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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페인 한량 스티브 Aug 31. 2022

스페인에선 모르는 사람과 인사해요

서방예의지국 서반아

¡HOLA! 올라


2022년 8월 기준 4679만 명이 스페인에 삽니다. 우리나라보다 약 5배 정도 큰 땅인데 인구는 500만 명 정도가 적어요. 상대적으로 인구밀도가 떨어집니다. 그렇다 해도 마드리드, 바르셀로나, 세비야와 같은 대도시에는 세계에서 몰려든 관광객들로 언제나 북새통을 이룹니다.


스페인의 수도인 마드리드에 들어와 바르셀로나로 나가기까지 스페인 일주를 한다고 가정해 볼게요. 일단 세계 어느 나라든 공항 입국 심사대에는 묘한 긴장감이 돕니다. 나름의 법규가 있겠지만, 일단 그들의 심기가 불편하다면 짐을 찾기도 전에 몇 시간이고 대기처분이 내려질 수도 있으니까요.


하지만 스페인에선 흡사 교집합으로 비죽이 입술을 내민 심사원이라 할지라도 HOLA 올라, 안녕하세요~라는 말에 금방 풀어집니다. 때론 제가 하기 전에 먼저 저에게 건네기도 해요. 예외가 없으리란 법은 없습니다만, 그래도 지금까지 공항과 항구를 드나들 때마다 기분 좋게 통과했습니다.


공항을 나와 택시를 탑니다. 맥주배 퉁퉁하니 나온 반백의 기사님이 보자마자 HOLA 하며 큰 소리로 인사를 건넵니다. 이미 열려있던 트렁크에 저의 커다란 캐리어를 당연하단 듯 본인이 받아 기술도 좋게 턱! 하고 얹습니다. 호텔 앞에 도착하자 역시나 기분 좋게 수하물을 꺼내 손잡이까지 올려주며 HASTA LUEGO, 아스따 루에고 (나중에 봐요)라는 말까지 남겨줍니다.


'아니, 언제 또 볼 줄 알고, 나중에 보자고 인사를 하지?' 하는 생각이 잠시 듭니다. 하지만 이후 매장, 까페, 식당, 공연장, 박물관 등 다니는 곳마다 헤어질 때는 열에 아홉이 그 인사말을 합니다. 듣다 보니 익숙해지고, 나도 받은 만큼 해 줘야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호텔에 돌아와 엘리베이터를 기다립니다. 나이 지긋한 노부부가 제 옆에 섭니다. 저를 보자마자 살짝 고개를 기울이며 하는 말, HOLA. 저도 대번에 올라 하며 화답합니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보니 제가 먼저 3층에서 내립니다. 문이 열리고 내리니, 어르신 왈, HASTA LUEGO라고 하며 오른팔을 잠시 들어 올립니다. 저도 같은 말로 응대합니다. HASTA LUEGO.


호텔 리셉션 직원을 제외하곤 단 한 명의 사람도 같은 자리에서 두 번도 본 적이 없습니다. 그런데도 그들은 항상 인사를 합니다. 어색하지 않냐고요? 네, 매우, 당연히, 어색합니다. 언제나 말을 시작하는 건 그들이 먼저거든요. 하지만, 그 어색함은 거의 동시에 같은 말로 받아주면서 풀리는 마법이 되기도 합니다.


왜 당신들은 모르는 사람한테 인사를 잘해요?

당최 이런 걸 질문이라고 해야 할까 고민하다가 그래도 나는 외국인이니까 뭐든 궁금할 수 있는 거지 하는 똘끼충만한 눈빛으로 아주 진지하게 물어봅니다.


네, 뭐라고요? 무슨 말씀인지 전혀 모르겠는데요.

대번에 눈을 휘둥그레 뜨며 그런 어이없는 말은 처음 들어본다는 표정을 짓습니다. 준비되지 않은 상태에서 혼자서만 진지해지면 상대에겐 황당함이 된다는 걸 뒤늦게사 알았습니다.




너무나 바쁘게 사는 게 익숙해진 나머지, 인사마저도 "안녕!" 보다 "많이 바쁘니?"를 사용하는 시대. 그리고 그걸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요즘. 처음 보는 사람과 어색해서 차라리 서로 침묵을 지키기도 합니다. 하긴, 코로나가 아직 끝나지 않은 터라 괜한 말을 한다고 속으로 핀잔을 들을지도 모르겠네요.


같은 아파트 안 엘리베이터에서 반갑게 "안녕하세요" 인사를 건넸다가 화답은커녕, 못 들은 척 앞문만 시선을 고정하거나, 휴대폰만 만지작거리거나, 심지어 기분 나쁘게 온 몸을 위아래로 반복 스캐닝을 하며 고개를 돌리는 경우도 있습니다. 초반엔 화도 나고 이해도 안 됐지만, 나중엔 어느새 외면하고 회피하는 게 익숙해졌다는 사실이 슬프게 느껴지기 조차 합니다.


하지만, 애당초 인사人事란 사람 사이의 일 모두를 아우르는 말이지요. 하여, 몇 번 만나 익숙해진 사람 못잖게 옷깃을 무수히 스치고 지나갈 모르는 사람, 처음 만나는 사람과 나와의 관계를 트는 출발점임을 생각한다면, 인사를 건네는 일은 떨떠름한 무안 속에 회피할 일만은 아닐 겁니다.


스페인에서는 처음 만나도 너무나 자연스럽게 HOLA 하며 인사하듯, 우리 역시 언제라도 반갑게 서로 '안녕', '안녕하세요' 하며 얼굴을 마주 할 겁니다. 서방예의지국 서반아西班牙의 거리에선 오늘도 한 번 보고 말 낯선 이에게 변함없이 친근하게 자신을 소개합니다. ¡HOLA!


(참고, 스페인에선 감탄을 나타내는 문장 앞에 느낌표를 뒤집은 기호인 ¡를 붙여줍니다. 상대에게 친절하게 미리 알려주는 것이지요. 오타가 아니랍니다.)

  


photo by toa heftiba,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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