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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페인 한량 스티브 Feb 16. 2021

스페인에서 제일 큰 세비야 대성당, 가 봤어요?

어휴 저세상 스케일, 이건 뭐... 

평소 밥, 국, 김치로만 식사를 하다 모처럼 단단히 마음먹고 플렉스 하러 근사한 미슐랭 식당에 간다. 허나 막상 가보니 식사 이름인지 소설 제목인지 모를 메뉴 이름부터 시작해, 타는 목 축일 음료조차 당최 입과 혀가 편하지 못할 애먼 발음뿐이라 메뉴를 주식시세 보듯 열심히 위아래 훑어보다 결국 웨이터가 알아서 해 주길 바랄 때가 있다. 


스페인의 수도 마덕리 馬德里 (Madrid의 중국어 표기. 비슷한 발음으로 표기하는 게 원칙이나 한 나라의 수도 이름에 마을 里가 들어간다는 점이 재미있다. 국경 넘어 프랑스의 수도 파리에는 다른 글자를 써 주는데 말이지. 그냥 이 곳이 사람 사는 냄새가 더 풀풀 나는 곳이라며 꿈보다 해몽을 해 본다), 그곳을 벗어난 촌놈의 눈 앞에 등장한 세비야 대성당 앞에서 눌린 아빠의 모습이다.


정말 그 정도란 말이에요? 눈치채겠지만 애들과 다니는 여행에선 약간의 과장은 필수이다. 그렇지 않으면 아이들의 관심은 눈에 보이는 (일부) 고루해 보일 수 있는 역사적 건축물보다는 당장 기념품 가게의 자석이나 젤리 봉지에 눈이 가기 때문이다. 하지만 여행객이 어떤 식으로 표현을 하든 세비야 대성당 종탑인 히랄다 탑과 함께 우직히 그 자리를 지키며 세월이 지날수록 더 찬란함을 내뿜는다. 



세비야 대성당과 히랄다 종탑


일단 밖에서부터 압도적인 위용을 풍긴다. 저렇게나 엄청난 건물을 한눈에 다 들어오게 사진에 담을 방법이라곤 없다. 대성당의 주위를 부지런히 돌며 보이는 대로 사진에 열심히 담아야 한다. 고딕 양식의 성당 자체만 폭 76미터에 길이 126 미터나 되니 성당 주위로 산책만 해도 점심 먹고 불렀던 배 소화는 충분히 꺼트릴 만하다. 대성당 맞은편에 위치한 알카사르 왕궁과 그 옆 인디아스 고 문서관까지, 성당과 왕궁, 문서보관소는 1987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가 되어 그 중요성을 인정받았다. 이건 뭐 발길 닿는 곳마다 전부 중요하다고 하니, 세비야 시민들의 콧대가 얼마나 높을지 짐작이 간다.


화창한 날씨면 하얀 사암에 반짝임이 더해지고, 흐린 날에는 누런 사암에 얹힌 시간의 두께가 그 위엄을 더한다. 15분에 한 번씩 울리는 종소리는 시내 어디에서건 눈길을 성당으로 돌려 바라보게 마는다. 그때마다 나를 멀리서 지켜보는 종탑처럼 우리를 호위해 주는 누군가가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압도당했던 첫인상은 이내 잊고 편안한 마음을 갖게 된다. 성당 안에 들어가면 잠시 저편에 두었던 그 웅장함이 더해져 일개의 여행객은 한없이 작아지게 되기도 한다. 


이 대성당의 정식 이름은 < 세비야 성모 마리아 주교좌 대성당 >, 스페인으로 < Catedral de Santa María de la Sede 까떼드랄 데 산따 마리아 델라 세데 > 이다. 세계에서 세 번째로 큰 대성당이며 건축 양식인 고딕 양식으로 볼 땐 세계 최대의 규모이기도 하다. (다른 자료에선 4번째로 큰 성당이라고도 해서 현재도 논란 중이다) 뭔가 있어 보이는 건 장황하게 말을 늘어놓는 법이 있기라도 하는 건지, 그 기나긴 이름부터 예사롭지가 않다. 


성당에는 97m 높이의 히랄다 탑이 있는데, 제일 꼭대기의 청동상 히랄디요까지 하면 무려 104.5 미터에까지 이른다. 종탑 내부는 계단 대신 나선형으로 올라가게 만들어 생각보다 그래도 조금은 쉽게 올라갈 수 있다. 엘리베이터는 없으니 종탑에 올라가서 세비야 시내를 내려다볼 때의 떨릴 가슴 보다, 당장 오르내리느라 떨릴 다리가 걱정이라면 나중에 메트로폴 파라솔, 일명 세비야의 버섯 Setas de Sevilla (세따스 데 세비야)으로 가서 편하게 보는 편이 좋겠다. 대성당과 시내 주위를 내려다보며 파노라마와 동영상으로 담아 보면 추억에 남을 것이다. 코로나 이전에는 쉬임 없이 밀려드는 관광객에게 치여 결국 눈으로만 담아보고 아쉬운 마음을 화보책자로 대신해 보곤 했다.


대성당 안 오렌지 나무 중정에서 바라본 히랄다 탑


밖은 큼직큼직한 사암 벽돌로 괴어 있는데, 벽돌마다 세월의 무게를 짐작하기가 어렵다. 공식 기록으로는 1401년 착공했다는데, 완공은 책마다 다르게 나와 있다. 하긴, 언제 끝냈다는 게 무에 그리 중요할까. 단일 건물도 아닌 부속 건물들이 잇따라 생기고 수시로 이곳저곳을 보수하며 개축했는데 말이다. 착공한 지 600년도 더 지난 입장에서 보면, 인류가 남긴 위대한 유산인 동시에 이를 이루기 위해 얼마나 많은 장인과 인부의 수고와 인내가 담겼을지를 상상해 보는 것으로도 이 대성당의 존재의 이유가 되지는 않을까 한다.


여느 스페인의 내로라하는 대성당과는 다르게 세비야의 이곳은 오전 11시가 되어서야 문을 연다. 스페인에서 가장 큰 성당인 만큼 평소 쓸고 닦고 준비하는데 시간이 더 걸리기 라도 하는 걸까, 아니면 여느 성당과는 차원이 다르다는 걸 입장 시간으로라도 입증하고 싶어서일까. 어쩌면 안달루시아의 프라잉 팬이라는 별명이 있을 정도로 너무 뜨거운 기후를 가진 곳이다 보니 이 곳 사람들 행동거지가 게을러서...? 무슨 이유가 되었건 간에 항상 입장 대기 줄은 장사진이다.


콧대 높고 깐깐한 안내원의 인도 속에 건물 입구에 들어가 보니, 다른 성당과는 다르게 오렌지 정원이 먼저 펼쳐지고 시원한 분수대가 있어 성당인지 수도원, 피정의 집인지 잠시 헷갈린다. 실은 그 어느 것도 아닌 아랍의 영향 하에 있던 이슬람 사원이었다. 그래서 사면 벽을 둘러치고, 안에는 기도 하러 들어가기 전 정결 의식인 우두 wudu를 행하기 위해 씻을 곳을 마련해 두었던 것이다. 성 페르난도 3세가 코르도바에 이어 세비야를 1248년에 탈환했을 때, 코르도바의 메스키타처럼 이 곳 역시 이교도의 것을 다 부수고 새로 지으려 했을 텐데, 막상 아름다운 중정을 보니 저들도 망설여졌나 싶다.


오렌지 꽃, 향수와 화장품이 있을 정도로 향이 좋다


봄에는  라일락과 아카시아를 혼합한듯한 하얀 오렌지 꽃의 향기가 진동을 한다. 어찌나 진한지 꽃향기에 취할 수도 있구나 할 정도다. 그런 향기가 날 때면 여성분들은 그야말로 세비야 마니아가 되어 여행 내내 세비야 추억만으로 스페인을 기억하기도 한다. 꽃이 지면서부터는 진한 녹색의 오렌지가 맺히기 시작하는데, 비록 관상용이지만 차츰 익어가는 걸 보며 시간과 계절이 읽힌다. 마침내 진주황의 오렌지빛이 싱그런 녹색의 잎사귀와 어우러지면, 오렌지 중정은 그야말로 포토존이 된다.


외부에서도 단연 군계일학으로 우뚝 솟아 세비야의 랜드마크로 자리매김한 히랄다 탑은 대성당 정원에서 올려다보니 미세먼지 하나 없는 창공 아래 존재감을 더 확고히 보여준다. 히랄다 종탑에 빽빽이 들어찬 사람들은 시원스레 내려다 보이는 시내와 십자가 형상의 대성당 지붕을 보며 오페라의 도시 세비야를 담아보고자 애를 쓴다.


히랄다 탑에서 바라본 세비야의 전경


중정 안뜰에서 시원하게 가슴 적셔주는 분수대의 소리와 햇살 가득 머금은 오렌지 빛의 향연이 복잡했던 머릿속을 식혀준다. 그러자 대성당이 부른다. 준비운동 충분히 마쳤으니 이제 오감의 호사를 누려보라 한다. 아이들과 들어가는 발걸음이 사뭇 경쾌해진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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