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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페인 한량 스티브 Feb 17. 2021

스페인에서 제일 큰 세비야 대성당, 들어갑니다!

황홀함은 끝없이 이어지고...

건물 밖 숨고르기 때부터 오렌지 꽃 향기로 황홀함을 안겨준 세비야 대성당. 오렌지 중정에서 기념 촬영을 마치고 성당 내부로 들어 가려고 보니, 오랜만에 멀리 출장 갔다 돌아온 신랑을 맞이하고자 목욕재계를 마치고 기다리는 신부 마냥 깔끔하게 단장한 파사드 (fachada 파차다, 건물의 정면)가 반가이 맞이해준다. 여백의 미를 허용하면 큰 일이라도 나듯 빽빽히 빈틈을 매꾼 바로크 양식이 대번에 눈에 띈다. 장식 하나하나를 다듬고 쪼아가며 신에게 정성을 들였을 500년 전의 석공들과 현대에 와서도 주기적으로 살펴가며 보수하고 복원하는 장인들의 노력은 언제 보아도 감동을 불러 일으킨다.


후대의 이런 반응을 예상하기라도 한 것이었을까. 15세기에 성당 착공 논의 당시 성당 건축을 반대하던 자들 조차 결과물을 보면 헤어나오지 못할 정도로 그들은 크고 화려하게 만들고자 했다. 어디서든 당대 사람들의 모든 지식과 지혜를 집약한 것은 왕궁 보다도 종교 건축물에서 찾아볼 수 있다. 왕은 아무리 잘났어도 같은 인간의 레벨이지만, 종교는 그들의 신을 위한 것이었기에 어떤 수고를 다 해도 부족하다며 더욱 노력을 더했을 것이다.


그들은 건축 당시 세상 어떤 것도 이 정도로 아름다울 수 없는 성당을 만들어 세상에서 유일무이한 존재가 되고 싶었다. 한마디로 미친 존재감을 구현키로 한 것이다. 그들의 의도는 성공했다. 브라질의 아빠레시다 성모 성당은 세계에서 두 번째로 큰 성당으로 자리매김 했지만, 이는 20세기에야 완공된 현대건물이다. 이를 감안한다면, 그 전까진 세비야 대성당이 바티칸의 성 베드로 대성당 다음으로, 카톨릭 보호자의 나라로서 그 자존심을 이어가기에 충분했을 것이다. 게다가 로마네스크, 바로크, 고딕, 네오고딕, 신고전주의 등 여러 건축양식 중 고딕양식으로서는 세계 최대의 규모이다. 상식 선에서 하나만 더 추가해 본다면, 성당 구분에 앞서 말한 바티칸과 브라질의 두 성당은 바실리카이지만, 주교를 모신 대성당, 곧 카테드랄로서는 세비야 산타 마리아 대성당이 단연 세계 최대가 된다.


세비야 대성당 내 주제단 (출처: 세비야 대성당 공식 웹사이트)


일단 화려한 도금으로 덮힌 카톨릭에서 가장 큰 주제단을 보자. 일설에선 무려 1,500kg의 금이 쓰였다고 전해진다. 보다 피부에 와닿게 계산해 보자. 금 1kg 시세가 38,000 유로로 한화 5천 만원 정도한다. 세비야 대성당의 주제단은 세계에서 가장 큰 제단으로도 알려져 있는데, 크기도 크기이거니와 비용도 무려 750억 원이나 되니 머리가 아찔해진다. 천문학적 액수의 황금을 성당 안에 고이 모셔놓은 터라 이로인해 스페인은 황금을 돌로 바꾼 미련한 나라라는 얘기를 듣는다. 말이야 어찌되었건 간에 45장면의 제단 조각에 무려 82년, 거진 한 세기에 달하는 공이 들어간 걸 감안하면 (1482-1564), 그저 눈 앞에 보고도 믿겨지지 않는 감탄에 경외심 마저 든다. 화려할 뿐 아니라 각각의 장면마다 상세히 묘사된 세공에 잠시 홀린듯 멀거니 바라만 보았다. 그러다 문득 금의 출처를 생각해 보며 물음표를 남겨본다.


세비야 대성당의 성가대와 파이프 오르간
세비야 대성당의 파이프 오르간 (한면에 마주 보는 오르간이 두 대씩 총 네 대가 있다)


제단의 반대편 성가대석의 양편 상단에 자리잡은 거대한 바로크 양식의 오르간이 눈에 확 꽂힌다. 오르간은 악기의 이름이기도 하지만, 우선은 인체의 장기를 뜻하는 말이다. 즉, 오르간이라는 악기는 건물의 장기처럼 공간에 맞춰 제작이 되고 수명 또한 건축물과 함께 간다. 오르간의 연주 또한 일반 건반악기와 다르게 두 손과 두 다리를 모두 사용한다. 하여 오르가니스트의 연주란 내게 온 몸의 정성을 실어 음악에 바치는 일종의 헌신 이자 공양 과도 같다 하겠다.


대성당의 건조한 공기를 파이프의 향연으로 가득 채우고, 그 공명의 하모니에 사람들은 연신 돋는 소름을 잡느라 팔을 문지를 것만 같다. 여행일정이 어그러져도 좋고, 내부 관람을 못해도 좋으니 일요 미사에 참석해 장엄하고도 웅장한 소리를 한 번이라도 들어본다면, 평생 잊을 수 없는 전율이 전신에 새겨질 것이다. 실제 오르간 연주가 있는 날에는 밖으로도 그 소리가 전해질 만큼 오르간 색채는 힘을 더한다.


세비야 대성당의 후빌레오 은 제단


몸을 들어오던 입구인 북쪽으로 틀어 보니 교황 특사 제단인 후빌레오 은 제단이 주제단 못지 않은 화려함을 뿜어낸다. 이어 위를 올려다 보니 고딕 양식의 대표적인 장식 장치이던 은세공 장식을 활용한 화려한 플라타레스크 Plataresque 가 목 아픈 것마저 잊게 만든다. 참고로, 성당에서 배려차원으로 우측편에 편히 보라고 거울을 기울여 놓았다. 그곳에 가서 백설공주의 계모처럼 거울과 문답 놀이하며 본인 얼굴 감상에 빠지라는 것은 아니다.


세비야 대성당의 플라타레스크 양식으로 새겨진 천장


제단 앞 장의자에 앉아 온갖 눈의 호사를 누려보고 좌측뒷편의 경당으로 가보니 스페인의 라파엘로란 별명을 지닌 무리요의 작품, 성 안토니오의 환상이 기다리고 있다. 여기서 기도하면 그렇게나 응답을 잘 받는다는데, 현지인 얘기로는 남자보단 여자가, 여자 중엔 바지가 아닌 치마를 입은 분이, 궁극에는 치맛바람까지 펄렁펄렁 일으켜야 보다 확실한 결과를 본다는 그야말로 믿거나 말거나 한 얘기를 전해주니 경건한 성당에서 여기저기 웃음이 샌다.


에스테반 무리요의 작품, 성 안토니오의 환상


누군가가 펄럭일 치맛자락을 뒤로하고 나와 뒷편 중앙에서 올려다 보니 금빛 조명이 성당 내부를 그윽히 감싸 주고 있다. 성가대로 이어지는 완벽한 대칭과 저 높은 천정이 안겨주는 공간의 위로가 사람들의 낮은 탄성을 자아내게 한다. 세비야의 대성당은 성당을 넘은 하나의 거대한 전시장이자 미술관이며 박물관이다. 그래도 엄연히 이곳은 엄숙한 종교의식이 행해지는 건물인데도 눈길 닿는 곳마다 그 안에 담긴 이야기와 사연들로 다른 데로 쉬이 돌리지 못하고 더 빠져들게 만든다.


어쩌면 시간을 이어 내려온 역대 건축가들과 장인들의 땀이 스미지 않은 데가 없어서 인지도 모르겠다. 그래서일까. 어느새 아이들에게 설명해 주던 나부터 스탕달 증후군 (감수성이 예민한 사람이 뛰어난 예술작품을 보고 순간적으로 느끼는 정신적 충동 또는 흥분)이 생길 것만 같다. 정신줄을 놓기 전에 흥분을 잠시만 가라 앉히고 다음 장소로 이야기를 이어가 봐야겠다. (계속)


세비야 대성당의 내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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