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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페인 한량 스티브 Jul 13. 2022

나도 큰 바위 얼굴이고 싶다

중학교 교과서에 나다나엘 호손의 <큰 바위 얼굴> 이야기가 나온다. 그 이야기를 읽고서 얼굴이 다소 위아래로 긴 편인 나는 엉뚱한 상상을 했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릴 때마다 거울 앞에서 옆으로 늘이면 큰 바위 얼굴이 될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그야말로 허무맹랑한 상상을 말이다.


직접 양 볼을 잡고 좌우로 당기면 아플 것이고, 행여 누구라도 한 명 같이 탔다면 완전 돌아이로 낙인찍힐 테니 상상만이 유일한 탈출구였다. (뭐 이렇게 쓰고 보니 어렸을 적 비밀을 굳이 얘기해 중년 아재가 갑자기 돌은 자가 된 건 기분 탓일 거다.)


책은 외면보다 내면에 초점을 맞춘 것이기에 어니스트의 외모가 어떠하다는 상세한 묘사는 없지만, 확신컨대 거의 얼굴형은 아펜니노(이탈리아) 반도의 길고 긴 장화가 아닌 이베리아(스페인과 포르투갈) 반도의 정사각에 가까웠을 것이다. 뾰족, 까칠, 까탈스러움 등의 이미지와는 거리가 먼 온유하고 중후하며 배려심 가득한 인상 말이다.


긴 얼굴로도 그런 인상을 갖는 게 과연 가능할까. 한창 외모에 고민이 많을 사춘기 시절, 남학생은 전부 스포츠머리 (도대체 군인 머리, 선수 머리도 아닌 sports 머리라는 이름은 어떻게 탄생한 걸까)로 관심 자체를 차단시킨 것 같지만, 실상은 획일적으로 깎은 머리 때문에 더욱 외모지상주의와 열등감을 갖던 시절. 큰 바위 얼굴은 희망이자 고문이었다.


주인공도 노년에나 접어들어 본인이 그토록 바라던 큰 바위 얼굴과 닮은꼴임을 발견했는데 (그것도 실은 본인은 자각하지 못하고 타인에 의해 발견되었는데), 피 끓는 10대의 청춘이 그 긴긴 세월을 어떻게 기다려야 한단 말인가. 절로 자괴감이 솟구쳤다.


천만다행으로 노년까지 안 가고 중년 즈음에서 터닝 포인트가 될 문장 역시 책에서 접했으니 다름 아닌 링컨이 남긴 말이었다:


사람은 나이 40이 넘으면
자신의 얼굴에 책임을 져야 한다.


국어 선생님께서는 어른이 되어 책임을 질 본인의 얼굴을 위해 불평보다는 감사, 부정보다는 긍정의 말을 계속 쓰면 인상이 좋아진다며 예언을 하셨다. 애당초 활달함과는 거리가 멀고 애늙은이가 되어 시종일관 심각한 표정으로 얼굴을 구기다 결국 <인상파>라는 별명마저 얻고만 까까머리의 중학생은 선생님의 말씀에 생각을 바꾸기로 한다: 그래 어찌 되었건 마흔이면 그래도 환갑보다는 적네.


스스로 조삼모사를 지어놓고 도찐개찐 하며 넘어갔다. 당시 얼굴뿐 아니라 돼지털 반곱슬의 머리카락부터 하늘로 뻗쳐 오른 양 엄지발가락의 내성발톱까지 온몸을 외모 비하로 덮어 지내던 그때, 빨리 나이가 들기를 바랐다. 절대 19금 영상물을 보기 위함이 아니었다.


그렇다면 마흔이 되기까지 그저 기다리기만 하면 해결이 될까? 학생 당시에는 어떻게 해야 책임질 얼굴을 가질 수 있을까? 그 방법이 무얼까 하는 생각밖에 없었다. 방법에 앞서 본질적인 질문, 왜 그런 얼굴을 갖고 싶은가를 보다 깊이 들여다봐야 하겠지만, 외모 열패감에 충만하게 젖어있던 당시 그런 건 아무래도 상관이 없었다. (실은 누구도 뭐라 하지 않았다, 그저 자격지심이다.)




어니스트를 비롯한 마을 사람들은 큰 바위 얼굴을 하루에도 몇 번씩 쳐다보는 게 습관이었다. 장엄, 거룩, 숭고, 웅장 등 휘황찬란함으로 둘러싸인 자연의 작품은 보는 것만으로도 위안이 되었으니 즐거운 순간, 고단한 시간, 힘겨운 반나절을 보낼 때마다 고개를 돌려 돌멍 하듯 넋을 잃고 바라보았을 것이다. 개인의 습관이자 마을의 풍습이 되어 지나가던 나그네마저 뒤로 돌았을지 모른다. 도대체 저들은 왜 멍한 채 서 있을까 질문을 품다가도 이내 자신도 그들과 동화되고 말았을 것이다.


배울게 많은 친구, 자상한 인품의 선생님, 잠깐 뿐이지만 밤낮으로 보는 부모님이 학창 시절 동안 빠짐없이 하루에도 수십 수백 번씩 마주한 큰 바위 얼굴들이다. 그들의 일거수일투족을 보고, 말투를 따라 하고, 행동을 모방하는 것 하나하나가 좋은 습관이자 일상 지침이었다.


덕분에 맹모삼천지교는 먼 옛날 이야기가 아닌 바로 지금 내 주위에서 얼마든지 발견하고 적용할 소재가 되었다. 매일매일은 안 보여도 분명 손발톱이 자라고 머리카락이 자라듯 어느새 감사의 언어와 긍정적인 방향으로 보는 게 자연스러운 일이 되었다.


다시 말해, 습관으로 자리 잡았다. 습관과 행동은 서로 꼬리에 꼬리를 물고 영역을 확장했다. 성장은 더불어 성숙을 낳았다. 타인의 글로 선한 영향력을 더는  데 그치지 않고 나 역시 내 글을 통해 누군가에게 전하고 나누는 데에까지 뻗어나갔다. 좋은 환경이 자연스레 물려준 습관의 힘이다.


좋은 습관의 씨앗을 심어준 분들을 스무 해도 훨씬 더 지나 만났다. 모교의 은사님을 찾아뵙고, 친구들을 만나며 얼마나 놀랐는지 모른다. 달력만 바뀌었을 뿐 선생님의 온화한 인상이며 정 많은 친구의 얼굴은 그때 그 모습 그대로였기 때문이다.


그중 누구도 쉬운 세월을 산 사람은 없었다. 이야기를 듣다 보면 나도 모르는 사이 나지막이 한숨을 내뱉고, 혀를 차며, 이내 휴지를 뽑아 눈가를 찍어대기 일쑤였다. 전지전능한 신이 아닌 이상, 모진 풍파를 피해 갈 방도는 없다. 방법이 있어도 없어도 그저 온몸으로 맞닥뜨렸다. 다만 쓰러지지 않으려 꺾이지 않으려 기를 쓰고 버티고 버텼을 따름이다.


습관의 씨앗은 보고 들은 내게만 뿌려진 게 아니었다. 말하고 행동하는 자신의 삶에도 놓치지 않으려 스스로에게도 뿌리며 가꿔왔다. 지금까지 살아온 게 전부 기적이고 인생 역전 드라마다. 좋은 습관을 말이 아닌 삶으로 보여준 나의 큰 바위 얼굴들이 자랑스럽고 사랑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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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달 주제는 < 습관 >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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