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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페인 한량 스티브 Feb 15. 2023

세상의 모든 것은 일

일이 아니면 삶도 없다

당신에게 노동이란 어떤 의미인가요?

춘프카 작가님이 화두를 던졌습니다. 노동? 구글에서 검색하면 대번에 아래의 내용이 나옵니다:


노동은 사람이 생존·생활을 위하여 특정한 대상에게 육체적·정신적으로 행하는 활동을 가리키는 사회용어이다. 인간이 생존하고 생활하기 위해서는 의식주를 위한 물자가 필요하다. ...


유럽의 정신적 근간을 이루는 기독교, 그 뿌리 성경을 찾아봐도 그들이 모시는 신부터 노동을 했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지으시던 일(work)이 일곱째 날이 이를 때에 마치니 그 지으시던 일이 다하므로 일곱째 날에 안식하시니라(rested) -창세기 2장 2절


안식은 쉼rest 또는 중단cease을 말하는 것인데, 전지전능한 신조차도 천지창조뿐 아니라 온갖 동식물에 인간마저 만드는 일까지 다 하고서 비로소 쉼을 가졌니다. 그러니 진정한 쉼은 그에 상응하는 일, 즉 노동이 있어야 의미와 가치를 가진다 할 것입니다.


흥미롭게도 저의 노동은 남들이 쉬고 놀러 오는 걸 돕는 니다. 달리 보남들처럼 놀고 먹는 게 일이자 노동이라고도 볼 수 있지요. 세상 사람들 좋다 하는 곳을 다니며 눈호강을 하고, 미슐랭 식당을 드나들며 입이 호사를 누리는가 하면, 유네스코 문화유산에 오른 세계적인 공연을 보고 들으며 오감이 만족하니까요. 저는 그야말로 놀고 먹는 한량입니다. 암요, 이는 부인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그러나 그저 놀고 먹는 걸로 끝나면 정말 제 커리어는 거기서 끝나겠지요. 저보다도 더 치열하게 삶을 살아온 분들에게 보상의 시간을 드리는 일이 저의 업이기에 저는 최선을 다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가이드는 아침에도 보고 점심 먹고 팀을 보내고 나면, 오후에 다시 새로운 팀을 받아 또 볼 정도로 유명하고 위대한 건축물과 작품을 밥먹듯 일상으로 마주하지만, 그 분에게는 어쩌면 평생에 한 번, 어렵게 어렵게 마련한 자리이니까요.


게다가 혼자가 아닌 부부 또는 가족과 같이 온 분들을 볼 때면, 그들의 삶의 무게마저 크게 느낄 정도입니다. 서울에서 제주도만 다녀와도 만만찮은 비용이 들어가는데, 만 킬로미, 경유해서 오는 경우 무려 24시간 남짓 걸려 온 이국의 땅 스페인. 이베리아 반도에 사랑하는 이를 데리고 온다는 건 시작부터가 값으로 매기기 어려운 사랑과 관심의 표현입니다. 어찌보면 저는 남들이 다 차려놓은 밥상에 숟가락만 얹는 것일지도 모릅니다.


가이드는 서로 상이한 언어부터 시작해 역사, 건축, 회화, 문학, 음악, 음식, 습, 축제 등 문화 전반에 걸쳐 그 민족이 걸어온 발자취 따라가며 현대와 이어주는 가교의 역할을 하는 것이기에, 어느 하나 깊게 파기 보다는 다소 얇더라도 전반적으로 두루 알고 연결는 기술 필요합니다. 이미 잘 아는 것에 대해서는 새로운 시각으로 볼 안목을 키워주고, 처음 접하는 것이라면 흥미를 이끌어내는 테크닉도 갖춰야 하고요.


그뿐인가요. 데이터나 기계가 아닌 최전선에서 면대면으로 사람을 상대하는 일이기에, 사람 자체에 대한 관심과 사랑을 밑바탕에 두고 있지 않는다면, 가이드라는 직업은 그야말로 세상에서 제일 불운한 삶 중 하나가 될 겁니다. 가족을 떠나 몇날 며칠을 오로지 처음보는 분들과 보내야 하죠. 고달프고 외로운 일입니다. 손님의 부름이라면 힘들어도 웃는 낯으로 대해야 하고요. 감정노동의 최전방에 있는 서비스직입니다.


웃으며 응대 하는 걸로만 끝나지 않죠. 전문성과 해박한 지식이며 교양과 에티켓도 갖추고 이를 끊임없이 알려드려야 합니다. 버스에서건 입장지에서건 그 두 사이를 오가는 거리에서건 마이크를 잡 끊임없이 설명하고 전달하는 강사 역할도 있습니다. 호텔 도착 후 일과 시간 마쳤다 해도 질문이나 요청이 있다면 달려가 해결하는 것 또한 잊어서는 안 되고요.


그러나 감사하게도 저는 같은 건물, 동일한 작품을 수없이 봐도 질리지 않으며, 비슷한 루트에 일정한 패턴으로 반복하더라도 권태감이 없습니다. 무엇보다도 사람을 좋아하고 만나는 걸 즐거워 하는 인간 댕댕이다 보니 제 성격과 체질에 이보다 더 좋은 직업이자 노동은 없습니다, 제가 알고 있는 한 말이지요.




한편 남편이자 아빠인 제가 밖에서 흥야라 뎅야라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좋아하는 동안, 아내는 홀로 세 아이를 돌보며 자신의 모든 시간과 노동을 자식에게 아낌없이 쏟아붓습니다. 만나는 손님들마다 얘길 합니다: 애 셋 키우는 거 정말 힘들텐데, 어떻게 하세요. 대단하시네요. 그럼 저도 얘기하죠: 그러게요, 어쩌다 애 셋을 낳아서, 참...


그러다 번뜩 현타가 찾아옵니다: 아니, 그 애 셋을 누가 다 키웠지?


두 말 할 것도 없이 아내의 공입니다. 소셜 미디어에 간간히 올리는 아이들 사진, 그 표정을 보는 분들은 입을 모아 얘기합니다: 아이들 표정이 정말 밝아요. 어머, 어쩜 아이들 표정이 이렇게 살아 있나요.


육아와 가사라는 노동은 장소와 시간의 범주를 넘어서는 일입니다. 독립해 나갈 때까지 해도해도 끝이 없죠. 아내가 묵묵히 수고해 주기에 밖에서 즐겁게 일할 수 있습니다. 아내가 돌보는 아이들도 각자의 영역에서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봐야 할 겁니다. 하여, 인간으로 태어난 이상 이 상을 떠까지 노동은 우리의 모든 삶을 지배하는 가장 큰 명제가 됩니다. 각각 시기에 따라 공부, 육아, 가사, 업무 등 다양한 옷을 입고 있는 것일 뿐이겠지요.


그래서일까요. 고대 로마의 작가인 베르길리우스는 다음과 같이 언급했습니다:


노동은 모든 것을 정복한다


모든 것을 정복하는 노동 또한 내가 이 땅에 있기에 가능한 일입니다. 내가 없으면 아무 의미가 없잖아요. 오늘 하루도 변함없이 열심히, 근면 성실하게, 최선을 다해 살아온 모든 브런치 구독자분들과 작가님들의 삶을 멀리 스페인에서 응원합니다.




글쓰기로 우주정복을 꿈꾸는 브런치 작가들이 모여 팀라이트가 되었습니다. 이 달에는 순차적으로 앞선 작가님이 지정한 문장을 포함하여 글을 이어가는 글쓰기 릴레이를 진행 중입니다. 제가 받은 문장은 <당신에게 노동이란 어떤 의미인가요?> 입니다. 그리고 제가 다음 작가님게 드릴 문장은 <내가 없으면 아무 의미가 없잖아요>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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