 가는 놀라운 마법이자 가장 위대한 기도의 응답이다. 원수를 사랑하게 만드니 말이다.


사랑하는 사람에겐 살아있을 때 더 사랑하고 아껴야지 하는 마음, 그래서 더 안타까움이 짙게 베인다.


미워하던 사람에겐 미움이 다 무슨 소용인가, 지나고 나면 아무것도 아닐 것을, 부질없는 일일 텐데, 사랑하고 살아가기에도 짧은 인생이다 하며 용서의 마음이 절로 생긴다.


이방인인 나를 방문 첫날부터 특별하게 만들어 준 미사엘 고린 할아버지를 오래도록 기억하고자 이곳에 남긴다. 고맙습니다. 마음 평안히 쉬세요, 할아버지. 


정정하던 당시 강단에서 설교하는 미사엘 고린 목사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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