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콕하는 아빠의 하루
매일 아침 8시. 알람이 울린다. 아침형 인간형에서 한참 벗어난 시간이다. 아빠는 그제야 일어난다. 아침 6시, 7시 기상도 시도해 보았지만, 겨우내 일출 시간은 8시 30분 전후여서, 일어나도 밖은 여전히 밤인 것만 같아 다시 자고 말았다. 맞다, 전부 핑계다. 마음 먹으면 새벽 4시 반에 박차고 일어나 새벽기도도 가능하(던 때가 있었)다. 그러나 하던 일을 코로나로 손에서 놓고 보니 새벽 4시 반은 기상이 아닌 취침시간이 되는 경우가 흔했다. 일부러 밤을 샌게 아니다. 어떻게 살다 보니 그렇게 흘러갔다.
기실 뒤를 돌아보니 늦게 자는 게 그간의 삶에서 별로 부자연스러웠던 적이 없었다. 분명 나름 뼈대 있는 가문의 양반집 후손인데 학창시절부터 지금까지 수면 패턴을 보면 늦게 자는게 몸에 배어있다. 늦게까지 쓸고 닦으며 일하다가 아무데서나 머리 닿는대로 잠을 자는 머슴의 유전인자라도 가지고 있는 것일까. 아, 그럴려면 늦게 자고 일찍 일어나야 하는데, 다행히 나는 늦게 자는 만큼 늦게 일어나는 걸 보면 그건 아닌거 같다.
학창시절엔 과제 제출 앞두고 학교 후문 근처 동아리 형들이 자취하며 사는 곳에서 밤을 새고 다음날 수업에 갔던 경험이 꽤 잦았다. 학원 영어 강사 시절 역시 밤 늦게 수업과 자습 감독을 마치고 나면 친한 선생님들과 24시간 해장국집에 가서 숯불구이에 갈비탕까지 거하게 먹고 아침 출근 시간에 귀가하곤 했다. 오전 취침, 오후 일과, 새벽 귀가. 수 년 간 몸에 익은 습관이었다.
해외에서 직장을 다니던 기간에는 패턴이 조금 바뀌었다. 슬로바키아의 경우 아침 6시 45분 출근 승합차를 타기 위해 몇 시에 자건 기상 시간은 언제나 새벽 6시였다. 그곳의 출근 기억은 언제나 가로등 환한 밤이었다. 그 때는 퇴근이 늦을 땐 거의 다 같이 늦는 분위기였다. 군대마저 카투사를 나온 자로서 단체 보다는 개인 생활에 익숙했던 내게 슬로바키아의 직장 생활은 전우, 아니 동료애를 진하게 느끼게 해 준 시간이었다.
스페인에 온 후로는 팀 체제로 갔는데, 의외의 복병은 스페인의 저녁 식사시간이었다. 스페인에 다녀간 분들은 알겠지만, 관광지가 아닌 일반 주택가의 식당은 보통 밤 9시에서야 문을 연다. 8시나 8시 반에 문을 여는 곳도 있지만, 그건 식사가 아닌 안주거리 정도 되는 간단한 타파스tapas 정도만 제공하는 거였다. 오후 1시에 점심을 먹고 나면, 저녁을 밤 9시가 넘어서야 먹었다. 일하다 보면 건너 뛰는 경우도 다반사였다. 결국 나중에는 전체 도시락을 시켜 먹기도 했지만, 지금 돌이켜 봐도 어떻게 살아 남았던 것인지 풀리지 않는 미스테리이다.
정글과 같은 직장 생활을 뒤로 하고 찾은 천직 가이드 업은 먹는 것도, 일하는 것도, 쉬는 것도 전부 다 좋았다. 삼시 세끼 다 챙겨 먹었다. 챙겨 먹을 수 밖에 없었다. 말을 워낙 많이 해서 살찔 틈이 없었던 것 뿐이지 규칙적인 기상과 식사 시간이 보장되어 있는 환경 아래에서 세상 좋은 것만을 보고 다니니 정신적으로도 풍요로워졌다.
그러다 코로나를 맞이했다. 일하던 일상이 이상해졌다. 그리고 이상한 일과는 어느새 일상이 되었다.
아침 8시. 늦긴 하지만 알람 소리에 두 번 뒤척임도 없이 일어난다. 일을 보고 이를 닦으며 기분 좋게 주방으로 간다. 빵을 꺼내 토스트를 하고, 준비한 빵 종류에 따라 올리브 오일에 발사믹 식초를 마련하거나 버터에 잼을 발라 접시에 차려둔다. 곧이어 방에서 이불을 개고, 교복을 입으며 부산을 떤 아이들이 주방 식탁으로 와 아침 식사를 한다. 애들도 나와 일어나는 시간에 별 차이가 없다. 7시로 몇 번 해 보았으나 경험상 8시에 일어나도 아침을 먹고 가는데 지장이 없다는 것을 알게 된 이상 8시 기상이 아직까지는 대세이다.
유치원생인 막내와 초등학교 4학년인 둘째 녀석이 집에서 나서는 시간은 8시 35분. 중1인 첫째는 그보다 십 분 여유가 있다. 그렇게 아이들을 보내고 오전 9시부터 12시 반까지 3시간 반의 시간. 아내와 나만의 시간이다. 이런 때 글을 쓰면 얼마나 낭만 있어 보이겠느냐만, 현실은 아침 먹으며 얘기 나누는데 쓰는 한시간을 제외하고 나면 이후 아이들이 남기고 간 빨래부터 시작해 청소, 걸레질, 장보기. 이렇게 하고 나면 한 시간 정도 밖에 안 남는다. 그 한 시간이 바깥 세상과 전화와 소셜 미디어로 작심하고 연결될 수 있는 유일한 통로다.
이후에는 집에 와서 점심 먹는 아이들을 위해 학교로 가서 데리고 온다. 학교까지 도보로 불과 10분이라는 건 큰 축복이다. 왔다갔다 낭비하는 시간이기도 하지만, 나름 산책의 효과도 되고 때론 잠깐의 통화도 가능하기 때문이다. 점심은 언제나 그 날 장 본 것으로 신선한 식단 덕에 일상의 무료함과 피곤함이 잠시나마 잊혀지는 때이다.
점심을 먹고 다시 학교에 데려다 주면 한 시간 반 정도 남지만 아직까지 이 시간을 제대로 집중해서 써 본 적이 없다. 빨래를 개고, 학교 통지서 확인하고, 소셜 미디어에 댓글 두 세개 달다 보면 금방 시간이 지난다. 가끔 누군가를 만나기로 하면 그렇게 좋을 수가 없다. 아내의 외출 기분이 이런 거구나 바로 현타가 온다. 다시 학교로 가서 애들을 데리고 온다. 욕실이 하나 뿐이라 언제나 누가 먼저 하느냐, 때로는 나중에 하느냐로 아이들 간에 입씨름이 오가지만 그것과 상관 없이 언제나 막내를 샤워 시키고, 몸을 닦고, 머리를 말리고, 로션을 발라준다. 그 사이 아내가 차린 저녁을 먹는다.
저녁 시간은 아이들의 피아노 렛슨과 숙제 확인, 단원평가 시험준비, 그리고 막내 책 읽어주기로 시간이 간다. 그렇게 마치고 나면 밤 9시 전후가 된다. 아이들은 한번에 자리에 눕지 않는다. 그 전부터 자다가 밤 10시 넘어 깨서 찾아오는 막내, 늘 잠이 잘 안 온다며 꿍얼대는 둘째, 숙제와 시험 준비, 그도 아니면 책 보느라 밤 11시고 자정이고 자주 깨어 있는 첫째. 늘 셋의 조합은 따로 또 같이로 돌아가며 진을 빼게 만든다.
별로 하는게 없는데도 하루가, 한달이, 작년 한 해가 이렇게 지나갔다. 그나마 이런 패턴이 자리잡힌 것도 그리 오래 되지 않았다. 눈에 띄는 성과도 없고 (아이들 성적에 만족할 때도 있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아이들 것이지 내 일이 아니다), 성취감도 덜하고 (빨래 널고 갤 때마다 개운한 기분은 있지만 그래도 예전 일하던 바에 비할 수는 없는 일이다). 별 일이 없는데도 일 있는 거 이상으로 그렇게 가 버린다.
오늘 내 유튜브 채널에 알고 지내는 가이드 선생님께서 '이러나 저러나 제 시간 찾기가 힘들다며, 진짜로 자기가 하고 싶은 것은 못하고 소일거리만 하는 듯 하다'는 댓글을 남겨 주셨다. 그 분은 인스타에서 무려 4천의 팔로워를 거느리며 라이브 투어도 하는 분인데도 자기가 하고 싶은 걸 못한다 하시니... 규모가 다를 뿐 코로나로 힘들어하는 건 비슷하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새벽 늦게 자다 최근 들어와서는 그래도 새벽 1-2시 사이에 잠들려고 한다. 누워서도 여전히 '이런 상태라면 무소유 수필 한 권은 너끈히 읽을 수 있어.' 하면서도 더는 얼굴 피부 상태 때문에 억지로라도 잠을 청한다. 간간히 그럴 바에야 그냥 한국 들어가는게 낫지 않겠냐 라는 얘기를 걱정 어린 질문과 얘기를 듣곤 한다. 때가 아니어서 기다릴 뿐이다. 다만 그런 때가 올 즈음이면 아마도 다시 내 일을 시작하게 되지 않을까 한다. 내일도 오전 8시 기상이 이어질 것이다. 집콕아빠인 나에게 하루를 시작하기에는 더 없이 좋은 일상의 출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