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 31일 일요일 오후 6시 58분. 띠링! 문자가 왔다. 하지만 밤 10시가 될 때까지 몰랐다. 집콕 n개월차 생활이다 보니 급한 연락이 올 일이 없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확인해 보니 2월 1일 자정부터 알칼라 데 에나레스 지역은 이동 제한이 시행된다는 짤막한 안내와 링크 주소가 있었다. 웹사이트 주소는 눌러도 화면 전환이 안 된다. 21세기에 하이퍼 링크도 안 되는 문자 메세지라니, 여기가 지금 어디더라.
1년 가까이 받아본 코비드 확진 소식은 이제 더는 충격적이지 않다. 작년 어느 때엔가 8 만명 정도 나왔을 때는 정말 심장이 멎는 줄 알았다. 이러다 정말 큰일 나는거 아니냐며 야단법석이었는데, 다행히 그 숫자는 주말 포함 며칠치에 해당하는 거였다. 그런데 다시 생각해 보니, 이게 정말 다행인건가?
하루 2만명에는 육박하는 수준이었는데, 그걸 보고 안심했다는게 지금와서는 코웃음도 안 나온다. 이 나라는 어쩌면 이렇게 한결같이 무대책이 유일한 대책처럼 느껴지게 할까. 당연히 관련 기관과 정부부서는 고심하고 있을텐데 9년차 이주민이 피부로 느끼기에는 딱히 이거다 하고 확 와닿는게 아직은, 아니 아직도 없다.
그래도 전국민이 마스크 잘 쓰고 다니던데. 슈퍼마켓 가면 항상 손소독제도 있던데. 대체 뭐가 그렇게 문제여서 아직도 몇 주 째 만 명 밑으로 떨어져 본 적이 없는걸까. 그나마 마스크와 손소덕제 덕분에 지난 겨울 감기 한 번 안 걸리고 건강히 잘 보냈다.
문자의 웹사이트 주소를 노트북에 하나하나 쳐서 들어갔다. 제목 배경에 넣은 사진이 해당 사이트 창이다. 한눈에 딱 봐도 내가 사는 동네는 오렌지 색 바탕에 긴 이름에서 한 글자도 빠지지 않고 잘 적혀 있다. 하아. 눈을 비비며 상세 사항을 봤다. 이동제한 시작은 2월 1일 자정부터라는데 그런 중요 공지를 시행 5시간 전에나 알려주다니. 참 빠르기도 하다.
스페인 오기 전, 6년 가까이 슬로바키아에 살 때 경험이 떠올랐다. 관공서는 물론 일상생활의 모든 것이 한국 대비 하도 일처리가 느려서 오죽했음 나라 이름부터가 슬로우..박이라 그런갑다 라는 말로 농담삼아 속풀이를 하곤 했다. 그런데 스페인은? 따뜻한 남쪽의 나라이고 낙천적인 성격이 지나쳐 만사가 낭창낭창 거려서 그러는 것일까.
더 웃긴 건 시행일자는 2월 1일 자정부터라는데 언제까지 하는지가 안 나와 있다. 공지가 무슨 개봉도 안 한 꿀이라도 되는가. 유효기간이 없다니. 어차피 설 명절인 2월 12일 전까지는 밖으로 나갈 일이 없는 집콕 생활이지만 그래도 뭔가 이상했다. (물론, 스페인에서는 설이 없다. 그냥 한국인으로서 가족과 기분 내보려고 외출 내지는 근교 소풍을 생각했던 것이다.) 안내 문자를 받기 며칠 전 렌트카를 설 날짜에 맞춰 예약했는데, 그냥 무기한 시행이라니 속터질 일 아니겠는가.
그렇게 2월 1일 월요일을 맞이했고, 다음날 매주 어김없이 장이 서는 화요일이 되었다. 집 앞이 고요했다. 여느 때 같으면 트럭들이 즐비하게 나와 각자 손님 맞을 준비를 하며 화요장 양 끝에는 경찰차가 와서 손소독제를 꺼내고, 입구 출구를 나누어 사람들을 안내하고 있어야 하는데, 아무도 없다. 게다가 항상 장 한 가운데엔 유난히 목청 큰 아저씨가 언제나 "바나나 한송이 1유로, 사과 1킬로에 1유로, 아, 싸다 싸" 라며 (물론 스페인어로 얘기한다)우리집 창문을 뚫고 내 고막을 자극해야 하는데, 세상 조용하다.
이럴 수는 없다. 그 전에 3, 4만명씩 난리치던 때도 오던 트럭들인데 1, 2만명 밖에 안 되는 상황에서 오질 못하다니. 값 싸고도 싱싱하며 맛 좋은 과일을 못 먹는 나와 우리가족도 고달프지만, 생계가 걸린 트럭 과일, 야채 장수들의 애달픔은 어찌할 것인가. 정부는 각성하라. 각성하라. 1인시위라도 하고 싶은 심정이었다.
일주일의 시간이 흘렀다. 다시 월요일을 맞이했다. 그냥 그런가 보다 하고만 있었는데, 이번엔 오전 10시 13분에 띠링! 소리의 문자가 왔다. 알칼라는 계속 이동 제한령을 유지한다는 알림이였다. 사이트를 들어가 보니, 2월 8일 자정부터 이동 제한령을 다시 시행한다며 이에 해당되는 도시들이 나와 있었다.
5시간 전에 알린 것도 정말 빨리 알린거였구나. 뒷목을 잡게 된다. 아니, 이미 월요일 자정부터 시행한 것을 10시간이나 지나서 알리는 건 대체 뭐하자는 것이지. 뭐 이미 다 분위기상 알아서 재택근무 하고 있을텐데, 그래도 나름 선심 쓴다는 식으로 알려주는 것인가.
기다리던 화요일이 되었다. 역시나, 트럭들은 오지 않았고, 경찰 역시 코빼기도 보이지 않았다. 세상에. 이럴 수는 없는 일이야. 무려 2주를 그 좋은 산지직송 트럭을 두고, 슈퍼마켓 가서 비싸게 주고 사먹어야 하다니. 5킬로의 사과와 3킬로의 배, 3킬로의 귤, 3킬로의 오렌지, 그리고 막 나오기 시작한 딸기. 아, 아직도 찬바람이 부는 겨울인데, 뱃 속마저 찬바람이 부는 것만 같다.
결국 렌트카는 아쉬움을 뒤로하고 취소했다. 그나마 취소 수수료는 없었다. 이번 일로 일주일 단위로 시에서 코비드 관련 공지가 발표된다는 걸 확실히 알았다, 무려 코비드 사태 11개월 만에 찾아낸 유레카였다.
코비드 사태에 대한 업데이트를 구글 검색과 코로나 현황판 두 가지를 사용해서 보고 있다. 무슨 이유에서인지는 모르겠으나, 스페인 구글의 결과는 언제나 3, 4일 정도 전의 결과다. (대한민국은 하루 전일자 결과로 나온다.) 그렇다고 그 숫자를 기억해 두었다가 실시간 현황판 하고 대조해 보지는 않는다. 어느 것이 되었건 간에 스페인의 상태는 그냥 안 좋기 때문이다.
발생률을 보면 100명당 6명 꼴이라 확진자 수 10위권 국가중 미국 다음이다. 미국은 인구가 3.3억이라 그렇다 치더라도 우리나라 보다 땅은 5배나 크면서도 인구는 5백만이나 적은 나라에서 확진자가 100명당 6명이라니... 그냥 한바탕 꿈이었음 좋겠고, 내 머리 속의 지우개가 되어 다 없던 걸로 하고 뒤로 돌아갔으면 좋겠다. 유치하지만 해시태그로 유행하던 코로나 꺼져 라는 말도 시원하게 내뱉고싶다.
좌측 : 구글 / 우측 : 코로나 실시간 현황
이동제한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라는 점이 덜 힘든 이유가 될까. 그래도 경험이 있으니까 정신 전투력은 충분히 버틸 수 있다는 것에 감사해야 할까. 그 전에도 몇 번씩 동네를 바꿔가며, 주별로, 도시별로 시행했다. 정말 생각있는 사람들인가 할 정도로 황당하게 세분화 해서 동네별 통제를 했던 때도 있었다. 코로나를 맞이한지 1년 가까이 되는 사이에 하도 정책이 자주 바뀌어서 이젠 뭐가 뭔지도 잘 모르겠다. 그냥 마스크 쓰고 잘 씻고 왠만하면 외출 자제해서 본인 건강 지키고 남에게 폐 끼치지만 않으면 되는 걸로 갈음한다.
이동제한령이 떨어지니 알칼라의 시민들은 전보다 더 많이 구시가로 나와 산책을 한다. 어르신 아이 청년 할 것 없이 둘씩 둘씩 다니며 여전히 맑은 하늘에 (그 사이 며칠 비가 오기도 했지만) 시의 상징인 황새들이 활공하는 걸 보며 감탄하고, 둥지에서 딱딱 거리는 소리를 내면 아이들과 황새를 찾아 신나서 소리지르기도 한다.
한없이 푸근하기만 한 마을의 모습에 다시 마음의 여유를 찾는다. 코로나가 얼마나 더 오래 휘젓든 간에 찬바람이 얼마나 몰아치든 간에 이미 나뭇가지 마다 싹은 움텄다. 봄은 가까이에 와 있다. 마스크 단단히 쓰고 집앞 공원이라도 아이들 하교길에 한바퀴 돌고 와야겠다.