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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페인 한량 스티브 Sep 22. 2022

꿈에서도 비굴했다

그저 살고 싶어서

누구였는지 얼굴의 일부분도 전혀 기억나지 않는 걸 보면 그야말로 일면식도 없는 사람이었다. 사무라이 영화나 조폭물에 나오는 검이 아닌 밀림을 헤쳐나갈 때 쓰는 마체테(벌목도)가 그의 손엔 있었다. 정글을 같이 헤쳐가는 길에 보디가드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만은 그의 칼은 나를 향해 있었다.


이유 불문하고 목숨을 내놓으라 했다. 재산 한 푼 없고, 몸뚱이 역시 건질 거 없는 사람에게 밑도 끝도 없이 목을 내놓으라니. "아니 형씨, 도대체 왜요, 거 이유나 한 번 들어봅시다." 라며 허세를 양념 삼아 대들고 싶으나 그건 모든 일이 지나간 후 키보드에서 관전평으로 두드릴 때나 가능한 일이다.


부러지기 직전까지 잔뜩 감아놓은 태엽 인형처럼 이는 턱까지 흔들 정도로 떨고,

콧물과 눈물이 에일리언 입 안에라도 들어갔다 나온 것 마냥 얼굴을 뒤덮은 데다, 

뚫린 입으로 한다는 말은 아무 말 대잔치로 본인도 무슨 말인지 모를 헛소리를 닥치는 대로 지껄였다.


정신줄을 홀라당 빼놓을 정도로 미친 듯 울며불며 기겁하는 중에도 헛소리를 쉬지 않고 쏟아 살인자의 정신을 혼미하게 만드는 이유는 딱 하나였다.


지금 죽고 싶지 않아요


호러 코믹물이라도 섞인 거 마냥 칼부림이 있을 때마다 돌고래 주파수에 맞춘 비명을 자지러지듯 질러댔다. 그렇게 미친놈이 되어 소리를 질러 대는 와중에, 몸은 매트릭스의 네오를 빙의한 듯 옷깃 하나 스치지 않고 서슬 퍼런 칼날의 끝을 요리조리 잘도 피해 다녔다. 


그러다 어찌어찌하여 그 칼자루를 내 손에 쥐었다. 전세가 뒤집힌 상황이었음에도 이미 온몸은 땀범벅에 맥이 풀리고 정신줄을 놓은 상태라 무쓸모의 상태. 칼로 위협을 가하던 상대는 팔에 깊은 부상을 입고 사라졌다.




이 모든 건 아무 논리도 개연성도 없이 다짜고짜 시작해 황당하게 사라진 이었다. 

어찌나 떨리고 두려웠던지 꿈에서 깼음에도 한동안 멍한 상태를 유지했다. 전형적인 악몽이고 흉몽이었다.

극심한 스트레스와 피로 때문에 꿈속에서조차 칼에 쫓기고 목숨을 위협받았다는 사실에 허탈했다.


한편으론 우스웠다. 그렇게 살기 힘들다면 차라리 놓아 버리지. 죽을 힘을 다해 피한 이유가 살기 위함이라 하는가. 정말 죽을 힘을 다한다면 미련 없이 세상을 등지는 게 맞는 것 아닐까.


얼른 나 자신을 직시해야 했다: 그래, 요새 상황이 많이 안 좋았지. 요새도 아니고 지난 수년 간 안 좋았지. 기쁨은 너무도 찰나에 불과했고, 그 기쁨의 댓가라 하기엔 가혹할 정도로 시간의 형벌을 받아야 했지. 다시 곡괭이 하나 들고 지도에도 없는 길을 만들어 가야 하는 갱도. 수차례 가스 라이팅에 영혼은 잠식당하고, 제대로 풀리지 않는 현실에 질식할 것 같은 상황. 그리고 그리고... 




아, 나 지금 위험한 상태구나. 그래서 글에서만이라도 더욱 밝음을 찾고 싶고, 따뜻함을 갈망했구나. 그런 글을 찾아 읽고, 나 역시 그런 글을 쓰면서 한 시간이든 세 시간이든 순백의 화면에 마주하며 내 정신을 마주하고 위로하고 싶었던 거였구나. 


마르지 않는 샘이 되고, 멈추지 않는 폭포수가 되며, 줄어들지 않는 강줄기가 되어주는 사람들.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 그리고 나를 사랑하는 사람들. 그들이 내가 살아가는 힘이며 나의 가치이다.


나의 삶은 이미 다 피어버린 민들레다.

그저 살짝만 나부끼는 바람에도 다 날아가 버리고 말 정도로 한없이 가벼운 민들레 홀씨.

그렇다 해도 그대로 끝이 아님은 날아가는 홀씨에 묻어있는 사랑 때문이다.

나를 살리고, 나를 일으키고, 나를 다시 서게 만드는 사랑. 그게 다시 피어날 것임을 안다.


꿈에서조차 삶을 위협당하는 건 아무리 열악한 현실이라 해도 결국엔 살아남고 싶어서였기 때문이다.

그러니 꿈에서조차 좀 비굴했다 해도 괜찮다. 꿈은 깨어나는 순간 더는 존재하지 않으니까.

꿈에서 누굴 만났든 그들은 깨는 순간 잊히고 말 연기니까.


'나'라는 존재는 근본도 없이 흩어지고 말 연기가 아닌 

나를 아껴주고 사랑해주는 이들의 따뜻한 마음이 묻은 홀씨가 되어 멀리 퍼져 갈 테니까.

그건 오직 사랑에 의해 시작하고 여정을 이어가며 또 다른 시작의 마침으로 영원히 남을 것이므로.



photo by saad chaudh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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