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리만족의 극치
영화는 내가 경험할 수 없는 (실은 굳이 경험하고 싶지도 않은) 세상으로 나를 안내한다.
멋진 배경 속에 주인공이 떠나는 환상과 모험의 세계를 동경하던 순수했던 소년은
어느새 배우들의 몸값과 촬영 예산에 주판알을 튕기는 계산적인 아재가 되었지만,
여전히 영화관에서 큼지막한 화면에 눈을 붙일 때만큼은 몰입에 몰입을 거듭하며 감탄한다.
감탄을 연발해서인지는 몰라도, 내용에 대한 이해도가 현저히 낮다.
같이 보는 아내에게 몇 번이고 물어봐서 보다 못한 아내가 그냥 따로 보는 게 낫겠다 싶을 정도이니 말 다한 셈이다. 그래서 영화 보러 갈 때면 남들은 일부러 피한다는 스포일러가 내게는 오히려 약이 된다.
누군가의 활자를 읽는다는 건 내 머리에서 다시 재조립을 하는 작업이다. 글에서 시간에 흐름을 따라 장면을 바꿔가며, 주인공들의 대화를 엿듣고, 추리 작업을 하며 공감 속에 육두문자가 나오기도 하고, 쾌감을 느끼기도 하며, 시나브로 눈 가장자리를 자꾸 꾹꾹 누르며 닦아 내리기도 한다.
그래서 글을 읽는 건 간접 경험이라기보다 직접 경험에 가깝다.
영화를 보기 전 사전 작업을 착실히 다져놓는 건 긴장감을 지우는 김 빠진 일이 아니라 대리만족을 확실히 하기 위한 고도의 치밀한 계획이다. (본인의 이해도가 낮으니 어쩔 수 없다는 걸 이렇게라도 포장해 본다.)
10인치의 작은 태블릿 화면으로만 영화를 보다 올여름휴가 때 막내딸과 방문한 영화관에서 4DX라는 세계를 처음으로 경험했다. 아이는 영화 보는 내내 흥분을 넘어 거의 광분하다시피 했다.
들썩이는 의자, 번쩍이는 조명, 뿜어 나오는 드라이아이스, 사방에서 튀는 물.
영화 자체는 평점과 평가 모두 악평뿐인 메갈로돈 2였지만, 딸아이에겐 남들의 평판은 중요치 않았다.
상어와 돌고래를 좋아하는 아이의 관심사는 실존하지도 않는 메갈로돈과 공룡에까지 뻗힌 터라 가기 전부터 메갈로돈 노래를 불러댔다. 아이의 메갈로돈 사랑은 가기 전뿐만 아니라 영화관까지 가는 중에도, 가서 티켓과 팝콘을 사는 중에도 이어졌다.
시작 전부터 빌드업을 확실히 했으니, 보는 동안 아이의 리액션은 난리도 그런 난리가 없었다. 잠시도 엉덩이를 가만 놔두지 않는 영화관의 시설 덕에 우와아 으아악을 고속 연사촬영 하듯 남발해 봤지만, 일곱 살 난 막내의 진심 어린 리액션에 비할 바가 아니다.
딸은 집에 와서도 할아버지 할머니를 붙들고 아직 가시지 않은 열기를 전하고,
며칠씩 지나 만난 누구에게도 그날 그때의 생생한 현장을 전하느라 바빴다.
어른들의 눈에 혹평으로 가득했던 메갈로돈 2는 딸과 4DX를 통해 화려한 부활을 한 셈이다.
대리만족을 극대화하려고 간 영화관에서 아빠가 느끼려던 대리만족이라는 건, 어쩌면 자신을 투사시켜 보려 한 영화 속의 주연배우가 아니라, 자신이 키우고 있는 자식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처음으로 해 보았다. 그 생각은 순식간에 불혹의 아재인 본인을 수십 년 전으로 되돌려 놓아 할아버지가 된 아버지를 떠올려 보게 했다.
#글루틴 #팀라이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