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 자체가 시트콤인데
여성 손님들과 진지함과 가벼움 속에 하하호호 웃으며 시간 가는 줄 모른 채 대화 또는 수다를 나눴다. 신호가 오기에 양해를 구하고 화장실에 갔다. 볼일을 마치고 손을 씻으며 습관적으로 거울을 보며 씩 웃었다. 세상에나 네상에나. 닭고기가 앞니 사이에서, 시금치는 잇몸 속에서 생존신고를 하고 있는 게 아닌가.
마른 몸을 잡아주는 정장, 분위기 연출에 탁월한 스카프, 적절한 제스처 속에 스토리텔링으로 전달하는 감동의 포인트. 설명할 때마다 손님들은 노혼혼 인형이 되어 연신 끄덕이고 벌린 입들 다물지 못하며 마지막 작품을 마칠 때면 입을 모아 이제껏 다녀간 여행과는 차원이 다르다는 찬사를 건넨다. '오늘도 성공했군' 하는 회심의 미소를 띠며 쉬는 시간 화장실에 가서 일을 보려는데, 더헛! 내려야 할 지퍼가 이미 내려가 있었다!
한껏 설명에 열을 올리며 '카타르시스'라고 해야 할 타이밍에 '카리스마'라는 단어가 튀어나오고, 선글라스를 뒤로 쓰고서는 손님들에게 "제 선글라스 보신 분?" 하고 물어본다. 손님들에게는 수신기 챙기라 몇 번이고 신신당부하고서 정작 가이드인 본인은 송신기를 안 챙겨서 내리는 바람에 출발하는 버스로 미친 듯 달음박질 한 덕에 본의 아니게 큰 웃음 한 번 선사한다.
클라이막스에 올라야 할 피아노 연주에서 느닷없이 생뚱맞은 건반을 건드려 황당한 불협화음을 내는가 하면, 분위기에 있게 마실 커피에 설탕이 아닌 소금을 탄 적도 있다. 타인의 글에서 오타와 비문은 귀신같이 잡아내면서 정작 본인이 발행한 글에선 맞춤법은 고사하고, 중복 문장부터 쓰다만 글까지 그야말로 괴발개발 난리도 아니었다.
앞으로는 꾸준히 글을 쓰겠노라고 다짐하고 잔뜩 구독자분들에게 기대치를 올려놓으며 브런치와 인스타에 공표하지만... 다음 글을 쓰기까지 한 달이 넘게 걸린 적도 한두 번이 아닌지라 이제는 도저히 미안하다고, 죄송하다고 말할 실오라기만 한 용기도 남아있지 않다. 그냥 아무 말도 않고 중간이라도 가자는 게 생존전략이 되어버렸다. 쪽팔림을 넘어서 수치심도 모르고 양심도 없는 인간이 되어버렸다.
실수, 민폐, 대참사 등 도대체 경계가 어디서부터 어디인지 모를 필드에서 분주히 돌아다녔다. 창피, 쪽팔림, 민망함 등 정의 내리기 애매모호한 영역에서 동시다발적으로 감정의 파도타기를 하며 엎어지고 자빠지는 일 천지였다. 피치 못할 상황이 아닌, 다른 누구도 아닌 바로 나 자신이 만든 참담한 결과물 앞에 나 자신은 정말 연기처럼 사라졌으면 좋겠다 싶은 때가 한두 번이 아니었다.
그러나 나이가 들면 들수록 쪽팔림이란 타인에게 비치는 나의 실수가 아니다. 그건 그나마 순간의 쪽팔림이지만 영원한 추억으로 남을 수 있기에 웃어볼 여지가 있다. 짝퉁 쪽팔림이 아닌 진퉁 쪽팔림은 남이 아닌 나에게 있다.
내가 지금껏 아는 게 다였고, 최고였다며 자만과 오만에 빠져있을 때 ㅡ 실은 본인이 우물 안 개구리인 줄도 본인은 모른다. 원래가 병신은 본인이 병신인 줄 모르기에 계속 병신으로 남아 있는 것이므로 ㅡ 그 레벨을 가뿐히 뛰어넘는 고수, 전문가, 마스터가 제대로 내 뚝배기를 깨는 순간, 얼굴에서 느껴지는 홧홧거림은 어느 누구에게도 고백 못할 일기장의 한 줄이 된다.
코로나로 하고 싶어도 못했던 일을 원 없이 보상받고 있는 요즘, 물 들어올 때 제대로 노 젓고 있다는 생각이 밀려드는 요즘, 업계에 발을 들여놓은 시기로도 한창 물이 올라가는 요즘, 이 정도면 나도 어디 가서 부끄럽진 않지 라는 생각에 어깨뽕이 자신도 모르게 올라가려는 요즘, 고수의 글에서, 전문가의 영상에서, 대표와의 대화에서 본인의 일천한 실력과 임기응변식 대응책이 제대로 까발려지고 있다. 일기장에 적을 한 줄, 두 줄의 후회는 한 장, 두 장의 반성문이 되고 있다.
지금껏 내 인생에서 쪽팔리지 않은 순간은 없었다. 앞으로도 쪽팔림은 인생의 영원한 껌딱지이자 동반자가 되어 있을 테지. 쪽팔렸던 모든 순간은 미워하려야 미워할 수가 없다. 덕분에 어제보다 조금이라도 나은 나이자, 발전하는 자아, 성장하는 자신으로 키워주었기 때문이다. 화끈거리는 얼굴과 후끈 달아오른 뒤통수 덕에 마음을 다잡는다. 악착같이 도전하고 노력하게 만들어 준 원동력, 다름 아닌 쪽팔림이 빚어낸 순간에 있었음을 인정한다.
그래도 이제는 좀 줄이고 싶고, 할 수만 있으면 멀리하고 싶다.
사진: krakenimages from unsplash
글쓰기로 우주정복을 꿈꾸는 브런치 작가들이 모여 팀라이트가 되었습니다. 팀라이트 매거진에는 매월 한 가지 주제를 선정하여 각양각색 이야기를 작가님들의 다른 시선과 색깔로 담아 갑니다. 이번 달 주제는 < 살면서 가장 쪽팔렸던 순간 >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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