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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페인 한량 스티브 Sep 04. 2023

어느 계절을 좋아하세요

당신과 함께 하면야 다 좋지요

8월 한 달간 고국인 한국에서 휴가차 다녀갔습니다.

작년에 이어 올해도 방문했지요. 

횟수로는 겨우 두 번 뿐인데도, 한 번 갈 때 한 달 이상의 시간을 써서 그런지, 

뭐랄까, 한국을 다 안다는 느낌을 받습니다.

응? 써놓고 보니 좀 웃기네요. 


ㅡ아니, 아무리 외국에 오래 살아도 그렇지, 지가 한국 사람이지, 뭐 코쟁이라도 된다는거여 뭐여? 외국에서 태어난 것도 아니고 여그서 태어나 대학까지 졸업하고선, 외국물 좀 먹었다고 뭔 한국을 안다 모른다혀, 아니지, 그런 느낌을 받네 마네 하는 것이여, 시방, 시작부터 밥맛이여 아주, 어휴... 


네, 맞아요, 그렇네요, 아이구 세상에.




고국을 안다는 느낌에 대해 다시 얘기를 해볼게요.


사회적 동물인 인간은 어디를 가든 그곳 환경에 적응할 테니, 

일단 한번 적응하고 나면, 다시 같은 곳을 가더라도 전과는 다른 시각과 느낌을 갖지 않을까요?

초등학교 때는 책상도 크고, 계단도 높다고 느꼈는데, 어느새 초등학생 자녀를 둔 학부모가 되어 학교를 가보니 걸리버라도 된 것 같은 느낌 말이에요.


사악하리만치 뜨겁고 건조한 스페인의 여름을 열 차례 이상 겪고 보니, 기온에선 스페인보다 낮아도 습도가 네다섯 배는 높은 한국의 여름을 보내면서 건물 밖으로 나가기만 하면 '어휴, 힘들다, 죽겠다'를 밥 먹듯이 해대며 여기서 대체 어떻게 버텼던 걸까 물음표가 달립니다. 어렸을 땐 에어컨도 없었는데 정말 무슨 수로 한여름을 보낸 건지, 무탈하게 잘 키워주신 부모님께 다시금 감사하게 됩니다.


가마솥 찜통더위의 한국 여름을 힘들게 보내서일까요. 가을에 들어선다는 입추立秋와 더위를 처분한다는 처서處暑를 지나고 나니 정말 아침저녁으로 가을인 게 실감이 납니다. 스치는 바람에 읏추읏추 춥다며 옷깃 한 번 더 여밉니다. 추운데도 기분이 좋지요. 쌀쌀한 가을을 제대로 받아들이고픈 바램. 하지만 현실은 코끝에서만 살짝 느끼고 떠나야 해요. 스페인 남부 세비야는 여전히 낮 최고 기온 35도이기에 아쉬움이 더욱 큽니다.




저는 생일이 가을이에요. 그것도 우리나라 가을의 정점인 추석이랍니다. 음력이 아닌 양력으로 생일을 쇠고 있지만, 그래도 항상 한가위가 다가오면 기분이 그렇게 좋을 수가 없어요.

(ㅡ안물안궁인디 개인사를 자꾸 그리 해싸소. ㅡ네, 그만할게요.)


여름에 힘들었던 만큼 다가오는 가을은 더 반갑고 기다려집니다.


앙칼진 겨울 힘겹게 버티고 나서 새로 한 해를 시작하는 봄보다,

폭염과 잦은 장마로 지칠 대로 지친 여름을 지나 울긋불긋한 단풍 물결 속에

바람 부는 대로 넘실넘실 황금물결 일렁이는 논을 보는 가을이 

안 먹어도 배가 불러요. 가진 게 적어도 풍요로움이 무엇인지를 느끼게 합니다.


그건 가을이 주는 선물이지요. 요즘은 가을이 워낙 짧아진 탓에 그 선물이 더 귀하게 다가옵니다.


슬로바키아와 스페인에 살며 사무치게 그리운 것 중 하나가 바로 거리마다 바뀌는 옷 색깔이에요. 뉘리팅팅 누르죽죽한 유럽의 가을은 고독과 쓸쓸함에 짙은 사색을 남기게 하지만, 한국의 알록달록한 단풍은 봄철 못지않은 생기를 맛보게 해요. 비단실로 고이 수놓은 한복을 연상케 하지요. 글을 쓰고 나니 갈망이 더해집니다.


아, 오늘은 어렸을 적 추석 때면 찾아가던 시골 할아버지 할머니 댁 가는 길, 아버지의 차 안에서 라디오만 틀면 어김없이 나오던 노래, 김상희 님의 <코스모스 피어 있는 길>을 찾아 들어봐야겠어요. 


여러분은 어떤 계절을 좋아하세요, 그리고 그 계절에 생각나는 노래, 음악으론 어떤 게 있나요? 댓글에 남겨주시면 찾아서 들어볼게요. 




김상희 님의 코스모스 피어 있는 길, 찾았어요. (라디오에서만 듣던 김상희 님, 처음 봄!)


위 곡은 짧은 데다 끊어지고 말았네요. 다 부른 곡으로 다시 올립니다. (김상희 님이 안 나와서 아쉽지만)


선선한 가을 바람, 더없이 맑고 높은 하늘 보며 기분 좋은 하루 보내기를 바랍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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