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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모다 Feb 19. 2023

눈물 젖은 샌드위치

섬이 섬에게 내미는 손

   

어쩌다 시작하게 된 기간제 교사로서의 계약기간 9개월이 끝났다. 야 해방이다! 뒤로 돌아보고 싶지 않을 정도로 진흙탕 같았던 시간이기도 하지만, 진흙 속에 발견하는 진주도 있는 법. 인간만사가 정말 그렇다. 시도하지 않으면 실패도 없듯이 뭐라도 하다 보면 좌충우돌하면서 얻는 게 있다. 힘들수록 아플수록 결실은 아름답다. 진주가 탄생하는 과정과 꼭 닮았다.  

    

누가 시킨 것도 아니지만 내가 내 발로 뛰어다니며 찾아 나선 것도 아니지만 우연한 기회에 문이 열렸고 나는 그 문 속으로 들어갔다. 어떤 일이 벌어질지도 모른 채. 해가 뉘엿뉘엿 넘어가는 황혼 때에 해당하는 내가, 직장을 그만둔 지 오래된 내가 다시 그 치열한 전쟁터로 들어갔다. 무식하면 용감해!     

  

시작하기 전부터, 시작하면서 그리고 중간중간, 끝날 때까지 겪어보지도 못했던 많은 사고들을 접했다. 그만두지도 못하고 계속하기도 힘든 상황에서 마치 백척간두 칼날 위에 서 있는 듯한 심정일 때가 얼마나 많았던지! 구경꾼 입장에서는 스릴만점이다. 당사자는 어떠할까?      


요즘 학교 그것도 담임업무는 거의 젊은 교사들로 구성되어 있다. 담임을 맡지 않는 교사는 주로 일반 기업으로 치면 임원급에 해당하는 보직교사와, 업무의 기획, 기획 보조 같은 업무자체를 위한 기량을 갖춘 교사들, 그리고 연령이 높은 교사들 정도이다. 해서 일반적으로 젊은 그리고 기간제 교사들은 학교업무의 최전선 담임업무를 맡게 된다. 하필 나는 고령(상대적으로 직장 내에서 내 위치가 그랬다.) 임에도 불구하고 말단 기간제교사로서 담임업무를 피할 수 없게 되었다. 한마디로 역부족이었다. 학교가 돌아가는 시스템도 이전과 달리 인터넷 기반으로 바뀌었고 오프 보다 온으로 대면보다 비대면이 주를 이룬다. 게다 학생들은 21세기 코로나시대의 아이들이다. 신인류이다. 대화가 통하기 힘들다. 내가 느끼는 충격은 이만저만하지 않다.   

   

생활기록부를 작성하는 일이 내게는 버거웠다. 나이스프로그램에 따라 항목별로 요구되는 사항들을 입력하고 오류방지를 위해 몇 차례의 교차 점검을 한 후 교육청의 인가를 얻게 되는 과정은 아주 치밀하게 진행된다. 모든 것이 이전의 오프세대와는 달라진 풍속도 속에서 우왕좌왕하던 나는 입력 마감을 앞두고 퇴근을 하지 못하고 남아 고전하고 있었다. 나는 다시 일을 하면서 교사들에 대한 존경을 금할 수 없다. 설렁설렁할 수가 없을 정도로 담임교사들의 업무는 살인적이다. 옆 사람 쳐다볼 겨를 없이 다들 자기 업무에 집중한다. 수업, 담임학급의 업무, 행정처리가 필요한 일들을 일과 중에 다 처리하고 퇴근하려면 쉴 틈이 없다. 그런 상황에 한가하게 누군가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것도 한두 번이지... 어떻게든 혼자 해보려 끙끙대니 시간은 몇 배로 더 소요되었다. 저녁도 먹지 못하고 진행되지 않는 일 앞에 망연히 앉아 있는데 늘 가장 늦게 퇴근하시는 부장 선생님이 내게 슬며시 샌드위치를 건네신다. 


저녁 못 드셨죠? 이거 드세요. 



이분은 이후에도 직접 나가서 만두를 사 오시기도 하고 음료를 한 박스 사가지고 교사들에게 하나하나 힘내라는 차원에서 나누어주기도 하셨다. 그러니까 엄마 같은 분이다. 어디나 이런 분이 있어서 세상은 정말 살만하다는 이야기를 하고 있는 셈이다.      


일단 일을 어느 정도 마무리하고 나니 혼자 교무실에 남았다. 밖은 어두웠고 나는 밤길을 고속도로를 운전해서 귀가해야 한다. 일에 치여 배고플 틈도 없었는데 집에 가려니 그때야 허기가 올라온다. 주신 샌드위치와 커피를 먹는데 아.... 결코 잊을 수 없는 맛이다. 처량한데 마음이 따뜻해진다. 삭막한 현대사회에서 느끼는 고독감을 우리는 섬에 비유하기도 한다. 그랬다. 나는 학교 안에서 철저하게 외딴섬이었다. 연령도 다르고 공감대도 떨어지고 중간에 들어가 적응하기도 힘들고 학생들은 신인류이고 그 무엇 하나 내게 익숙한 것이 없는 상황. 저기 외딴곳에 두둥 떠 있는, 바람 불면 휘이익 사라질 것 같기도 한 작은 섬에 옆의 섬 하나가 손짓을 한다. 마음으로 울며 샌드위치를 먹었다. 


샌드위치 선생님이 다른 학교로 전출을 가신다. 오늘 환송식이 있는 날이다. 새 학년 시작하기 전에 학교는  떠나고 새로 오고 업무 인수인계하는 작업으로 분주하다. 공립학교는 일정한 기간 근무하고 다른 근무지로 옮긴다. 요즘에는 기간제 교사가 많아 자신의 계약기간이 종료되면 다시 재임용되거나 다른 곳으로 또 임용되어 이동한다. 이동인원이 거의 30여 명.. 어마무시하다. 샌드위치 선생님을 볼 때마다 엄마 생각이 난다. 늘 엄마 같았으니까. 떠나시는 마지막 날 일일이 학년 담임들에게 손수 포장한 작은 선물을 책상에 올려놓으셨다. 이분 끝까지...   

    

사는 게 다들 뭐 그리 바쁜지 이렇게 헤어지면 다시 만날 기약도 없고 뒷북처럼 가지고 있던 엽서에 몇 자 적었다. 그리고 성의 없지만 방법이 없어 커피 쿠폰을 톡으로 보내드렸다.    

  

“선생님 덕분에 힘든 시간 버틸 수 있었어요. 함께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      


잊을 수 없는 샌드위치! 영혼 없는 찬사, 감사, 격려가 난무하는 요즘 모처럼 기분 좋은 촉촉한 감정을 선물했던 샌드위치! 9개월의 기간 중 가장 기억에 남는 몇 안 되는 순간 중의 하나였던 샌드위치! 

 

늘 누군가에게 호의를 베풀 수는 없다. 사람이란 동물은 그게 안된다. 그래서 나는 천사 같은 사람에게 별 매력을 못 느낀다. 저 사람의 진심이 어디까지인가 하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그러나 어느 특별한 순간에 진짜 천사를 만나면 마음이 흔들린다.     

  

눈물 젖은 샌드위치를 먹으며 나는 누군가에게 진짜 천사가 되어 준 적이 있는지 곰곰이 생각해 본다. 선행을 가치 있는 덕목으로 배우고 자랐기에 어떻게 보면 습관이 되어 버리기도 했다. 그러다 선행 자체가 나의 만족과 기쁨이 되어 버리는 경우가 많았다. 내가 생각하는 선행이라는 것이 과연 상대에게 진짜 기쁨이 되었을까? 되짚어 보니 잘 모르겠다. 상대가 원하지도 않는데 선행 입네 하며 돕는 손길이 때로는 부담이 되지는 않는지 모르겠다. 내 만족을 위한 도움이 아닌 상대를 위한 순수한 도움. 아무 색깔도 없는 그런 도움을 줄 수 있으면 좋겠다. 


그래서, 부끄럽다. 



           

글쓰기로 우주정복을 꿈꾸는 브런치 작가들이 모여 팀라이트가 되었습니다.
이 달에는 순차적으로 앞선 작가님이 지정한 문장을 포함하여 글을 이어가는 글쓰기 릴레이를 진행 중입니다. 제가 지정한 문구는 <상대를 위한 순수한 도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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