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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페인 한량 스티브 Sep 08. 2023

스페인에 사는 나는 어떻게 한량이 되었나

어떻게냐 어쩌다냐 그것이 문제로다

아버지는 음주를 좋아하셨습니다.

아버지는 가무도 좋아하셨습니다.

아버지는 이미자 선생님의 동백아가씨와

차이코프스키의 피아노 협주곡으로 대변되는

트로트 또는 뽕짝과 클래식으로 저를 키우셨습니다.


어머니는 공부를 좋아하셨습니다.

어머니는 노력을 최고라 했습니다.

세상 만물 돌아가는 것에 두루두루 관심을 기울이시는 어머니는

알쓸신잡(알아두면 쓸데없는 신비한 잡학사전)의 환경 속에 저를 기르셨습니다.


아내는 제가 하려는 모든 걸 허락했고 지금도 합니다.

아내는 제가 하려는 것에 응원을 아끼지 않습니다.

덕분에 초, 중, 고, 애를 셋이나 두고도 제가 하고 싶은 대로 일을 도전하고 즐겨봅니다.


영어 강사에서 대기업을 거쳐 다시 영어 강사로, 그리고 지금의 가이드가 되기까지.

헌데 가이드는 뭔가 하나로 정의 내리기 어려운 업종이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단순히 보면 외국을 소개하는 일인데요. 그 '외국'이라는 게 살펴보면 사실 무한에 가깝거든요.


제가 손님들과 다니면서 설명하는 테마를 한 번 살펴볼까요.

역사, 지리, 문화, 문학, 언어, 음악, 미술, 건축, 인물, 음식, 축제, 공연, 영화, 운동, 풍습, 쇼핑, 교육...

살피고 보니 그냥 외국을 소개한다고 하는 게 낫겠네요.

아님 요즘 유행하는 인문학을 외국 것으로 해설하는 거라며 포장할 수도 있겠습니다.

 

너무 무겁지도 그렇다고 경박하지도 않게, 심포지엄이 아닌 여행의 맛과 멋을 살리는 일을 어떻게 하면 잘할 수 있을까를 고민하다 보니 여기까지 오게 되었네요.


부모님의 영향으로 한량의 기본기를 착실히 다지고,

아내의 지원 덕에 한량의 생활을 눈치 안 보고 누려보고,

뭔가 격조 있게 지적 유희를 즐기려는 욕구를 채워보고자 알아서 바지런히 노력하고.


이 삼박자가 잘 맞아떨어져 손님들이 한량이라고, 그것도 성실한 한량이라 필명을 만들어 주신 것 같습니다.


어렸을 때 별명을 생각해 보면, 애늙은이라며 붙은 덕연옹, 꼬리뼈 때문에 꽁지, 인상 쓴다고 인상파... (쓰고 보니 그야말로 순도 백의 찌질함) 뭐, 이런 식이었는데, 제 별칭 중 지금 게 제일 마음에 듭니다.


오늘도 손님들과 즐겁게 거장의 붓터치를 감상하러 프라도 미술관으로 발걸음을 향합니다. 스페인에서 같이 즐겨보시죠!


덧글. 이전에 브랜딩 관련 글에서도 한량을 두고 쓴 적이 있었네요. 저를 소개하는 글로 띄웁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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