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켰네.
어느새 혼자 보내던 한 달의 시간이 다 됐다. 며칠만 더 기다리면 보고 싶은 가족이 돌아온다. 같이 있을 때는 그토록 나만의 시간 좀 달라고 보챘는데, 막상 혼자가 되고 보니, 온갖 핑계를 다 끌어와서 힘들다고 하소연 하기 일쑤였다.
그동안 내가 한 것은 무엇인가. 스스로에게 창피하지 않고 싶어서 적어 보지만, 이내 쓰다 곧 지우고 만다. 그래도 써서 몇 줄 남겨볼까 했지만, 구글 달력에 한 줄씩 남긴 걸 보니 이내 '일기는 일기장에'라는 말이 떠올라 그냥 혼자만 보기로 한다.
노트 건 메모 지건 손에 잡히는 대로 써재끼곤 할 때가 많다. 주로 울컥거리는 감정을 쏟아내고, 다짐을 하는 일이 잦다. 좋게 보면 반성과 자기 계발이지만, 다른 시선으로 보면, 도대체 그 '어느 날'과 '언젠가'라는 건 정말 언제 잡을 것인가 하는 한숨 가득한 푸념에 지나지 않을 때도 있다.
넷플릭스에서 스페인 인기 순위에 올라온 영화들을 보곤 한다. 넷플릭스의 작품들을 본다는 건 재미보다는 사람들의 관심사가 무엇인지 알고 싶어서 보는 경우가 많다. 학생 때 과외비로 DVD를 한 주에 한 두 편, 나중에는 트릴로지는 기본, 열 편을 하나로 묶는 시즌을 살 정도로 제법 많이 모았는데, 당시엔 영어를 잘하고 싶어서 산 거라 생각했다.
학생이라는 성인에서 아이 아빠라는 어른이 되어 20대를 돌아보니 당시 그렇게나 영화와 시트콤, 그리고 디즈니 애니메이션에 지나칠 정도로 DVD를 구입한 건 '나'라는 존재를 인정받고 싶어서였던 것 같다. 문과생으로 달리 할 줄 아는 게 없다 스스로 한계를 정하니까, 구색을 갖추기 위해 '영어 학습'을 내세워 엄청 사 모으고, 그걸 보면서 살아있는 영어공부를 한다며 스스로를 위로하며, 되든 안 되든 엄청 밀어 넣었다.
스트레스를 풀 요량으로 폭식하듯, 영어를 그렇게 파고들었고, 그 영향은 영어 강사를 하는 동안 나름의 효과를 봤다. 하지만 과하게 섭취하면 언제나 탈이 나기 마련이다. 내가 DVD를 사는 건 영어를 잘하기 위해서야, 샀으면 봐야지, 다 봤으면 또 사야지. 진지한 성찰과 나름의 이유가 없던 건 아니지만, 어느 순간 모든 소비에 지나친 의미를 부여하고 명분을 스스로 내세우며, 나약해진 나를 감추기 위해 바벨탑을 쌓았다.
그리고 영화나 드라마 속 주인공처럼, 시시각각 살벌하게 조여 오는 문제와 주위에서 끊임없이 발생하는 시기와 질투, 모함 속에서도, 어떻게든 불굴의 의지를 놓치지 않고 정면승부로 도전해서 이겨내는 자가 되겠다고 마음을 먹는다. 문제는, 그들은 즉시로 액션을 취하고, 나는 언젠가로 미룬 채 정신승리에 그친다는 점이었다.
넷플릭스의 코믹 영화 <The Man from Toronto>는 스페인에서 인기가 있다 하는데도 개인적으로 딱히 추천하고 싶은 영화가 아니다. 관객과 평론가의 평점과는 상관없이 일단 작품으로 나온다는 것 자체가 쉽지 않다는 걸 알기에, 그냥 내가 좋아하는 코미디의 결과 맞지 않는다는 정도로 생각한다. 다만, 극 중반에 시종일관 불평불만으로 충만해 쉬지 않고 입을 나불대는 캐빈 하트에게 행동으로 보여주는 과묵한 우디 해럴슨의 대사에 그만 뒤통수를 세게 얻어맞듯 충격이 가시질 않았다.
Never doing what you say you're gonna do
is what got you into this situation.
뭐든 할 거라고 말만 하고 절대 안 하기 때문에
이런 상황에 놓인 거야.
지금까지 겹겹으로 둘러싸고, 다시 테이핑으로 두르고, 그걸 다시 파묻었는데 한 순간에 모든 치부를 들키고 말았다. 아니면 아니라고 당당히 맞받아치거나, '그러라 그래'하며 무시하고 말았을 게다. 하지만, 그 말이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기에 그대로 꺼무룩 풀 죽고 만다.
코믹 영화인데 내용은 하나도 생각 안 난다. 그저 기분 나쁘지만 인정해야 하는 대사, 딱 그거 하나였다.
그래, 쿨하게 인정하자. 맞어. 나 부정 안 해. 더는 변명이고 뭐고 핑계 댈 것도 없어.
그러니 다시 시작해야겠다. Ready, Ac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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